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서 시작해 인물로…'센터 성은' 최성은의 나아가기 [인터뷰]
* 해당 인터뷰에는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자, 사진을 살펴보자. 영화 '시동'에서도, 넷플릭스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 때에도, 영화 '젠틀맨', '로기완'에 이르기까지 단체 사진의 중심에 배우 최성은이 있었다. 인터뷰 중 그에게 '센터 성은'이라는 말을 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저 자신을 엄청 낮춰보는 성향이 있거든요"라며 여전히 자신의 추를 자신이 움켜쥐고 애써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화 '로기완'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탈북자 로기완(송중기)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난민 지위를 획득해 발붙이고 살아가려는 땅 벨기에에서 마리(최성은)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마리는 엄마의 죽음 이후, 아빠와도 관계를 끊고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최성은은 '로기완'의 오디션을 통해 마리 역에 캐스팅됐다. 마리의 출발선인 오디션 당시를 최성은은 '겉모습'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최성은이 캐릭터에 다가가는 법이기도 하다.
Q. 김희진 감독이 '로기완' 오디션을 통해 배우 최성은을 만난 후, 굉장히 기뻐했음을 배우 송중기가 전해주기도 했다. 오디션에서 어떤 모습의 마리를 보여줬나.
"오디션을 처음 볼 때, 대본이 다 나와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큰 그림을 볼 수 없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로 준비했어요. 예를 들면 옷을 어떻게 입고 갈지, 마리가 풍기는 분위기 등을 떠올렸어요. 저는 그 인물에 대해 옷이 주는 것들이 큰 것 같아요. 어떤 옷을 입었을 때, 제가 느끼게 되는 감정이 있잖아요. 오디션 당시에는 여름이었는데, 구멍이 뚫린 빨간 니트에 루즈핏한 흰색 바지를 입고 갔어요. 마리를 떠올리면 '빨강'이 떠올랐거든요. 늘어져 있는 옷의 질감도 그렇고요. 오디션 장소에서 감독님께서는 다른 말씀은 없으셨고, '다른 언어로 연기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정도의 질문을 하셨던 것 같아요."
Q. 캐스팅된 후에는 어땠나.
"(마리가) 너무 어렵다고 느낀 것 같아요. 불어도 해야 했고, 멜로라는 장르도 처음이었거든요. 게다가 베드씬도 있었고요. 여러 가지로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Q. 겉모습을 말씀하셨으니, '로기완'에서 마리는 굉장히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에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메이크업도 연해지고, 옷도 수수하게 변화한다. 어떻게 구상했나.
"제가 그렇게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을 처음 해봤어요. 우려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스모키 메이크업이었다가, 민낯에 가까운 얼굴이면 너무 갑자기 변화의 폭이 크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고요. 중간 과정이 편집되며 대비되도록 보인 것 같기도 해요. 마리가 초반에 망가져 있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화려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기완(송중기)과 만나며 본연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게 된 거고요. 그 흐름을 생각한 것 같아요."
Q. '로기완'이 공개된 후, 마리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높더라. 스스로 혹은 감독님에게 들은 마리의 전사가 있을까.
"마리 개인적인 전사보다는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시릴과 마리는 오랜 친구 사이였고, 시릴은 마리를 잘못된 방식으로 좋아해 왔죠. 마리가 엄마와의 이별과 아빠(조한철)에게 느끼는 배신감으로 힘들어할 대, 시릴과 손을 잡았어요.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과정에 시릴이 함께였죠. 아마 마리에게 처음 약을 준 것도 시릴이었을 거고요. 그런 식으로 시릴은 마리가 자신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점점 조여간 것 같아요. 아빠와의 관계도 완성된 작품보다 좀 더 변화의 단계들이 있었는데, 덜어졌어요. 그래서 '로기완'을 처음 보시면 조금 감정선이 급하게 진전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시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Q. 기완을 향한 마리의 감정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작품에 임했나.
"마리 또한 벨기에에서 오랜 시간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와중에 엄마가 돌아가셨고, 그 책임을 아빠에게 돌리면서도 누구보다 자신이 싫었던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죠. 그러다 기완(송중기)이를 만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저는 마리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뿌리내리지 못하고 자라왔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기완이는 자기보다 자신을 더 믿어주는 사람이에요. 그런 모습에서 엄청나게 큰 안정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완이가 마리에게 '너 얼굴을 그렇게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함이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기완이가 마리를 위해 약을 자기 입에 털어 넣고는 사경을 헤매다 깨어나 이야기할 때, 그때가 마리가 기완에게 빠져든 때라고 생각했어요."
Q. 해외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로기완'의 과정에서 많은 대화를 했을 텐데, 송중기는 어떤 배우였나.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하루는 식사 후에 촬영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송)중기 오빠가 계속 생각에 잠긴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니, 촬영하는 장소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스태프들이 식사하시는 동안, 저희끼리 리허설을 해본 적이 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중기 오빠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집요함이 있는 것 같아요. 전체를 볼 줄 알면서도, 자기 역할을 고집할 줄 아세요. 그 밑바닥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이 확신으로 자리할 거고요."
Q. 송중기는 인터뷰 당시 최성은에 대해 "배우고 싶을 정도로 집념이 대단한 배우"라는 표현을 했다.
"그런 말씀을 해주신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하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연기가 마음에 안들면 '다시 한번만 하게 해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리거든요. 고민하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런데 저 스스로는 '연기랑 싸우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직 그런 면에서 갈 길이 멀죠. 주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도움을 청하고, 순간순간의 만남에 더 집중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Q. '로기완'을 통해 배우거나 성장했다고 느끼는 지점도 있을까.
"영화 작업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거잖아요. '로기완'에서 유독 배웠던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나고 나면 항상 소통의 지점에서 제일 많이 배워요. '내가 먼저 다가가 볼 걸', '내 의견에 확신을 좀 더 가져볼걸', '이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손 좀 내밀어볼걸' 등의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한 현장이라서요. 유독 그런 마음을 많이 느끼게 해준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Q. '시동' 때부터 '안나라수마나라', '젠틀맨' 등의 작품 공식 석상에서 단체 사진마다 센터에 자리하더라. 스스로 자신의 매력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운이 좋아서 '시동'의 중요한 역을 하게 됐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온 것 같아요. 제가 쉽게 흔들리려고 하지 않는 추를 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라는 사람의 기질 자체에서 그런 것 같은데요. 저는 인간 최성은으로 느끼는 개인적인 고민을 여전히 하나하나 풀어가려고 고민하는 입장에 있어요. 저는 스스로 낮춰보는 성향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 부분이 무조건 좋게 작용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걸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저를 볼 때 똑 부러지고 단단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Q. 영화 '시동'으로 인터뷰했을 당시, "행복하게 연기하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잘 지켜지고 있나.
"확실히 그때와 비교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행복하다'는 아니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 조금씩 해나가는 것 같고요. 그러기 위해서 인간 최성은이 금이 가고, 말랑해지는 부분이 나올 때까지 더 고민을 이어가야 할 것 같아요. 조금씩, 큰 변화가 없어도, 나아가고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