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문화축전' 조선왕실의 영광과 아픔이 담긴 4대궁 둘러보기
지난 9월, 문화재청에서 주최한 가을축제 '2014년 궁중문화축전'이 '오늘, 宮(궁)을 만나다'라는 제목 아래 4대궁과 종묘에서 열렸다. 축제에는 야간개장, 전시관, 종묘제례악 야간 개장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져 많은 시민들이 찾았다. 조선왕조의 영광과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4대궁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이에 있다. 광화문 경복궁을 중심으로 도보로 30분~1시간 이내에 나머지 궁궐도 모두 찾아갈 수 있다.
◇ 조선왕조의 법궁, 경복궁
정도전 '큰 복을 누리라'는 뜻으로 작명
이름과 달리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에 큰 수모 겪어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법궁이다. 법궁은 임금이 사는 궁궐을 의미하는 것으로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창건하였다. 개국공신 정도전은 '큰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경복궁의 이름을 지었고, 경복궁 내 모든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경복궁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시절에 큰 수모를 겪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창덕궁, 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없어졌었고, 선조가 전쟁이 끝난 직후 경복궁 중건을 논의했으나 공사 비용, 인력 등의 문제로 그 후 270여년간 폐허로 남아있었다.
1867년 고종 때, 흥성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경복궁을 예전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답게 재건했다. 이성계가 처음 지었을 때 390여칸이었던 경복궁 건물을 7200여칸으로 늘렸다. 그러나 1910년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다시 한번 경복궁은 그 모습을 잃고 말았다. 경복궁의 크기를 10분의 1로 줄이는가 하면 일반 전시회를 이 곳에서 열었고, 경복궁 맨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워 경복궁의 권위를 없애고자 했다. 이처럼 민족 수난의 역사를 함께한 경복궁은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선대원군이 지었던 경복궁의 모습을 복원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이번 축제에서 경복궁 야간개장은 없지만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상설 전시관을 운영 중이고, 매일 오후 7시에는 광화문 전통놀음을 즐길 수 있다. 수문장 교대의식, 주요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전통 도자 전시 등 볼거리도 많다. (경복궁 홈페이지: http://www.royalpalace.go.kr/)
◇ 조선왕조의 이궁, 창덕궁
창덕궁은 태종 5년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고도 부르는 이 궁 역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일부 소실되었다. 선조가 경복궁 대신 창덕궁을 복구하기 시작해 광해군 때 중건이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인조반정 등 여러 건의 크고 작은 화재가 일어나 소실, 복구를 반복했다.
돈화문에서 출발해 진선문, 인정전, 낙선재, 부용지, 불로문, 연경당을 거쳐 후원 숲길까지 거닐며 볼 수 있는 창덕궁의 운치는 특히, 매년 가을 진행하고 있는 '창덕궁 달빛기행'의 밤 풍경 때 단연 최고다. 이번 축제 때는 창경궁, 덕수궁만 야간개장을 실시하지만 조만간 또 진행될 창덕궁 달빛기행도 경험해보면 좋겠다.
북한산 매봉 기슭에 세운 창덕궁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나무가 유난히 많다. 창덕궁 후원에는 조선시대의 뛰어난 조경 양식을 볼 수 있는 부용정이 있고, 160여종의 나무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300년이 넘는 나무도 있다. 그리고 창덕궁은 현재 남아있는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
◇ 왕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경궁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번째로 지어진 창경궁은 왕실 가족이 늘어나 궁궐이 비좁아져 왕실의 웃어른들을 편하게 모시기 위해 성종 때 지었다. 애초에 궁궐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서 다른 궁궐과 비교할 때 규모나 배치가 다르다. 전각의 수가 많지 않고 규모가 작으며 언덕이나 평지를 따라 터를 잡아 배치가 자유롭고 동향으로 지어졌다.
왕실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터라 내전이 더 넓게 지어졌고, 왕비와 후궁 등 왕실 가족이 많이 거처하던 곳이라 왕실 가족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진다. 장희빈과 인형왕후, 사도제사 등의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기도 하다.
궁중문화축전 중에 창경궁은 야간개방을 하고 있다. 창경궁 함인정 일원에서는 국악독주회가 열리고, 통명전에서는 그림자극, 춘당지에서는 창경궁 소리풍경이 열려 볼거리가 풍성하다. (창경궁 홈페이지: http://cgg.cha.go.kr/ )
◇ 구한말, 한국근대사가 담긴 덕수궁
덕수궁이 처음 궁궐로 사용된 것은 임진왜란 후 경복궁 소실로 인해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 곳에 머물면서부터다. 후에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이라 이름 붙였고, 조선말기 고종이 이 곳으로 옮기면서 잠시 궁궐로 사용되었다. 일제로부터 벗어나고자 고종이 지금의 정동과 시청 앞까지 이르는 규모로 경운궁 전각들을 다시 세웠지만 결국 좌절되고 고종은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경운궁이 덕수궁이 된 것은 고종 폐위후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의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린 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되었다. 석조전과 같은 서양식 석조 궁전을 건립한 것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 대한제국의 위용을 세우고자 한 고종의 뜻이 있었다. 하지만 덕수궁은 고종 승하 이후 일제에 의해 축소되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일제의 강압으로 순종에게 양위한 곳이 이 곳 덕수궁이기에 굴욕의 역사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상시 야간개장을 하고 있고, 축제기간 동안 다른 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덕수궁 홈페이지: http://www.deoksugung.go.kr/)
조선왕실의 영광과 아픔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궁궐
4대궁 외에도 경희궁, 운현궁, 종묘 등 서울에는 조선 왕조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유적지가 많다. 그 곳에는 어쩌면 조선왕조의 영광보다는 아픔의 역사가 더 담긴 곳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궁중문화축전을 통해 조선 궁궐에 나타난 조선의 건축미와 문화재청에 준비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야간 조명 속에서 볼 수 있는 궁의 아름다움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