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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차’가 ‘엽차’가 된 사연은? 엽차의 변천사

기사입력 2017.11.09 11:13
  • 원래 ‘엽차(葉茶)’란 차나무 잎을 찐 뒤 물로 우려 마시는 차를 뜻하지만, 엽차라고 하면 먼저 보리차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집집마다 물을 끓여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옛날에는 볶은 보리나 옥수수, 결명자 등을 넣어 끓인 물을 통틀어 ‘엽차’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옥수수차나 결명자차가 아닌 보리차가 엽차의 대표가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언제부터 보리차는 엽차의 대명사가 된 것일까?

  • 아직도 '엽차'하면 많은 이들이 '보리차'를 떠올린다./사진=위키피디아
    ▲ 아직도 '엽차'하면 많은 이들이 '보리차'를 떠올린다./사진=위키피디아
    언제부터 엽차를 마셨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엽차는 꽤 오래전부터 생활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40년 5월 22일 자 조선일보에는 ‘애기에게도 엽차가 좋다’는 기사가 실려있으며, 1964년 9월 9일 자 경향신문에는 ‘엽차 문화는 가짜 문화’라는 글이 실려있다. 경향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다방출입 30년 관록을 가진 ‘다방 30년 씨’는 ‘다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얌체신사들이 그냥 오래 앉아있기가 거북하니까 냉수나 한잔시켜놓고 늦장을 부렸던 것이, 그 후 자동으로 냉수나 엽차를 서비스하는 신장다방이 등장하면서 엽차가 다도가 되다시피 했다’고 엽차의 내력을 밝힌다. 1969년 11월 20일 자 매일경제에는 “다방출입 수십 년에 어느덧 엽차 마시는 솜씨가 보통을 넘어섰다”라며 ‘엽차’를 예찬한 칼럼을 찾아볼 수 있다.

    ‘엽차=보리차’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은 1970년에 발생한 색소 엽차 사건의 공이 크지 않았나 싶다. 그해 6월 서울시보건당국이 시내 각 다방에서 널리 쓰고 있던 색소 엽차를 수거해 위생 검사를 했는데, 100cc당 최고 9만2천 마리라는 엄청난 수의 대장균이 검출된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각 업소에 색소 엽차 사용을 금지하고, 끓인 보리차만 엽차로 사용할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 한때 주곡의 자급자족과 양곡 비축을 위한 시책으로 보리차는 강력한 규제를 받았다./사진=위키피디아
    ▲ 한때 주곡의 자급자족과 양곡 비축을 위한 시책으로 보리차는 강력한 규제를 받았다./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1975년 보리차로 만든 엽차는 존립의 위기를 맞게 된다. 주곡의 자급자족과 양곡 비축을 위한 시책으로 요식업소, 다방 등에서 보리를 원료로 하는 보리차를 일체 사용치 말고 결명자 등을 이용한 엽차를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해 전라북도는 시중백화점과 일반상점 등에서 볶은 보리 및 보리차 판매를 금지할 것을 지시했다.

    1986년에는 ‘보리차 대신 엽차 마시기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캠페인을 주관한 한국다문화연구회는 ‘볶은 보리의 탄 부분에서 발암물질 발생한다’는 학설과 ‘식량인 보리를 사용함으로 외화를 낭비하게 된다’는 주장을 보리차 근절의 이유로 내세우고, 찻잎으로 끓인 진짜 엽차는 ‘가격이 저렴하고 소화기능을 촉진하며, 감기 예방, 구취 제거 효과 등이 있다’고 홍보했다.

    보리차는 정수기와 생수가 보편화하며 옛 추억의 한편으로 물러난 듯했지만, 최근 독감, 장염 등의 전염병이 유행하며 보리차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누구에게나 맞는 순한 성질의 보리차는 물 대용으로 마셔도 탈이 없고, 탈이 난 속을 달래고 수분을 보충하는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면역력 강화, 노화 방지, 성인병 예방 등 보리차의 효능이 속속 알려지며 보리차의 인기는 다시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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