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문명 변곡점 만들었다” 도헌학술심포지엄, 국가 시스템 재설계 논의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오늘의 실패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21일 열린 제4회 도헌학술심포지엄 기조 강연에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던진 진단이다.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이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은 ‘패권 충돌의 파고, 한국은 어떻게 넘을 것인가’를 주제로 AI 시대 한국 사회의 과제를 짚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에서는 AI를 단순 기술 경쟁이 아닌 산업·사회 구조 변화의 변수로 바라보는 발언이 이어졌다. 송호근 도헌학술원장은 개회사에서 “AI 출현 때문에 문명 자체가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는데, 어디로 가는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항로가 잘 보이지 않는 시대”라고 말했다.
최양희 한림대학교 총장 역시 기존 질서 변화 속에서 한국 사회가 방향성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던 질서와 가치에서 한참 벗어나 있으며 예전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며 “왜 이렇게 되었냐는 질문은 사라지고 오직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조 강연에 나선 정운찬 전 총리는 AI와 미·중 패권 경쟁, 저성장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존 성장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봤다.
정 전 총리는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 전 영역에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국가 운영 원리와 경제 생태계 규칙을 상생적 패러다임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AI 시대 제조업 경쟁력과 데이터 접근권 문제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정 전 총리는 “전통적 동반 성장이 자본과 노동의 공유에 집중했다면 AI 시대에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공유로 진화해야 한다”며 “대기업은 데이터를 개방하고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역량을 지원하는 기술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경제의 장점인 제조업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대·중소기업 간 제조업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선무”라고 강조했다.
AI 인프라와 플랫폼 독점 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정 전 총리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독점은 후발 주자의 진입을 원천 봉쇄한다”며 “정부가 AI 인프라 비용을 적극 지원하고 오픈소스 모델을 제공해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AI 확산이 노동시장과 사회 구조에 미칠 영향에 대한 경고도 이어졌다. 그는 “AI의 출현은 단순한 기술 대체를 넘어 경제적으로 무용한 계급의 등장을 예고한다”며 “철저하게 계급화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는 기술 충격을 흡수하기는커녕 양극화라는 치명적 재난으로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AI 시대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적 신뢰 회복과 협치 중심의 국가 운영 구조 역시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현행 권력 구조가 정치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하며 실질적인 협치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