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에 선 두 명의 챔피언, 자존심 걸린 대결 시작
6000명 엔지니어 홀린 다쏘시스템의 치밀한 ‘시나리오’

다쏘시스템 연례행사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에서 열린 ‘모델 마니아 익스트림(Model Mania Xtreme)’에서 지앙 파올로 바시(GP) 3D익스피리언스 웍스 수석부사장이 챔피언 벨트를 들어올리고 있다. /김동원 기자

3일 오후 5시(현지시간), 다쏘시스템 연례행사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이 열린 미국 휴스턴 조지 R. 브라운 컨벤션센터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이자 26년 전통을 자랑하는 설계 경연, ‘모델 마니아 익스트림(Model Mania Xtreme)’에 역대급 챔피언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바로 솔리드웍스의 두 수장인 지앙 파올로 바시(GP) 3D익스피리언스 웍스 수석부사장과 마니쉬 쿠마(Manish KUMAR) 솔리드웍스 최고경영자(CEO)였다. 둘이 프로레슬링 링으로 꾸며진 경기장에 오르자 긴장감이 감돌았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두 리더의 대결에 역대급으로 사람들이 몰렸고, 이들의 눈에는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마침내 바시 수석부사장과 쿠마 CEO의 대결이 시작됐다.

이번 대회는 3D 설계 강자이자 리더들의 대결로 기대감을 모았다. /김동원 기자

◇ 마우스를 든 두 거인, 승자는?

모델 마니아는 제한 시간 내에 도면을 해석해 3D 모델을 구현하고 설계 변경까지 완벽히 수행해야 하는, 엔지니어들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전장이다. 빨간 헤드밴드를 질끈 동여맨 바시 부사장은 노련하게 클릭을 이어갔고, 마니쉬 CEO 역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둘 다 이쪽 분야에선 유명 인사지만 이 자리에선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었다.

결과는 가려졌다. 바시 부사장의 승리였다. 그는 챔피언 벨트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포효했고, 쿠마 CEO는 끝까지 마우스를 놓지 못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쿠마 CEO의 오랜 팬이었던 만큼, 그의 패배를 보는 것은 씁쓸했다.

지앙 파올로 바시(GP) 3D익스피리언스 웍스 수석부사장이 승리한 후 벨트를 들어 올리고 있고, 패배한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김동원 기자

대결 후 쿠마 CEO에 패배 이유를 묻자 “바시는 개인 노트북을 썼는데 나는 대회장용 노트북을 썼다”며 농담 섞인 아쉬움을 토로했다. 관중들은 두 거장에게 박수를 보냈고, 대결은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의 팬이었지만, 그가 패배했다. /김동원 기자

◇ 벨트 뺏긴 챔피언… 설계 기업의 ‘거대한 설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쏘시스템의 정교한 ‘설계’였다. 대결이 끝나고 다음 날인 4일, 다시 마이크를 잡은 쿠마 CEO의 표정은 전날과 딴판이었다. 약 6000명이 모인 앞에서 그는 당당히 말했다. “사실 어제 대결에는 제3의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대회 다음 날 기조연설에서 지앙 파올로 바시(GP) 3D익스피리언스 웍스 수석부사장이 벨트를 뺏기고 있다.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가 위풍당당하게 쳐다보고 있다. /김동원 기자

그가 소개한 주인공은 다쏘시스템이 이번 행사에서 베일을 벗긴 차세대 설계 보조 AI, ‘레오(LEO)’였다. 그는 전날 자신이 고전했던 설계 도면을 다시 꺼내 들었다. 사람이 수 분간 씨름해야 하는 복잡한 모델링은 AI 레오의 손을 거치자 단 50초 만에 완벽한 형체로 태어났다.

전날 바시 부사장이 차지했던 벨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사실 버추얼 동반자인 레오와 함께한 작품이었다. 쿠마 CEO의 패배는 레오의 파괴적인 성능을 극대화해 보여주기 위한 철저한 ‘빌드업’이었던 셈이다.

지앙 파올로 바시(GP) 3D익스피리언스 웍스 수석부사장이 벨트를 뻇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뺏기고 말았다. /김동원 기자

◇ “결국 AI를 쓰는 자가 승리한다”

다쏘시스템은 설계 회사답게 기술 시연조차 하나의 완벽한 드라마로 설계해 냈다. 거장들의 자존심 대결이라는 서사를 통해, AI가 단순히 도구를 넘어 인간의 한계를 파괴하는 파트너임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증명한 것이다.

현장의 전문 엔지니어들은 속았지만, 그들이 목격한 것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인류의 설계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는 역사의 분기점이었다. 챔피언 벨트보다 묵직한 ‘50초의 마법’을 목격한 6000명의 엔지니어에겐 AI의 긍정적인 효과가 크게 인식됐다. 기조연설 후 잠시 만난 쿠마 CEO는 “난 패배자가 아니었다”면서 “진정한 승자는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AI를 거부하면 지고 수용하면 이긴다”며 “결국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휴스턴의 링 위에서 증명된 이 ‘설계된 혁신’은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한다. 거장들을 굴복시킨 AI 레오가 1년 뒤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할까. 전 세계 엔지니어들의 뜨거운 시선은 이미 다음 축제의 장, 2027년 내슈빌에서 열릴 예정인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7’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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