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 '천사'는 아니지만 [인터뷰]

"천사 오해도 풀어주세요!"

인터뷰 중 박보영이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에서 이름부터 '정다은'인 간호사 역을 맡은 박보영은 함께한 배우 연우진과 이재규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천사'라는 애칭이 더해졌다. 사실 '국민 여동생', '뽀블리'라는 대중적인 애칭이 알려주듯, '천사'도 박보영과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예전의 박보영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올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어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보여준 박보영의 모습은 전작과 장르부터 달랐다. 배우로서 갈증이 있었고, 욕심을 냈던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박보영은 "남다른 의미의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 이상이었다. 깊이 몰입했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 속 정다은의 성장만큼, 박보영도 성장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명신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간호사의 시점을 중심으로 담아냈다. 정다은은 내과 3년 차 간호사로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으로 전과했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진심이 바쁘게 돌아가는 병동에서 다른 간호사에게 짐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 마음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스스로를 다치게 하기도 한다. 정다은 간호사는 이를 직접 부딪치며 알아가게 된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은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이 가장 즐거웠어요. 그런데 다 공개된 후에 보면서 너무 울었어요. 하나 보고 쉬고, 틀었다가 다시 좀 쉬고. 이러면서 봤는데요. 수연(이상희) 선생님 에피소드는 워킹맘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제가 공감을 못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너무 많이 울었어요.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 거야'라는 말이 꼭 워킹맘뿐만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분에게 와닿을 말로 들렸어요."

정신건강의학과 간호사 역을 맡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박보영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축이기에 작은 디테일에도 정성을 쏟았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데이와 나이트, 그리고 환자를 안내할 때 등을 참관하며 연구했다. 그리고 혈압을 체크하고, 혈관 주사를 놓고, 스테이션에 있을 때의 움직임 등 디테일을 더했다.

가장 '다른 박보영'을 엿보게 한 것은 9화 '나는 아픈 간호사입니다' 편이었다. 정다은은 정신과 병동에 온 직후부터 관계를 쌓아온 서완(노재원)의 죽음을 계기로 깊이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해를 가리고, 먹지 않고, 서서히 자신의 몸과 마음 모두를 바싹 말라버리게 만드는 우울증이 찾아온 것. 박보영은 걷기 힘들 정도로 말라버린 모습으로 현실과 연기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힘들었어요. 촬영 중·후반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좀 더 피폐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초반에 (살이) 좀 빠졌었거든요. 그때 감독님께서 '이 얼굴은 나중에 9화 때 나오면 좋겠다'라고 하셔서, 다시 열심히 먹고 유지했어요. 자기 암시가 진짜 무서워요. '힘들다, 힘들다' 하면 정말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최대한 증폭시키려고 했고요. 다은이에게 이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아직까지도 노재원 배우님을 실명으로 부른 적이 없어요. 늘 '서완님'이라고 불렀거든요. 그리고 서완님께서도 저를 '중재자님'이라고 부르시고요. 그래서 실제로도 관계성이 많이 쌓인 거예요. 촬영하면서도 서완님이 커지는 게 느껴지고요. 너무 힘들었어요. 힘든 이유에 서완님이 정말 컸어요. 우울증을 표현하기 위해 기운이 없고, 말을 지우고, 물도 잘 마시지 않고 그런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고요."

반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를 보는 무게감을 조금 덜어준 포인트도 있었다. 정다은(박보영)을 중심에 두고 삼각 러브라인을 펼치는 동고윤(연우진)과 소꿉친구 유찬이(장동윤)이었다. 그런데 정작 박보영은 삼각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찬이가 정작 다은이 앞에서 티를 낸 적이 없어요. 늘 '밥이나 사'라고 하고요. 저는 그래서 끝까지 친구로 봤어요. 그런데 봐주시는 분들은 쫄깃한 삼각관계로 봐주시더라고요. 연기할 때는 유찬이의 마음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양쪽을 바라보고 연기하지 않고, 동고윤(연우진) 선생님만 신경 썼습니다."

더불어 정다은을 둘러싼 정신과 병동 간호사 팀의 의리도 끈끈했다. 수간호사 송효신(이정은)을 필두로 박수연(이상희), 홍정란(박지연), 민들레(이이담), 그리고 윤만천(전배수)까지. 이들은 한 팀이었고, 그 관계는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수간호사 역의 이정은은 간호사 팀의 단체창을 만들었고, 그 창은 여전히 떠들썩하다.

"저는 제작발표회 전에 보여주셔서 저희 작품을 미리 봤거든요. 그 후에 간호팀을 만났는데 다들 너무 궁금해하는 거예요. '우리 작품 진짜 좋다'라고 이야기해 주니 (박)지연 언니가 '너무 다행이다'라고 하면서 우는 거예요. (이)상희 언니가 그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제가 웃고 있거든요. 그때 모습이 그 모습이에요. 제가 힘들어할 때, (이)상희 언니가 엄청 안아줬거든요. '힘들지' 하면서 안아주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거예요. 그 품에 중독돼서 제가 '언니 내일은 안 오세요?' 하면서 엄청 기다렸어요. 촬영 현장에서 밥을 각자 먹는데, 저희 팀은 항상 같이 먹었어요. 심지어 전배수 선배님은 촬영이 오후인데도 일부러 일찍와서 같이 식사하셨어요."

당시를 떠올리는 박보영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 앞서 박보영은 "천사 오해도 풀어주세요"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의 행보가 오해를 풀기 어렵게 한다. 박보영은 기부뿐만 아니라 약 10년동안이나 소아병동에서 봉사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햇수로는 10년 이지만, 코로나 등 봉사하기 어려운 시기가 있어서 횟수로 치면 얼마 안 될 거예요"라고 자신을 낮췄지만, 시간이 될 때마다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일이 얼마나 마음을 주는 일인지를 알고 있다.

"저에겐 약간 그게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의 하나였어요. 저희는 촬영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을 안 하는 시기거든요. 촬영이 끝나면 알람을 끄고, 늦잠을 자고, 이런 생활이 초반에는 너무 좋아요. 그런데 그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세상에서 쓸모없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너무 치열하게 6~7개월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안 하면 그 마음이 크게 와닿거든요. 그래서 봉사하러 간 것도 있어요. 그러면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는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와요. 꼭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보다, 그걸 해낸 나 자신에 그랬어요. 처음에는 그 마음이 부끄럽기도 하고,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이야기했거든요. 그런데 '그 마음도 나쁜 마음은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 마음도 괜찮다면,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작은 사소했다. KBS2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3일' 속 등장한 서울시립어린이병원을 보고 연락을 하게 됐다. 해당 병원은 특정 단체를 거치지 않고, 개인으로도 봉사와 기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박보영은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 들었고, 직접 전화했다.

"제가 기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말미에 '봉사해도 될까요?'라고 작게 물어봤는데, 된다고 하셨어요. 웬만하면 개인 봉사자를 중증 어린이 환자가 있는 병동을 잘 안 보내시는데, 병원에서 그곳으로 저를 보내셨어요. 어린이가 아닌 친구가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했고요. '봉사자님, 도와주세요' 말씀하시면서 기저귀를 건네시면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때 '돈을 열심히 벌어서, 여기에 기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민 여동생'이라고 불리던 박보영이 어느 순간 이렇게 성장했다. 사람으로서는 스스로를 낮추고, 배우로서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게 되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통해 '제8회 런던 아시아 영화제'에서 '베스트 액터상'을 받는 등 호평을 이끌었다. 도전에 이어지기 힘든 박수를 박보영이 받고 있다.

"올해는 저에게도 특별한 한 해 같아요.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에 비해 제 욕심을 많이 부려서 선택한 작품들이었거든요. 기존 이미지를 덜어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어요. 그 작품이 올해 공개되고, 또 좋게 봐주셔서, 제가 꿈꿔왔던 제 욕심이 채워진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조금 더 나아가도 되겠다, 조금 더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올해는 그래도 조금 칭찬을 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처음이에요. 아마 다은이를 통해서 저도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