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안전망…국가·의료계의 협력 절실

2023년 6월, 강원도 속초의 한 산모가 제왕절개가 필요한 응급 상황에서 200km 떨어진 서울 병원까지 헬기로 이송됐다. 다행히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했지만, 시간과 거리를 넘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이처럼 ‘원정 출산’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가임기 여성의 30% 이상이 분만 가능한 병원까지 60분 이내에 접근하기 어렵다. 전국 65개 시군구, 전체의 약 28%가 분만 취약지에 해당한다.

박은애 대한주산의학회 회장(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주산기 의료는 단순한 출산 지원이 아니라,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 영역”이라며 “사회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박은애 대한주산의학회 회장 /사진 제공=대한주산의학회

출산 자체가 고위험…고령 산모 34% 시대

임신 22주부터 출생 후 1주일까지를 일컫는 ‘주산기’는 산모와 태아, 신생아 모두에게 위험도가 높은 시기다. 특히 고령 산모 비율은 2012년 약 17%에서 2022년 34%를 넘었고, 평균 출산 연령도 계속 상승 중이다. 이에 따라 조산, 저체중아 등 의료적 위험이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

박 회장은 “모든 출산이 고위험이 될 수 있는 시대”라며, “이를 안전하게 넘기려면 고도로 숙련된 인력과 촘촘한 의료 시스템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령 산모의 증가는 개인적 선택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이에 따른 의료 수요의 질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 임신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태아 발육 지연이나 조산 위험도 동반 상승한다. 박 회장은 “산모와 아기가 안전하게 출산을 맞이하려면, 산전·산후 전 과정에서 정밀한 모니터링과 맞춤형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의 도움, 그러나 사람의 역할은 대체 불가

최근 인공지능(AI) 기반 태아 모니터링, 고위험 임신 예측 솔루션 등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주산기 진료에 도입되고 있다.

박 회장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조기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의료진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기술의 장점을 인정했다. 실제로 일부 병원에서는 태아 심박수, 산모 혈압, 자궁 수축 패턴 등을 실시간 분석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경고하는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다.

다만 그는 “출산과 신생아 진료는 예외 상황이 많고, 긴박한 순간에 경험과 직관이 필요하다”며 “기계가 제시하는 수치와 패턴만으로는 모든 상황을 대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 역시 산전 관리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제 분만과 신생아 치료에는 숙련된 현장 의료진이 필수적이라고 부연했다.

사진 제공=대한주산의학회

인력과 환경, 함께 보강해야 할 과제

박 회장은 “현장 의료진이 안정적으로 진료할 수 있으려면 근무 환경 개선, 충분한 교육 기회, 합리적인 보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기반이 갖춰져야만 더 많은 전문 인력이 주산기 진료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일부 거점병원에서는 신생아중환자실(NICU) 운영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부족해, 담당 의료진이 장시간 근무를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박 회장은 “NICU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시설 지원, 고위험 산모 진료에 적합한 인력 배치 등은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라며, “안정적인 인프라가 곧 환자의 생명 안전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대한주산의학회의 사명

대한주산의학회는 주산기 의료의 질 향상과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중점 과제로는 ▲신생아 전문의 및 고위험 산모 전담 인력 교육 확대 ▲지역 의료진 대상 연수 프로그램 운영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연구·정책 제안 등을 제시했다.

박 회장은 “주산기는 한 생명의 시작을 지키는 시간”이라며 “국가와 의료계,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안전한 출산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학회 차원에서 전국 병원과의 연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국제 학술 교류를 통해 최신 의료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저출산 해법, 결국 사람

박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주체는 사람”이라며 “저출산 시대에 필요한 건 고위험 출산을 책임질 숙련된 인력과 이를 지원하는 든든한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산기 의료를 강화하는 것은 단순히 출산율 문제를 넘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사회적 약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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