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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후예와 항아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08.07 06:00
  • 작열하는 태양, 정말 너무너무 뜨겁다. 하나의 태양도 이렇게나 뜨거운데 열 개의 태양이 하늘에 뜬다면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아주 먼 옛날 여신 희화(羲和)는 10개의 태양을 낳았다. 그 태양들은 동쪽 끝 부상(扶桑)이라는 거대한 나무에서 살았는데, 매일 돌아가면서 하나씩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10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타났고, 세상은 너무 뜨거워 아무것도 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천제(天帝)는 명사수인 후예(后羿)를 불러 태양을 쏘게 하였다. 후예가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자 세상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 (왼쪽) <후예사일(后羿射日)>, 부조 탁본, (오른쪽) <항아분월(姮娥奔月)> /출처=wikimedia
    ▲ (왼쪽) <후예사일(后羿射日)>, 부조 탁본, (오른쪽) <항아분월(姮娥奔月)> /출처=wikimedia

    이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 바로 위의 <후예사일(后羿射日)>-후예가 태양을 쏘다- 부조(浮彫)다. 가운데는 부상 나무이고, 그 주위의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한다. 그리고 활을 쏘고 있는 사람이 후예다. 후예가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지만, 불행한 후예의 삶은 잘 알지 못한다. 후예에 대한 다양한 전설을 읽기 쉽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후예는 원래 하늘에서 살고 있었는데,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 항아(姮娥)와 함께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지상에서 임무를 마친 후예와 항아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자 하였으나 천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서 늙어가게 된 항아가 우울증에 걸렸는지 남편에게 바가지를 박박 긁었나 보다. 속이 상한 후예가 강가를 거닐다가 예쁜 유부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둘의 로맨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지만, 그 후 후예는 항아에게도 외면받게 되었다. 

    하늘에서 살 때야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정해진 수명만을 살아야 했다. 마침, 서쪽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선 후예는 우여곡절 끝에 그 복숭아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남편을 미워하게 된 항아가 몰래 그 복숭아를 다 먹어버린 후 혼자 달로 떠나버렸다. 이것이 항아가 달로 도망갔다는 ‘항아분월(姮娥奔月)’의 전설이다.

    후예는 아내도 잃고 하늘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자 자신의 특기를 살려, 활쏘기 학원을 차렸다. 제자 중에 방몽(逢蒙)이란 청년이 있었는데, 후예의 가르침으로 명사수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스승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방몽은 스승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방몽은 어느 날 복숭아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자신의 스승인 후예의 뒷머리를 내리쳤다. 

    후예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공헌을 기억하고 신으로 추앙했다. 후예는 죽어서 나쁜 귀신을 쫓는 신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귀신의 왕이 되었다. 

    후예의 아내 항아는 불사약인 복숭아를 혼자 먹은 후 도망갔고, 더구나 복숭아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제자에게 맞아 죽은 후예는 복숭아라는 말만 들어도 기절할 정도의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래서 귀신의 왕 후예는 복숭아를 가장 싫어하게 되었고, 그를 따르는 귀신들도 모두 복숭아를 기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다. 또한 복숭아를 울타리 안에 심지도 않는다. 이것은 조상님들의 혼령이 제사 음식을 먹으러 올 때 복숭아가 있으면 들어오지 못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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