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방 AX, 선택이 아니다
군사력의 본질은 오랫동안 플랫폼, 즉 하드웨어(HW)의 성능으로 정의돼 왔다. 하지만 오늘날 전장은 HW 중심 무기에서 소프트웨어(SW) 기반의 전력(戰力)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동일한 무기체계라 하더라도 어떤 SW와 인공지능(AI)이 탑재되느냐에 따라 상황 인식 능력, 의사결정 속도, 전투 지속성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처럼 앞으로 국방력의 핵심은 ‘무엇을 보유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지능화되었는가’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국가 AI 전략위원회가 공개한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 계획(Korea's AI Action Plan)’은 이러한 변화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즉, 국가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 데이터·컴퓨팅 인프라 확충, AI 반도체와 엣지 AI 육성, 전 산업과 공공 영역의 AX(AI로의 전환) 가속화는 단순한 기술 육성 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국방은 고신뢰성, 실시간성, 보안성, 그리고 실패 비용이 매우 높은 특수한 영역으로, 국가 AI의 성숙도를 신속하게 검증하고 국가 전체 AI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시험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군은 감시정찰, 지휘결심 지원, 군수·정비 등에서 AI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왔다. 이는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아직은 정보화 수준의 국방 AI 도입 및 활용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국방 AX는 AI가 무기체계와 결합된 SW 기반 전력, 더 나아가 무인체계, 로봇과 자율시스템으로 대표되는 피지컬 AI 단계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것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투 개념과 작전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전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방 AI 거버넌스의 정립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와 같은 개별 사업 중심, 기술 단위 접근으로는 AI의 군사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다. 따라서 국방 전반을 관통하는 데이터 전략, AI 기술 기준, 책임성과 신뢰성 원칙, 그리고 실증과 전력화를 연계하는 일관된 거버넌스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단일 부대나 기관이 아닌, 국방 차원의 통합적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추진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같은 국방 연구개발 기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ADD와 같은 연구개발 기관은 단순한 무기체계 기술의 연구개발 임무를 넘어, 국방 AI와 피지컬 AI의 기술적 기준을 정립하고, 실증과 전력화를 연결하며, 정부의 AI 액션 플랜을 국방 영역에 구체화하는 전략적 허브가 돼야 한다. 즉, 국방 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 무기체계 탑재를 고려한 엣지 AI 기술, AI 반도체 기반 온디바이스 지능화는 모두 이러한 연구개발 조직의 새로운 임무 및 역할 부여 없이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방 AX의 성패는 기술의 우수성이 아니라 속도, 방향, 그리고 통제된 신뢰에 달려 있다. 병력 감소와 복합적 위협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실에서, AI가 탑재된 SW 중심 전력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따라서 정부의 AI 전략이라는 든든한 토대 위에서 국방 분야가 첨단 기술의 선도적 실험장이 될 때, 전장에서 검증된 기술은 산업으로 확산되고 산업에서 축적된 역량은 다시 국가 안보로 환류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하드웨어 강국을 넘어 세계적인 ‘AI 안보 강국’으로 우뚝 설 것이다.
이제 ‘하드웨어’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미래의 전력은 단순한 기계적 성능이나 많은 장비가 아니라, 더 나은 판단을 내리는 알고리즘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방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어떤 알고리즘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곽기호 박사는 현재 국방과학연구소 국방인공지능기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가 AI 전략위원회 국방·안보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카네기멜론대에서 전기·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기계학습, 로봇·자율시스템 분야에서 20편 이상의 국제 저널 논문과 100편 이상의 국내외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 수석 부회장 및 국방로봇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방 인공지능 및 무인체계 관련 연구개발과 기술 로드맵 수립을 총괄하고 있다. 보국훈장(삼일장), 국방과학상, 방위사업 표창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