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리즘 김상균 칼럼

“죽은 자의 삶은 산자의 기억 속에 있다.” 로마 시대에 철학자, 정치가, 법률가로 활동했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남긴 말이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우리 삶에서 유일하게 100%의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은 나의 죽음이다. 모두의 삶은 죽음 앞에서 공평하다. 기록 매체가 없던 먼 과거에 인류는 먼저 떠난 이들을 머리와 가슴 속에 담아놓고 추억했다. 죽은 자의 삶이 산자의 기억 속에 머문다는 키케로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내 숨이 붙어있는 한 내가 삶에서 마주했던 이들, 먼저 멀어져간 모든 이들을 내 기억 속에 붙잡아둘 수 있다. 어찌 보면 참 편리하다. 그러나 애꿎게도 우리의 기억은 매우 불완전하다. 프레드릭 바틀렛은 실험을 통해 인간의 기억이 복원되지 않고, 재생산됨을 증명했다. 1932년에 미국 원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유령 전쟁'이라는 글을 영국인들에게 읽게 하고 일정 기간 후에 줄거리를 말해 보라고 했다. 피실험자들은 회상할 때마다 내용을 바꿔서 말했다. 예를 들어 이야기의 내용 중 피실험자들은 낯선 바다표범 사냥을 낚시로 바꿨고, 카누를 보트로 바꿔서 이야기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지식의 틀에 맞춰 기억을 왜곡한다.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틀에 맞춰 기억을 미묘하게 바꾼다. 기억은 상대방의 의도에 따라서도 왜곡된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교통사고 동영상을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한 집단에는 “두 차가 부딪쳤을 때 속도가 어땠습니까?”, 다른 집단에는 “두 차가 박살 났을 때 속도가 어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두 번째 집단에서 속도를 더 높게 추정했다.

반듯한 회상, 왜곡된 회상, 어느 쪽이 인류에게 더 이로운지는 필자가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회상이 지나치게 왜곡된 반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해주는 무언가가 있으면 어떨까? 시간에 떠내려가 희미해진 기억을 돌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어떨까? 필자는 아바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2019년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달리 뮤지엄'에 새로운 전시물이 들어왔다. 1989년 사망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인공지능, 아바타 기술로 살려낸 전시물이다.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해 달리의 말하는 톤, 언어 습관 등을 학습시켰고, 딥페이크(Deepfake)를 통해 그의 겉모습을 재현해냈다. 관람객은 전시물을 통해 달리와 대화할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가 섞인 달리 특유의 묘한 말투로 관람객에게 말을 건넨다. 대화는 은행의 음성 ARS처럼 단조롭지 않다. 대략 20만 가지 경우의 수에 따라 다양한 대화가 가능하다. 대화를 끝내면 달리와 함께 인증샷도 남길 수 있다.

죽은 자의 삶은 산자의 기억 속에 있다. 메타버스, 아바타는 단지 그 기억을 좀 더 선명하게 이끌어주고 있을 뿐이다.

[김상균 교수] 김상균 교수는 메타버스 분야 학문적 권위자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지과학자다. 다수의 대학, 기업, 공공기관에서 로보틱스, 산업공학, 인지과학, 교육공학 등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메타버스 아바타 기업 갤럭시코퍼레이션의 사외이사로 메타버스 전문 미디어 '메타플래닛',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metarism@galaxyuniverse.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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