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콸라섬에서 "잇츠 굿"을 외치다 [인터뷰]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나의 아저씨' 속 "뭐 사가?"라고 말하는 선명한 동훈의 흔적이 이제는 깨질 것 같다. 영화 '킬링 로맨스'는 어찌보면 '킬링 이선균'으로 읽혀야 할지도 모른다. 이선균은 영화 촬영 한 달 전부터 레게머리를 하고, 약 4달 동안 그 헤어 스타일로 다녔다. 해본 적 없는 것, 그렇기에 자유로웠던 그의 도전이 영화 '킬링 로맨스'에 담겼다.
'킬링로맨스'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운명적 사랑에 빠져 돌연 은퇴를 선언한 톱스타 ‘여래’(이하늬)가 팬클럽 3기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를 만나 기상천외한 컴백 작전을 모의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이선균은 콸라섬 재벌 '조나단 나' 역을 맡아 장발의 파격적인 비주얼로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어디 행사 뛰자"라는 농담할 정도로 한 번도 본 적 없던 캐릭터였다.
놀랍게도 '킬링 로맨스'의 출연을 결정한 것은 이선균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직후였다. 사실 이선균은 '킬링 로맨스' 대본을 받고, 이원석 감독을 만나 거절하려고 했다. 이렇게 자신이 맡았을 때 어떤 모습이 나올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결정하게 된 것은 그가 믿는 '인연' 때문이었다.
"일단 어떻게 찍을지 너무 궁금했어요. 제안받았을 때는 이원석 감독님과 그렇게 친분이 두텁지 않았어요. 그런데 독특하고 재미있잖아요. 저에게 왜 이 캐릭터를 제안하신 건지 궁금했어요. 배우 중에도 캐릭터성이 짙은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하면, 뭘 많이 꾸며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제가 인연을 믿는 편이거든요. 미국에서 (이)하늬를 만났어요. 우연히 만나서 그렇게 이야기했고, 감독님과 (이)하늬를 믿고 선택했죠. 운명처럼 느껴져서 결정한 것 같아요."
파격적이라도 너무 파격적이었다. 이선균은 "일단 하는 거면 어정쩡하게 말고, 확실히 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전작에서 한 번도 보여준 적 없고, 해본 적 없는 캐릭터였다. 조나단 나는 서사를 끌고 갈 필요도 없었다. 여래를 성안에 어떤 방식으로라도 가둬두는 인물이면 충분했다.
"막힘없이 이야기했어요. 이원석 감독님이랑 너무 잘 맞더라고요. 지금은 너무 베프(베스트 프렌드의 줄임말)가 되었어요. 캐릭터만 보고 간 것 같아요. 처음 캐릭터 잡을 때, 레퍼런스 교환도 많이 했어요.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다 보니, 나르시시즘을 많이 생각한 것 같아요. 약간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줄 때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떠올렸어요. 진짜 독특한 영상은 다 레퍼런스가 된 것 같아요. 넷플릭스에서 호랑이를 훈련시키는 다큐멘터리도 보고 대화를 했고요."
'킬링 로맨스'를 보면 크게 두 가지가 귓가에 남는다. 이선균이 부르는 H.O.T의 곡 '행복'과 "잇츠 굿(It's good)"이라는 대사가 그것. 특히 "잇츠 굿"은 이선균이 만들어 낸 대사라서 더욱 놀라움을 더한다.
"제가 담이 자주 걸려서 도수 치료를 받으러 갔거든요. 그런데 담당 선생님께서 유학파 출신이어서 제가 어떤 자세를 취하면 '잇츠 굿(It's good)'이라고 자꾸 말씀하셨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의견을 냈죠. 조나단은 좀 더 과하게 하려고 했어요. 감독님께서도 너무 좋아하셔서, 저도 모르게 추임새가 되어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캐릭터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웃음)
"'행복'은 감독님께서 유학 가시던 당시 부른 노래래요. 그 당시 힐링곡의 느낌으로 넣었다고 하셨어요. 힘들 때마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의미도 있고, 조나단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행복하세요'라는 표현 자체가 누군가에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이비 교주가 신도들한테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촬영 당시 저는 조나단의 주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장발, 메이크업, 노래 등 참 다양한 도전을 했다. 그 속에서도 이선균은 가장 강한 타격을 느낀 장면을 '태권도 장면'이라고 꼽았다. 이선균이 조나단의 모습을 하고 태권도복을 입고 음과 양에 대한 설명을 범우(공명)에게 보내는 영상을 실제로 촬영할 때였다.
"태권도복을 입으면 타격이 좀 있었어요. 정말 한 컷 찍을 때마다 주저앉았던 것 같아요. 창피해서요. (웃음) 그래도 결과물이 웃겼고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장면은 불가마 장면이에요. 원래 대본은 불가마가 아니었는데, 촬영 당시 코로나 상황이 안 좋을 때라 제한이 있어 시나리오 수정이 불가피했어요. 로케이션 장소도 선물처럼 다가온 것 같아요. 세트가 아니거든요. 실제 강원도에 있는 치료 목적의 불한증막 같은 곳이에요. 이틀 동안 찍었는데 (오)정세 씨도 특별 출연으로 와서 함께 했어요. 뭔가 상황도 잘 맞아떨어졌고요. 그런 합을 불가마 장면을 촬영하면서 느꼈어요. 너무 재미있었고, 지금 봐도 웃긴 장면 같아요."
정말 못하겠다 싶어서 바뀐 장면도 있다. 바로 조나단이 콸라섬에서 여래(이하늬)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조나단은 삼각팬티 차림으로 등장했다.
"첫 등장이 삼각팬티만 입고 콸라섬 해변에서 청국장을 먹으며 등장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건 못하겠다' 했어요. 해변 로케이션도 안 되어서, 그 장면은 바꿨어요. 제가 그 복장만 입고 자신 있게 등장할 수 없겠더라고요. '형, 이 장면은 너무 더러울 것 같아'라고 했어요. (웃음)"
조나단이 수염을 붙이고 떼는 장면도 이선균의 의견이었다. 어떤 수염을 붙일까 고민하던 중 "이 캐릭터는 이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예 수염 케이스를 가지고 다니자고 했어요. 상황에 맞는 수염을 떼고 붙이고 하면, 캐릭터의 성격이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했죠"라고 했다. 그리고 수염은 기묘하게도 그가 장항준 감독과 배우 김남희, 김도현과 함께 새로운 동남아를 탐방하는 tvN 예능 프로그램 '아주 사적인 동남아'에서 보이기도 한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장항준 감독은 준비해 온 수염을 꺼냈고, 세 배우와 나눠서 붙이고 시내에 나간다.
"진짜 우연이에요. (장)항준이 형 제안으로 한 건데요. 사실 여행 당시 영화 '리바운드'는 개봉 일정이 잡혀있었고, '킬링 로맨스'는 개봉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장)항준이 형에게 '약간 홍보도 더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까지 말했어요. 그러고 태국에 갔는데, '킬링 로맨스' 배급이 결정된 거예요. 그때부터 웃겼죠. (김)남희까지 '홍보하려고 수염 붙인 거 아니냐'라고 했는데, 진짜 절대 아니에요, 절대." (웃음)
조나단을 하면서 쾌감이 있었다. 이선균은 늘 캐릭터의 '개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조나단은 활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킬링 로맨스'를 통해 이선균은 "가장 큰 것이 사람을 얻었죠"라고 말한다.
"감독님, 제작자분들, 너무 친한 친구들을 얻었어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을 찍었다고,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 고민이 더해지는 건 없어요. 그냥 너무 큰 기쁨이었고, 영광이었어요.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작고 새로운 작품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그래서 드라마 '검사외전'도 오히려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요. 어쩌면 이 작품도 그래서 저에게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선균은 미리 도전해 보고 싶은 캐릭터나 작품을 미리 정의해 두지는 않는다. 주어진 것 중에 결정한다. 그리고 한번 결정하면, 이를 해낸다. 소소하게 여행 예능 프로그램 '아주 사적인 동남아'를 선택한 이유도 덧붙여 말한다.
"배우들이 대중과 친근해지면 좋기도 하지만, 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드리면, 그 모습이 각인이 돼 연기할 때 캐릭터에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서 출연을 주저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옛날과는 시대가 또 바뀐 것 같아요. 예능을 보면서 선물 받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우리 집에서 저만 봐요. 여행에서 제가 보지 못한 부분이 객관적으로 보이니 '내가 왜 저랬지' 싶기도 하고요. 각자의 서사들이 있더라고요. 김남희와 김도현 부분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저희 넷의 조합이 좋았던 것 같아요."
올해 이선균은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영화 '사일런스', '행복의 나라', '잠',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Dr.브레인' 시즌2의 촬영도 마친 상태.
"올해 개봉을 많이 할 것 같아요. 이원석 감독님과 드라마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지연될 것 같아서요. 제안받은 것 중에 결정하려고 합니다. 일단 관객들이 '킬링 로맨스'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호불호가 분명할 것 같고, '호'인 분들은 한 번 더 보고 싶으시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