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민정, 이병헌 아내·아들 엄마·여배우로 에센셜하게 살아가기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야죠. 하루라도 더 에센셜하게 놀고, 더 많이 여행 다니고요. 그때도 여행을 많이 다니기는 했는데, 멍하니 있던 시간도 있었을 거예요. 다시 돌아가면 더 치열하게 놀고, 치열하게 즐겨야죠."
이민정의 한 마디에 모두가 빵 터졌다. 우리나라에서 모두가 알다시피 배우 이병헌의 아내로 살고 있고,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는 이민정은 그 어떤 질문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답은 어느샌가 듣는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얼마나 엄마로서 아내로서 최선을 다했는지, 그 자신감이 '털털함'과 '솔직함'이라는 답변에 묻어있었다. 아마도, SNS 댓글을 통해 '웃수저'라는 애칭을 얻게 된 것도 그의 단단한 자존감 덕분은 아닐까.
이민정은 영화 '스위치'로 약 10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스위치'는 하루아침에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되는 박강(권상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하루 아침에 박강은 열애설이 끊이지 않는 톱스타에서 첫사랑 수현(이민정)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재연배우로, 수현은 유학을 떠나는 아티스트에서 두 아이의 억척스러운 엄마이자 미술학원 선생님이 된다.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으로, 유명 맛집 김치찌개처럼 예상 가능한 맛이지만 정말 맛있다. 이민정은 "엄마들은 사실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거든요"라며 '스위치'에서 공감한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 보면, 비슷하게 느끼는 면일거예요. 박강이 키즈카페에서 '여기 노키즈존은 없어요?'라고 물어보는 장면처럼, 아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정말 시끄럽거든요. 그래서 엄마들끼리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커피를 사러 가요. 10분이라도 귀가 쉴 수 있거든요. 그런 지점이 '스위치'에 잘 담긴 것 같아요. 영화 속 로희(박소이), 로하(김준)가 제 아들 준후랑 나이가 비슷해서 어떻게 놀아줄지 아니까, 같이 잘 놀고 그 호흡도 잘 담긴 것 같고요. 집에 있는 것처럼 생활했더니, 아이들도 잘 쫓아다니고, 잘 웃고 하더라고요."
영화 '스위치'에서 박강, 수현, 로희·로하의 집이 정말 집처럼 따뜻하게 느껴졌으면, 영화를 제대로 본 거다. 이민정, 권상우, 박소이, 김준에게 그 공간은 정말 집 같았다. 이민정은 "세트 촬영이 유독 많아서요. 나중엔 정말 집처럼 느껴졌어요. 시어머니가 오셔서 김밥 싸주시면, 진짜 김밥 먹고, 같이 밥 먹는 장면에서 정말 먹고, 놀 때는 진짜 놀고, 아이들도 편하게 한 것 같아요. (권)상우 오빠는 너무 편해서 그런지 정말 잘 주무시더라고요. 아이들도 (권)상우 오빠가 몸으로 놀아주면, 촬영이 끝난 후에도 또 해달라고 조르고요"라고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엄마가 된 수현은 박강의 상상 속 인물이다. 뉴욕으로 유학 떠나는 아티스트에서 하루 아침에 두 아이들의 억척스러운 엄마가 되었지만, 이민정은 어렵게 다가가지 않았다. "어차피 상상이잖아요. 그래서 더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캐릭터의 타당성 등을 고민하며 어렵게 접근하지 않았어요. 시크한 아티스트라도 결혼하면 다 똑같아지지 않나요? 자기라고 계속 시크하게 할 건가."
그래서 궁금해졌다. 실제 이민정은 아들에게 어떤 엄마일까. 이민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엄마"라고 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와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면, 엄마와 잘 떨어지기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높아지고, 독립심도 생긴다고 해서요. 말이 안 통하는 아기일 때부터 하루에 책 30권씩 읽어주고, 저 혼자 춤추고, 노래하고 열심히 한 것 같아요. 그때 준후는 엄마의 부재를 몰랐어요. 저는 입 안이 다 헐었어도, 밤새워 촬영하고 들어와서 아이랑 놀아주고 했거든요. 정말 36개월까지 '죽었다' 생각하고 몸을 불살랐더니, 그다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표현을 빨리하니, 짜증도 덜 내고, 빨리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건 할게, 이건 안 할게'라는 판단도 빠르고요."
"그런데 제 친구들과 농담반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육아는 한 레벨을 깨면, 다음에는 더 센 레벨이 남아있대요. 지금까지 쌓여있는 엄마의 에너지가 있어서, 그걸 못 느낄 뿐이지, 스테이지마다 강도가 세져요. 이제 준후가 초등학교 2학년이거든요. 예전에는 울면 달래고, 맛있는걸 먹이면 됐지만, 이제는 좋고, 싫고가 명확해요. 저는 지금 13레벨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아이 2~3살 때가 행복한 거다'라는 이야기를 제가 하게 될 줄 몰랐어요. 20개월까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때 제가 인생 최저 몸무게였어요. 그때는 신체적으로 힘들고, 나중에는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그 말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엄마가 되었기에 '배우 이민정'은 표현의 폭이 넓어졌다. 그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제 위주였다면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세상이 달라져요. 제 중심이 아니라, 제가 책임져야 할 한 생명체가 있잖아요. 그래서 책임감, 감정의 폭 등 모든 것들이 2~3배는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그건 배우에게 어마어마한 장점이거든요. 누군가 느끼지 못한 것을 저는 느낀 거잖아요. 그건 좋은데 너무 힘드니까"라고 다시 말을 흐린다. 그래도 "엄마 고마워, 엄마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아이가 사랑스러워보이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다.
'스위치'에서 박강(권상우)은 하루아침에 상황이 달라져 톱스타에서 대학로 소극장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됐다. 반대로, 소극장에서 함께 꿈을 꾸던 친구이자 자신의 매니저인 조윤(오정세)은 톱스타가 됐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지난날을 마주하게 한다. 이민정 역시 대학로에서 배우의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을 전공한 이민정은 소극장에서 연극과 공연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동기들이랑 만나면 "아직도 21년 전 공연했던 이야기를 해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삼청동, 대학로만 오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가장 재미있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었거든요. 그때 힘들었던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데 그런 게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아직도 동기들은 만나면, '그때 너가 소품을 떨어뜨렸는데, 네가 리액션을 해준 덕분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들을 얘기하거든요. 처음으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연극이었어요. 재미있던 기억도 많고, 자양분이 많이 돼요."
"지금 저와 특별하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제 생각이나, 생활이나,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꿈은 거의 똑같은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고요. 지금 다시 하면 더 노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아무래도 예전에 공연했을 때는 23~4살쯤이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이 살았잖아요. 더 많이 살았다는 건, 더 많이 담을 수 있다는 것 같아요."
그런 그에게 이병헌은 좋은 파트너다.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남편과의 대화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이민정이다.
"제가 좀 보수적인 편이라서요. 작가님이 쓰신 모든 지문에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토시 하나,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한 4년 전쯤 남편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배우가 캐릭터를 고민해서 아이디어로 살을 덧붙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텍스트에 국한되어서 진짜 너의 것을 하지 못하면, 결국 그건 너의 손해가 아니야?'라고 묻더라고요. 그때 '지금까지 옷 거꾸로 입고 몰랐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다음부터는 마음껏 놀았어요. 그리고 감독님께 아니라고 판단되시면 편하게 빼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영화 '스위치' 속에서도 아이디어를 막지 않았어요. 그리고 감독님께서도 많이 열려있는 편이셔서요. 수현이면 어떻게 말을 할지 편하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이민정은 배우로서 꿈을 꾼다. 10년 만에 '스위치'라는 작품을 통해 돌아온 만큼 "영화를 많이 하고 싶기는 하죠"라고 욕심을 드러냈다.
"영화가 좀 더 촘촘하게 만들어지는 느낌이잖아요. 드라마도 당연히 좋지만, 스릴러나 센 장르의 영화도 하고 싶긴 해요. 아이가 볼 수 없는 종류의.(웃음) 제가 도전하지 않았던 영역이 너무 많아서요. 그리고 아직도 우리나라에 여배우들 위주의 캐릭터가 아주 풍성하지는 않거든요. 많은 여자들이 부각되고, 여자들의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다룰 수 있는 소재가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 가장 급선무의 바람은 영화 '스위치'가 제가 한 작품 중에 가장 많은 관객수를 찍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