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계곡에서 올라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겨울 산행
-눈꽃과 바람, 그리고 비로봉 정상의 칼바람

충청북도 단양과 경상북도 영풍군 사이에 위치한 소백산(1,439m)은 100대 명산 중 하나로 매년 많은 등산객이 찾아든다. 특히 설경이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겨울의 소백산을 올랐다.

하룻밤 사이 내려앉은 눈이 산의 표정을 바꿨다. 청동계곡에서 시작해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소백산 겨울산행은 상고대와 눈꽃이 번갈아 길을 밝히는 시간이었다. 바람의 산 소백산은 이날, 말 대신 풍경으로 겨울을 설명하고 있었다.

산행은 청동계곡에서 시작됐다. 1시간 정도 지나면서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얼어붙은 상고대가 시선을 붙잡는다. 밤사이 공기 중을 떠돌던 미세한 물방울이 차가운 나무에 닿아 순간적으로 얼어붙으며 만들어진 상고대다. 눈이 쌓여 만들어지는 눈꽃과 달리, 상고대는 ‘붙어 자란’ 겨울의 결정이다.

숲길을 따라 고도를 높일수록 상고대의 형태도 달라진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나무에는 깃털처럼 불투명한 상고대가 길게 자라 있었다. 같은 겨울, 같은 산이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풍경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소백산의 겨울 모습/장지은 기자

목재 데크가 이어지는 구간에 들어서자 시야가 한층 트였다. 소백산 특유의 초원형 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의 초원은 색을 덜어낸 대신 형태를 남긴다. 갈색 풀 위로 얇게 덮인 눈, 그 위로 곧게 이어지는 계단길은 정상으로 향하는 직선이 아니라 ‘기다림의 길’처럼 느껴진다.

비로봉으로 가까워질수록 칼바람이 불었다. 정상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정신없이 매섭게 나를 때렸다. 체감온도는 불과 5분 만에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졌다. 얼굴과 손끝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했고, 오래 머무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소백산 정상으로 오르는 모습/장지은 기자

비로봉 정상은 오래 바라보는 장소가 아니라, 잠시 허락받는 공간에 가까웠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서로의 상태를 확인한 뒤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소백산의 겨울은 친절하지 않다. 대신 분명하다. 이곳이 ‘바람의 산’임을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하산은 어의곡 방향으로 잡았다. 정상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며 숲은 다시 가까워졌다. 상고대가 무겁게 달라붙은 나뭇가지 아래로 이어지는 길은 고요했다. 곳곳에는 상고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가지들이 눈 위에 떨어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한파와 낮은 기온이 남긴 흔적이다.

어의곡으로 내려오며 뒤돌아보니 비로봉 능선은 다시 구름 속에 잠겨 있었다. 정상은 끝내 모습을 오래 내주지 않았지만, 소백산은 충분히 많은 것을 보여줬다. 상고대와 눈꽃, 초원과 바람, 그리고 겨울산이 가진 날것의 리듬까지.

소백산의 겨울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단단하다. 청동계곡에서 시작해 비로봉을 지나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이 길은, 겨울산행이 왜 매서운 추위를 감수하고서라도 사람을 산으로 이끄는지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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