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다. 대부분 정상 간에서 시작해 만성 염증과 손상이 오랜 기간 누적되는 과정을 거쳐 발생한다. 이 때문에 간암을 이해하려면 암이 진단된 이후보다, 그 이전에 간이 어떻게 병들어 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상 간에서 만성 간질환을 거쳐 간경변으로 진행되는 간 변화 단계. 간 손상이 장기간 누적되면 간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이미지 제공=서울대병원

간암 발생의 출발점은 대개 만성 간질환이다.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 과도한 음주, 비만에 따른 지방간 등으로 간에 염증과 손상이 반복되면 간세포 구조가 서서히 변형된다. 초기에는 간이 스스로 회복을 시도하지만, 손상이 지속되면 정상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이 과정에서 간은 지방간, 만성 간염 단계를 거쳐 점차 섬유화가 진행되고, 결국 간경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간경변 단계부터는 간암 발생 위험이 급격히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상 현장에서도 간암 환자의 상당수는 이미 간경변을 동반한 상태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상당 기간 별다른 증상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간은 ‘침묵의 장기’로 불릴 만큼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정기 검진을 받지 않는 경우 질환을 인지하지 못한 채 병이 진행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황달, 복부 통증,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은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간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는 간암 치료 역시 복잡해진다. 암의 크기나 진행 정도뿐 아니라, 남아 있는 간 기능에 따라 치료 방법과 예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간암이라도 간 상태에 따라 수술이나 국소 치료가 어려워지고, 치료 선택지가 제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유수종 교수는 “간암은 정상 간에서 바로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고, 만성 간질환이 장기간 지속된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간암을 줄이기 위해서는 암이 생긴 이후보다 정상 간에서 간경변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변화를 관리하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간암 예방의 핵심으로는 조기 발견과 함께 간 질환 단계에서의 관리가 강조된다.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 등 고위험군은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인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해 간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권고된다. 과도한 음주를 피하고, 간염 예방과 치료, 체중 관리 등 생활습관 개선 역시 간암 위험을 낮추는 기본적인 관리 전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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