오피니언

[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사과와 감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10.09 06:00
  • 오곡이 여물고 과일은 탐스럽게 익는 가을이다. 가을 과일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사과와 감이다. 사과는 단단하고 감은 부드럽다. 사과와 감은 봄바람부터 뜨거운 태양과 소낙비까지 함께 겪었지만, 식감과 느낌은 너무나 다르다. 

    과일을 소재로 한 전통 그림이 있다. 그림 속 과일의 맛은 어떤지 음미해 보자. 

  • (왼쪽)<사사평안(事事平安)>, 제백석, (오른쪽)<평안다리(平安多利)>, 제백석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 (왼쪽)<사사평안(事事平安)>, 제백석, (오른쪽)<평안다리(平安多利)>, 제백석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그림 <사사평안(事事平安)>을 보자. 무엇을 그린 것인지 한눈에 알기 어렵다. “울긋불긋한 건 뭐고, 푸르스름한 건 또 뭐고, 중간에 새는 도대체 뭐지?”, “누가 그림을 이렇게 성의 없이 그렸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림 속 과일은 감과 사과다. “그림만 보고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또한 사과는 그렇다 하더라도 “감이 어떻게 저렇게 생겼냐고?” 불평할 수도 있다.

    그림 속의 감은 사과와 차별화하기 위해 볼륨감을 드러내려고 허리를 일부러 잘록하게 그린 것 같다. 그러나 발로 한 번 밟은 듯한, 저렇게 생긴 감이 있다. 물론 색깔은 실제와 다르지만 맛은 좋다. 이 감의 이름을 마반시(磨盤柿), 즉 맷돌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맷돌감은 납작하기만 한데 중국의 맷돌감은 그림처럼 허리가 잘록한 게 특징이다. 

    감 시(柿, shì)는 일 사(事, shì)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 감이 두 개니 사사(事事), 즉 ‘하는 일마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그림의 제목에 ‘事事’ 두 글자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림 속의 새는 참새인지, 독수리 새끼인지, 병아리인지, 꺼병이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역시 그림의 제목 안에 답이 들어 있다. 메추리 암(鵪, ān)과 안(安, ān)의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에 메추리는 ‘편안할 안(安)’의 뜻이다. 그래서 작은 새의 정체는 메추리이다. 

    마지막으로 사과는 한자로 평과(苹果, píngguǒ)이다. 이때 ‘苹’은 평안(平安, píng’ān)의 ‘平’과 발음이 같다. 그래서 사과는 ‘평안하다’의 뜻이다.

    두 개의 감+사과+메추리=사사(事事)+평(平)+안(安)이다. 그 뜻을 연결하면 “하는 일마다 평안하기를 바랍니다”라는 축원의 뜻이 된다.

    그림 <평안다리(平安多利)>를 보자. 메추리와 사과는 위의 그림에서 나타내는 뜻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감 대신 들어간,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무엇일까? 열매의 생김새만 보면 딸기, 앵두, 방울토마토 등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정답은 여지(荔枝, lìzhī)다. 여지는 열대과일이라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지만, 중국 식당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것, 우리가 흔히 ‘리치’라고 부르는 그 과일이다. 이 과일의 이름인 ‘荔(lì)’와 이익을 뜻하는 ‘리(利, lì)’의 중국어 발음이 같다. 그래서 여지는 이익이고, 여지가 많으니 다리(多利)가 되고, 그림의 뜻은 “평안하고 돈 많이 버세요”이다.

    그림 <사사평안(事事平安)>과 <평안다리(平安多利)>는 모두 평안함이 지속되길 바라는 뜻이다. 평안한 삶이란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인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니 삶이란 그래서 쉽지 않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