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족관계는 애증"…염지호 감독, 사랑을 묻는 스릴러 '눈동자' [인터뷰]
간절하게 진실을 보고 싶은데, 볼 수 있는 눈은 점점 멀어져 간다. 이 한 줄로도 다양한 화두가 던져진다. '본다'라는 것의 의미는 뭘까. 또, 사랑과 증오 같은 '보이지 않는' 감정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여러 무게의 추를 영화 '눈동자'는 지니고 있다.
'눈동자'는 유전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서진(신민아)이 의문의 죽음을 맞은 쌍둥이 동생 서인(신민아)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원작인 스페인 영화 '줄리아의 눈'을 바탕으로 했지만, 염지호 감독은 이를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한국적 정서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염지호 감독은 "'눈동자'가 사랑에 대한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행동들이 정말 사랑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줄리아의 눈'은 부부의 사랑이 중심이다. '눈동자'도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보다 한국적인 정서로 다가가기 위해 '가족'을 떠올렸다. 모든 가족관계는 애증 같다.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양가 감정이 공존하지 않나. '눈동자' 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진짜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런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의 중심에는 쌍둥이 자매 서인과 서진이 놓였다. 감독은 이들의 관계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게 빗대어 구상했다. 시력을 잃었지만, 예술적 재능을 꽃피운 서인과, 눈은 멀쩡하지만, 동생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서진의 관계다. 염 감독은 "동생을 사랑하지만 부럽고, 미안하면서도 버거운 감정을 담고 싶었다"라며 "단순한 자매애보다 더 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 도예가 서인의 작품들도 이러한 관계성을 반영한다. 눈이 없는 얼굴 조각상, 얼굴 위에 자라나는 식물, 하나의 얼굴이 둘로 갈라진 형상 등은 모두 쌍둥이 자매의 심리를 상징한다. 그는 "관객들이 꼭 알 필요는 없지만 작품이 변해가는 과정 자체가 서인의 심리 변화"라며 "언니와 멀어진 뒤에는 쌍둥이를 형상화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신민아의 캐스팅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이었다. 염 감독은 "제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받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좋게 봐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워낙 베테랑 배우라 신뢰가 컸다"라고 말했다.
'눈동자'에서 신민아는 쌍둥이 자매 서인·서진 역을 모두 맡았다. 그리고 이들이 시각을 상실하는 과정을 한쪽 눈동자만 움직이는 고난도의 연기로 표현했다. 스크린에서 볼 때는 정교한 CG(컴퓨터 그래픽)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신민아의 연습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염지호 감독은 "첫 미팅 때, 시각 장애를 갖고 계신 분들은 눈의 근육이 퇴화해 눈알 조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틀어질 수 있다고, 그 부분을 말씀드렸다. '해보겠다'라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 '눈동자' 촬영 초반에 어떤 스태프가 저에게 조심스레 '신민아 배우 살짝 사시가 있는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 정확하게 그렇게 보이는구나, 의도가 통했다고 생각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현장에서 신민아의 존재감은 컸다. 특히 염지호 감독은 "현장에서 생기는 사소한 문제들을 쉽게 해결하는 힘을 가진 배우"라고 그를 기억했다. 그는 "서인의 장례식 장면에서 서진이가 입술 위에 꽃을 올려두며 추모하는 장면이 있다. 꽃이 생각보다 예쁘게 올려지지 않더라. 올려두면 자꾸 방향이 틀어지더라. 그때 먼저 되감기 방식으로 촬영하자고 제안해 주셨다. 예쁘게 올려놓고, 편집에서 반대로 되감아 올려놓는 거처럼 만들었다. 현장 경험에서 오는 지점이 저에게는 너무 감사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진이의 시선이 스크린에 옮겨지며, 점점 선명해지는 것은 사운드다. 정체를 모르는 이의 숨소리, 담배가 타들어 가는 소리 등은 관객을 긴장하게 하는 요소다. "10시간 넘게 사운드 작업만 한 날도 있었다"라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염지호 감독은 두 명의 배우의 목소리를 겹쳐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비율을 달리하며 관객에게 메타포를 전하기까지 했다.
1989년생인 염지호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출신으로 독립영화 '옆집 사람'에 이어 장편 영화 '눈동자'를 선보이게 됐다. 그는 "영화는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거로 생각한다. 스크린에 나오는 인물 중 평면적인 인물은 없다고 생각한다. '눈동자'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애증이라는 양가 감정에서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없는 사람은 없지 않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관객들이 몰입하는 데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자기 생각을 밝혔다.
염지호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싶다. 그는 "제가 장르물을 좋아해서, 장르물을 계속하고 싶다. 혼자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있다. 그건 오컬트 장르의 작품이다"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던진다. 염지호 감독이 장르라는 짙은 색에서 길어 올리게 되는 또 다른 이야기는 뭘까. 그가 들여다 '볼' 세상에 궁금증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