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병·의원 진료비 허위 청구 만연… “환자 스스로 감시해야”

기사입력 2022.11.07 18:20
“치주질환 치료 없었는데 내역서엔 연 2회 시행”
반복 시 민간보험 가입 등에서 불이익… 의료데이터 건전성 저하도 문제
보건복지부 ‘나의 건강기록’ 앱에서 확인 가능
  • 보건복지부가 출시한 ‘나의 건강기록’ 앱으로 진료내역을 조회한 결과 받지도 않은 진료 내역이 청구된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 보건복지부가 출시한 ‘나의 건강기록’ 앱으로 진료내역을 조회한 결과 받지도 않은 진료 내역이 청구된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환자도 모르는 사이 진료비 가운데 일부가 허위로 청구되는 일이 몇몇 병·의원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환자 스스로 허위 청구를 확인하지 않으면 누구도 사실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이런 문제로 누구나 자신의 진료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나의 건강기록’ 앱을 2021년 2월 출시했으나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피해자 A씨 사례 역시 이같은 경우다. A씨는 자신이 받지도 않은 진료 내역을 병원이 허위로 작성,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한 사례를 확인했다. 피해자는 “5년 전 한 번 방문했던 치과에서 지난 1년 사이 두 차례 치료받았다는 기록이 나왔다”며 “병원에서 개인정보를 악용한 부정수급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A씨는 이 사실을 보건복지부 ‘나의건강기록’ 앱을 통해 확인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7일과 14일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A 치과에서 각 10만 원가량의 ‘치주질환’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하지만 A 치과는 피해자가 5년 전에 스케일링하러 방문한 후 그 이후에는 방문한 적이 없는 병원이었다. 피해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해당 내용을 의뢰한 결과 ‘사실관계 확인 결과 병원에서 공단으로 진료비를 잘못 청구한 것이 확인됐으며 잘못 청구된 진료비를 환수할 예정’이라는 안내문만 받았다.

    ◇“부정수급 병원에선 어렵지 않아”

    이런 부정수급 사례는 의외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진료시스템을 소수의 사람이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 개인 병·의원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부당청구 요양기관 신고 포상심의위원회’를 서면심의로 개최하고, 요양급여비용을 거짓·부당하게 청구한 17개 요양기관 제보자에게 총6억 32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서울 성북구의 한 대학병원 근무자는 “사실 병원에서 마음먹으면 진료기록 조작은 어렵지 않다”며 “환자가 개인 진료기록을 자주 조회하지 않으므로 병원이 보유한 환자 데이터로 얼마든지 허위 진료기록을 작성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의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해당 병원이 의료 수가를 높여 보험금 등을 지원받기 위해 환자 데이터를 악용한 사례로 판단된다”며 “보험금 부정수급은 일부 병원에서 암묵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도 “보험금 지급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진료 여부 심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하고 돈은 공단이 지급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며 “병원이 임의로 진료 내역을 조작했다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현재로서 유일한 방법은 환자 스스로 자신의 검진기록을 수시로 확인하는 방법 뿐이다. 시민들 입장에선 ‘당장은 피해가 없다’며 귀찮게 여길 수 있으나, 보건복지부측은 관련 확인을 철저히 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부정수급 대상으로 등록되면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병을 치료받은 것으로 등록돼 민간 의료보험 가입 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서다.

    병원이 환자 데이터를 임의로 작성해 보험금을 취득하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았더라도 명백한 불법이다. 의료법 제22조 제3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 기재·수정해서는 안 된다. 위반 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1년의 범위에서 해당 의료인의 면허 자격을 정지할 수도 있다. 또 고의로 판단될 경우 해당 의료인은 면허 자격 정지 처분과 형사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진료기록 허위 작성은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의료 발전도 저해할 수 있다. 최근 의료 인공지능(AI) 업계에서는 환자의 개인 진료 이력을 토대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예측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기존 진료 데이터와 가족력 등을 토대로 AI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예측해 사전 예방하는 기술인데, 부정수급 사례가 많아질수록 국민건강공단의 의료데이터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기술은 개인 건강 보호뿐 아니라 보험료 예측 등에도 활용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디지털헬스팀 관계자는 “병원이 환자 데이터를 임의로 작성하는 경우 의료 예측 정확도가 떨어져 AI 의료기술이 완성돼도 활용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자신 진료기록 제한 없이 볼 수 있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자신의 진료기록을 제한 없이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도 나의 건강기록 앱을 통해 1년까지 진료기록을 확인할 수 있으나, 1년이 지난 기록은 확인할 방법이 없어 이를 개선하고, 수년 이상 지난 부정수급 기록도 모두 환수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하자는 것이다. 또 병·의원에서 보험금을 청구할 때 환자의 동의를 받는 방법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NIPA 관계자는 “유럽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진료기록을 기한 제한 없이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면서 “우리도 피해를 줄이려면 나의 건강기록 조회 기간을 1년에서 그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민지 법무법인원 변호사는 “병원에서 의료기록을 작성해 보험공단에 송부 할 때 환자에게 고지 및 해당 기록의 전송에 관한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제반 절차 마련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