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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변우석)와 솔(김혜윤)의 예쁜 사랑을 예쁘게만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바로 시간을 거슬러 이들에게 비극을 선사하는 연쇄살인마 ‘김영수’(허형규) 때문이었다. 딱히 선재와 솔이를 죽일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솔이가 애써 운명을 바꿔, 행복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김영수라는 불행은 닥쳤다.
tvN ‘선재 업고 튀어’를 끝까지 끌고 간 것은 선재와 솔이었지만, 이들의 사랑에 ‘위기’라는 운명적 서사로 작품에 보는 재미를 더한 건 김영수 역의 허형규였다. 제대로 뜨지 못하고 떨리는 한 쪽 눈의 ‘김영수’는 끝까지, 말 그대로 시청자들을 화나게 했다. 짙게 어두운 곳에서 촛불이 더 밝고 예쁘게 빛날 수 있듯, 허형규는 선재와 솔이라는 예쁜 초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도록 짙은 어둠을 만들었다. 그 역시도 선재와 솔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면서였다. -
- ▲ 영상 : 유튜브채널 '픽콘'
Q. 인기를 실감하나.
“반반인 것 같아요. 제가 극 중에서 나오는 이미지랑 평소 이미지가 다르다 보니까, 한 다섯 분 중 두세 분은 긴가민가하시는 것 같아요. 심지어 제가 며칠 전에 포항에 내려가는데, 양쪽에서 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고 계신 거예요. 한쪽에서는 4화쯤을 보고 계셔서 어차피 저를 잘 모르셨을 거고, 다른 쪽 분은 7화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쓱 봐도 딱 알거든요. 솔이(김혜윤)를 납치하는 장면이 있었단 말이죠. 그렇다고 너무 같이 볼 수는 없으니까, 조심스럽게 있다가 커피를 버리고 다시 제 자리에 앉았어요. 그러다가 딱 눈이 마주쳤어요.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망설였는데, 그냥 다시 핸드폰을 보시더라고요. 못 알아보신 거예요. (웃음) 못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도 온라인상에서는 팔로워도 많아지고, 제 계정에 댓글도 달리고, 이런 걸 보며 ‘작품이 잘 되고 있구나’라는 걸 느끼는데요.”
Q. ‘선재 업고 튀어’ 전보다 SNS의 팔로워가 몇 배나 더 늘었나. 또, SNS에서 솔이의 뒷모습을 올리고 ‘아 놓쳤다’라고 쓰는 등 과몰입한 글 때문에 정말 무섭기도 했다.
“처음 방송 시작하기 전보다, 한 10배는 늘어난 것 같아요. 사실 처음 등장했을 때, 김영수가 연쇄살인마라기 보다 좀 더 미스터리한 인물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도록 비밀스럽게 핸드폰 사진을 올리면서 ‘폰 주웠다’라는 식의 글을 썼는데, 그게 온라인상에서 퍼져가며 ‘과몰입러’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시점으로 찍은 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하게 됐는데요. 좋아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람들도 ‘선재 업고 튀어’에 누구보다 진심인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았어요. (웃음)” -
Q. 처음 ‘선재 업고 튀어’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제가 촬영 중간에 투입됐어요. ‘김영수’라는 캐릭터가 캐스팅이 되어있지 않았던 상태였거든요. 저를 전작에서 눈여겨보신 감독님께서 ‘만나고 싶다’라고 연락을 주셨어요. 소속사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캐릭터를 염두에 둔 미팅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관계자 등 미팅 자리에 가면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거든요. 그런데 캐릭터 말을 듣고, 웃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웃으면 또 ‘멍뭉미(강아지 같은 매력)’ 이야기를 간혹, 어쩌다 듣다 보니, 그 모습을 보시면 안 써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미팅을 출발하려고 집에서 나올 때부터 웃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눈가에 웃는 근육이 잡혀있을까 봐요. 웃음기를 싹 지우고 정말 예의만 갖춰서 인사했어요. 남자 배우라면 꼭 하정우 선배님 같은 누아르적인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 하잖아요. 마침, 그 역할이 제게도 들어온 거죠. 그래서 ‘솔직히 욕심이 좀 많이 납니다’라고 웃지 않고, 정색하며 말씀드렸어요. 나중에 감독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제 첫인상이 좀 서늘했대요. 조감독님께서도 ‘섬뜩했다’고 말씀하셨고요. 어떻게 보면 제 작전이 통한 거죠.”
Q. 김영수를 표현하는 것 중 가장 각인된 것이 ‘눈’이었다. 어떻게 완성된 건가.
“제가 한쪽 눈을 반쯤 뜨고 눈 떨림을 표현하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거든요. 언젠가 사이코패스 역할이나 연쇄살인마 역할을 하게 되면 ‘눈’을 사용해서 섬뜩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완전히 짝눈은 아니지만, 눈을 바로 뜨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서워할 것 같았고요. 연기 인생에 한 번은 써먹어야지 했는데, 그게 이번이었어요. 감독님께서 ‘롱테이크(오랜 시간 카메라를 멈추지 않고 촬영을 이어가는 기법)로 찍으면, 2~3분 같은 표정을 이어가야 하는데 유지가 됩니까?’라고 물어보셔서, 인터뷰 내내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진짜 그렇게 했더니, ‘정말 되네’라고 놀라셨어요. (웃음)” -
Q. 김영수의 서사는 ‘선재 업고 튀어’에 담기지 않았다. 김영수는 도대체 왜 선재(변우석)와 솔이(김혜윤)를 죽이려 했을까.
“처음 감독님께서 ‘김영수는 서사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선재와 솔이를 죽여야 할 이유가 필요 없었으면 한다고요. 김영수가 사이코패스이고, 두 사람이 운이 나쁘게 걸려들었을 뿐이에요. 제가 연쇄살인마에 대한 공부를 했는데요. 그 사람들은 대상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대요. 그 작품을 건드리거나 방해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거죠. 어떻게든 살인을 완성해 내야 하는 것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들의 특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하나의 서사만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필 솔이가 걸렸고, 김영수는 단지 방해물을 없애고 자기 작품을 완성하려 했던 거죠. 그냥 나쁜 사람입니다. 선재와 솔이의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 썩은 수레바퀴 하나가 들어가 있던 거죠.”
Q. 김영수는 썩은 수레바퀴였지만, 그 캐릭터를 연기한 ‘허형규’는 수범(솔+선재 커플의 팬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됐나.
“사실 김영수는 다른 캐릭터보다 거의 선재(변우석)와 솔(김혜윤)을 만날 일이 많았죠. 현장에서 서로 의지하긴 했지만, 사실 별로 친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어요. 감독님도 그걸 원하셨고요. 그래도 워낙 좋은 친구들이라서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그랬어요. 촬영 당시에는 그랬는데, ‘선재 업고 튀어’가 방송되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선재랑 솔이 너무 예쁜 거예요. 둘의 사랑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너무 미운 거예요. 저는 1화부터 16화까지 대본을 다 봤잖아요. 그런데 대본을 볼 때도 선재와 솔이의 사랑에 몰입하게 될까 봐, 흐름만 읽을 뿐 깊게 살피지 않았거든요. ‘김영수가 너무 심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 연기를 세게 하기 힘들어질까 봐요. 김영수에만 집중했어요. 그런데 10화 엔딩 장면을 찍을 때, 현장에 제가 있었어요. 둘의 연애를 직접 눈으로 처음 본 거죠. 너무 예쁜 거예요. ‘이렇게 예쁜 애들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생각이 드니, 그다음부터는 둘의 사랑이 그려지는 부분을 더 못 읽겠더라고요. 그래서 ‘왜 수범이가 됐냐?’라고 물어보시면, 답변은 하나입니다. 다른 수범 이들과 같아요. 선재와 솔이가 너무 예뻤거든요. 둘의 사랑을 응원했었고요. ‘그랬나 봐’가 나오면서 보이는 장면은 진짜. 심지어 제 대학 시절 싸이월드 배경 음악이기도 했거든요. (웃음)” -
Q. 김영수는 선재와 다소 격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변우석과의 호흡은 어땠나.
“강가에서 벌인 선재와의 격투 장면을 보시면, 반소매를 입고 있어요. 그런데 그날이 사실 영하 10도 이하까지 떨어진 날이었거든요. 스태프들 모두 온몸에 핫팩 붙이고 현장에 임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몸이 둔해 보이면 안 되니, 히트텍도 많이 입을 수 없었고요. 또 하필 그 촬영이 제 첫 촬영 날이었어요. 영수가 열쇠 돌리는 장면을 찍었고, 밤에 선재와의 격투 장면을 찍었는데요. 처음 만나서 인사하고, 싸움이 시작되어야 했던 거죠. 힘들긴 힘들었는데, 그만큼 결과물이 너무 잘 나왔고요. 현장이 힘든 만큼, 서로 의지하게 되는 힘도 강했어요. 선재랑 계속 합을 맞춰봐야 하니, 서로 괜찮냐고 물어보며 더 의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자잘하게 풀에 긁힌 상처 정도 있을 뿐 안전하게 촬영했습니다. 촬영 날이 그렇게 추운 날이었는데 집에 와서 옷이 안 벗어지더라고요. 땀에 완전히 젖어서요. 땀 분장을 안 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열심히 찍은 장면입니다.”
Q. 지난 2003년 SBS 드라마 ‘첫사랑’, 2008년 영화 ‘다찌마와 리’로 데뷔했다. 오랜 시간 배우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 묵묵함이 ‘김영수’를 더 무섭고, 두렵게 만들어준 것 같다. 연기에 대해 가진 생각이 궁금하다.“매 순간 어떤 캐릭터를 받고, 제가 소화해 냈을 때 포상을 받는 느낌이에요. 한 역할을 맡았을 때, 제가 진지해지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하는데, 늘 아쉬운 지점이 있거든요. 그러면서도 지나고 돌아보면 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지점을 보면서 ‘내가 지금 고민하고, 예민하게 연구한 것들이 정답이 없어 힘들어할 때도 있지만, 지나고 나면 상처럼 남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게 제가 계속 연기를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나 싶고요. 저는 제가 ‘선재 업고 튀어’라는 작품을 만나게 될지 몰랐잖아요. ‘나는 지금 단역이고, 대사가 한 줄 뿐이야’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그다음 해에는 ‘내가 대사 두 줄이 있네’, 또 그다음에는 ‘내가 한 장면에서 영향을 주는 인물을 했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한 단계씩 나아가는 모습이 스스로도 기분이 좋고, 그것이 계속 배우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영수는 배우 허형규에게 또 다른 시작이 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시작을 만든 건 긴 시간 동안 품어왔던 '허형규의 진심'이었다. '선재 업고 튀어'가 시즌제로 이어지기를 바랄 만큼 작품에 진심이었던 그가 또 다른 작품에서 보여줄 모습에 기대감이 더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심은 꾸며낼 수가 없으니 말이다.
- 글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
- 영상 : 허준영 기자 popkorn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