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법무법인 디엘지(DLG) 고문, 지속가능경영학회 부회장 겸 ESG위원장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대학원 일본 연수 과정에서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온천 복합공간을 방문했다. 전통 온천에 카페와 도서관, 워크룸이 어우러진 이곳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문화와 지역의 재생’을 위한 실험장이었다. 온도(ONDO)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기업의 철학과 운영 방식은 우리나라 도시와 부동산 개발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목욕에서 시작된 문화혁신
온도(ONDO)는 일본 전통의 목욕 문화를 중심에 두고 완전히 새로운 생활문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목욕으로부터 문화를 발신한다’는 기업 철학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이들은 온천과 목욕탕을 단순한 서비스업에서 탈피시켜 지역 사람들의 교류와 회복, 그리고 창의적 영감을 위한 문화 플랫폼으로 전환시켰다.

대표 브랜드인 ‘오후로 카페(Ofuro Café)’는 일본 각 지역의 온천에 현대적인 카페, 서가, 수면실, 라운지를 결합한 형태로 운영된다. 그중 ‘우타타네(Utatane)’는 이름 그대로 ‘선잠의 공간’이다. 방문객은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긴 뒤 커피 한 잔을 즐기고, 독서나 낮잠을 통해 완전한 쉼을 경험한다. 이곳은 도시의 일상에서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일종의 ‘생활형 리조트’로 자리잡았다.

이곳의 공간 디자인은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 대중목욕탕과 카페가 융합된 공간 안에서 마치 집에 있는 듯이 여유롭게 비일상을 경험한다”는 일본 언론의 표현처럼, 온도는 물리적 공간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재설계하고 있었다.

여섯 가지 비전으로 지역을 살리다
온도는 목욕 문화를 중심으로 ‘지역 활성화·특산품 개발·교육 프로그램·엔터테인먼트·라이프스타일 제안’ 등 여섯 가지 영역을 통합한 비전 맵을 제시했다. 온천을 단순한 휴식처가 아닌, 문화·경제·교육이 함께 순환하는 지역 생태계의 중심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각 매장은 지역 농산물과 전통공예를 활용해 메뉴를 개발하고, 지역 예술가와 협력해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그 결과 진출 지역의 관광객 수는 평균 120% 증가했다. 지역의 잠재된 자원을 발굴하여 문화적 부가가치를 창출한 점이 온도의 가장 큰 강점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온도는 ‘데이터 기반 지역활성화 전략’과 ‘사람 중심 경영’을 결합한 모델을 구축했다. 지역의 인구 구조, 관광 패턴, 소비행태를 분석하고, 이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감성적 체험과 과학적 경영을 동시에 실현했다. 이는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 진행되는 일본 사회에서 ‘문화경제’를 재구성하는 현실적 해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 중심의 철학
온도는 조직 운영에서도 ‘사람을 소중히 한다’는 철학으로 일관한다. 직원들에게는 자기계발 지원이 보장되고, 지역 사회 참여가 장려된다. 이러한 제도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실천하는 조직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온도의 직원들은 말한다. “내가 성장할수록 회사도, 지역사회도 함께 성장한다.” 이런 조직 문화는 고객 서비스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방문객은 편안한 공간과 따뜻한 응대 속에서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정서적 환대’를 체험한다.

미디어가 주목한 이유
온도는 일본 주요 방송과 언론에서도 자주 소개된다. “목욕으로 문화를 발신한다(おふろから文化を発信する)”는 철학이 주목받은 이유는, 그들이 첨단 기술이나 막대한 자본이 아닌 ‘일상의 문화’를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도는 일본 대기업 가오(花王)와 협업해 ‘더운 여름일수록 오히려 목욕을’이라는 테마로 입욕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계절과 생활습관을 연결하는 문화적 접근이었다. 또한 한국 문화 페어를 개최해 한일 간 생활문화 교류의 장을 열기도 했다.

이처럼 온도는 전통과 현대, 로컬과 글로벌, 기업과 공동체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지역이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는 새로운 시대의 모델”로 평가한다.

한국이 배워야 할 점
한국의 도시개발과 부동산산업은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공간의 철학은 부족하다. 효율과 수익 중심의 개발 논리가 사람의 삶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온도(ONDO)의 사례는 공간의 본질이 건축기술이 아니라 ‘삶의 경험’에 있음을 보여준다. 부동산이 단순한 물리적 자산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관계의 플랫폼’이 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산업의 철학과도 닿는다. 도시가 단순히 경제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문화를 순환시키는 유기체가 되려면, 종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전통과 기술, 예술과 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야말로 금속처럼 단단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한다. 그런 의미에서 온도의 시도는 한국의 제조·문화산업이 지향해야 할 모델로 읽힌다.

실제로 도시 속 오래된 목욕탕, 찜질방, 재래시장, 유휴공간 등이 다시 지역의 중심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 공간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될 때, 지역은 다시 살아난다.

마무리
온도는 말 그대로 ‘사람의 온도’를 되찾게 하는 기업이다. 그들의 성공은 자본 규모나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사람과 지역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

이번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대학원 일본 연수 현장에서 만난 온도의 공간은, 건물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했다. 도시의 진짜 경쟁력은 높이도, 규모도 아니다. 그 안에 얼마나 따뜻한 관계와 이야기가 담겨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온도의 온천은 결국 물의 온도가 아니라, 사람의 온도를 지키는 공간이었다. 한국의 도시와 부동산이 나아갈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공간을 짓는 일에서 멈추지 말고, 그 안에 관계와 문화를 담아야 한다. 따뜻한 물이 몸을 데우듯, 따뜻한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데운다. 이제 우리의 도시는 속도가 아니라 온도를 회복해야 할 때다.


이종현 법무법인 디엘지(DLG) 고문, 지속가능경영학회 부회장 겸 ESG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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