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듦은 내가 감당할테니"…'원더랜드' 수지, 태주를 사랑하는 정인 그 자체[인터뷰]
"수지로 사는 기분요? 수지맞은 기분이죠.(웃음) 우선 '원더랜드'가 4년 전에 찍은 거라 작품 보면서 제 모습이 풋풋하다고 느꼈고, 그땐 내가 이런 표정을 지었구나. '스물일곱의 나는 이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다린 보람이 있어요."
수지는 '원더랜드'를 통해 4년 전 20대의 자신을 보며 느낀 감회를 전했다. 촬영을 마치고 대중에 작품을 선보이기까지, 그 사이 수지는 30대가 됐고 조금 더 성장했다. 배우로서 작품을 바라봤던 시선이 어느새 관객의 시각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자신이 '원더랜드'와 캐릭터에 가득 채운 감정을 지금의 마음에 오롯이 담을 수 있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원더랜드' 수지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수지는 의식불명인 남자친구 '태주'(박보검)를 '원더랜드'에서 복원한 여자 '정인'으로 분했다.
작품은 2020년 크랭크인, 코로나19 시기에 촬영을 마쳤다. 이 때문에 개봉이 밀려 이제서야 관객을 만나게 됐다. 수지는 오랜만에 '원더랜드'를 선보이게 된 소감을 묻자 "작품이 나오기를 오래 기다린 만큼, 예전에 봤을 때보다 더 마음에 다가온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이어 "전에는 제 연기를 위주로 보다 보니 내용에는 집중이 잘 안됐을 텐데, 이번에 봤을 때는 영화 그 자체로 보여서 정말 좋았어요.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슬프고 울컥했고요. 행복한 부분에서 눈물이 더 났어요. 따뜻함을 느꼈죠"라고 덧붙였다.
'원더랜드'는 죽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의 정보를 데이터화해, AI로서 가상세계에 존재한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만나고 체온을 느낄 순 없지만 영상 통화로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눌 수는 있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간절하게 꿈 꿀만 한 이야기다. 비록 살아있진 않아도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은 받을 수 있다. 수지는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신청을 망설이지 않을 것 같다며 "힘듦은 제가 감당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수지는 작품의 현실적인 상상력에 마음이 끌렸다.
"기억을 데이터로 모아서 영상 통화로 만든다는 게 (작품을 제안받은 당시에도) 그렇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 같았거든요. 그때는 조금 더 막연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언젠가 이런 서비스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죠. 기술적인 것보다는 '원더랜드'가 사람들의 감정이 너무 잘 보이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하게 됐어요."
극 중 정인과 태주는 보통의 연인보다 깊은 애틋함으로 감싸인 정인(情人)이다. 작품 속 두 사람 모두 가족이 등장하지 않기에, 수지와 박보검은 이들이 고아였을 거라는 전사를 더해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자 연인을 그려냈다.
"촬영하면서 대본에 없는 부분을 많이 채워야 했어요. 그래서 정인이에게 과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에 대해 보검 오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감정을 생각하게 되고,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 같아요."
최근 수지는 SNS에 정인이 입장에서 작성한 원더랜드 신청서를 올리기도 했다. 장문에는 정인이가 태주에게 반한 포인트, 둘 사이의 일상적인 이야기, 그리고 눈을 뜨지 않는 태주 옆에서 느끼는 공허한 슬픔까지 담겼다. 수지는 그 비하인드를 전했다.
수지는 "SNS에 올린 장문의 글은 제가 촬영할 때 정인이에게 몰입하기 위해서 대본에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쓴 거였어요. 둘의 관계성은 이랬을 것 같고, 정인이가 왜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하게 됐을지 납득하고 싶어서 상상하며 써본 거죠"라며 "감독님께도 보여드리면서 '대본에 나와있지 않은 부분을 제가 메꿔봤는데 어떠세요'했는데 너무 좋다고 해주셨어요. 그런 과정들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정인이로 호흡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캐릭터에 몰입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원더랜드'는 초호화 캐스팅으로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수지와 박보검이 그리는 비주얼 커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6년 동안 백상예술대상 MC로서 나섰던 두 사람은 처음으로 작품을 함께하며 더 가까워졌다.
"저희가 백상예술대상 MC로 만났을 때는 이렇다 할 게 딱히 없고, 그냥 행사 전에 떨리는 마음을 나누는 든든한 동료 같은 느낌이었어요. 연기로 박보검이라는 배우를 만났을 때 그분의 눈빛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게 많았어요. 눈빛이 참 좋은 배우더라고요. 또 사람으로서 봤을 때 '단단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배려심이 많기도 하지만 강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촬영하면서 많이 느꼈죠. 덕분에 의지하며 연기할 수 있었고 좋은 힘과 에너지를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촬영을 할 당시에 스태프분들이 '둘이 되게 잘 논다'하실 정도로 현장에서 잘 놀았어요.(웃음) 아무래도 둘이 (정인과 태주의) 옛날 좋았던 시절 영상을 찍다 보니까 서로 계속 장난하고 놀리고 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아요. 대기할 때는 서로 춤추면서 놀곤 했고요. 커버 댄스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소품들을 가지고 몸짓같이 흔들면서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많아요."
'원더랜드'를 보면 상상을 하게 된다. '나라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할까', 그리고 'AI인 나를 만든다면 어떤 존재가 될까'. 수지는 AI수지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모습일지 묻는 말에 괴리감을 떠올렸다.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생각하는 저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제가 너무 다를 것 같아요.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이 아닌데, 남들이 봤을 때는 늘 '넌 밝아. 에너지가 넘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AI로 만들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요청한 내 모습에는 어떤 게 있을까 그런 지점이 궁금해졌어요."
"저는 막 밝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멍 때릴 때도 많고, 스스로 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잘 웃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웃상이다', '되게 밝다'라고 해주세요. 그럴 때 '어 내가 그런가' 싶기는 하죠. 그게 싫다는 게 아니고 되게 새롭다는 느낌이에요."
수지는 최근 몇 년 동안 쿠팡플레이 '안나', 넷플릭스 '이두나!'로 연이어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이번 영화 '원더랜드'에서는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를 소화했다. 이후 보여줄 수지의 모습은 어떨까. 배우로서의 마음을 묻자, 수지는 욕심을 내기보다 주어진 일에 책임감을 다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배우로서 뭔가를 보여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많지 않은 것 같기는 해요. 작품을 대할 때 그냥 제가 그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막 하고 싶은 작품이나 장르, 변신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은 크지 않아요."
"물론 배우로서 책임감은 항상 있죠. 흥행에 대한 책임감은, 그건 알 수 없는 부분이니까 부담 갖지 않으려고 하지만요. 그냥 어떻게 하면 제가 맡은 바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싶은 책임감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