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호프' [리뷰]
'곡성', '황해' 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의 신작 제목이 '호프'라니, 어딘가 낯설고 어색하다. 그래서 '호프'는 그 자체로 영화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 된다. ’호프‘라고 하면 응당 ’HOPE'라는 단어, 희망을 떠올리겠지만, 중의적 표현으로 이른 바 '죽여주는' 스크린 속 '호프'는 끝내 안갯속에 머문다.
비무장지대 인근 작은 항구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은 논길 위에 죽어있는 소를 본다. 이를 두고 마을 청년들은 호랑이가 나타났다며 숲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온 범석이 마주한 것은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과 부서진 건물, 피어오르는 연기, 폐허가 된 땅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했을까. 범석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총을 앞세워 다가간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인간보다 크고, 강하고, 빠른 존재를 향해 겨눌 수 있는 건 총뿐이다.
'호프'는 크게 두 가지 줄기로 나눌 수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과, 그 실체가 드러난 이후 생존을 위한 사투다. SF, 액션, 스릴러, 심지어 웃음까지 쉼 없이 교차하지만, 정작 나홍진 감독이 쌓아 올리는 긴장은 정체불명의 존재보다 그 존재를 바라보는 인간들의 반응에서 비롯된다. 보이지 않을 때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서, 보일 때에는 그 존재를 향해서 총을 겨눈다.
액션은 ‘호프’의 가장 큰 미덕이자, 작품을 전개하는 언어다. 총소리부터 툭 튀어나오는 욕설, 덜덜 떨리는 다리,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흔들리는 눈동자까지 모두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는 언어처럼 읽힌다. 나홍진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액션 연출을 여과 없이 담는다. 덕분에 156분이라는 상영시간은 지루함 없이 흐른다. 가장 잔인하게 내지르고, '불가능'한 액션을 화면에 옮긴다. 특히 이는 CG가 아닌 실제 촬영을 기반으로 완성됐기에 더욱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포스터를 통해 공개된 달리는 말 위에서 성기(조인성)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장면부터 말을 타다 차량으로 갈아타는 시퀀스까지, 배우들이 직접 소화한 액션은 영화의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이 모든 것을 직접 해낸 배우들과 CG로 구현된 외계인은 그 자체로 이들 모두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질문이 된다.
조인성이 연기한 성기는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생존형 캐릭터다. 심지어 두 손을 놓고 말을 타고 숲을 질주하고, 차량과 말을 넘나드는 고난도의 액션을 소화하면서도 끝까지 영웅이 되지 않는다. 두려워하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 처절한 생존기는 문득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리게 한다. 조인성은 실제라고는 믿기 힘든 목숨 건 액션과 공포를 견디는 인간의 얼굴을 오가며 ‘호프’의 깊이를 더한다.
황정민은 관객을 영화 속으로 깊숙하게 이끌고 들어간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두려워하며 한 발씩 나아간다. 출장소장이라는 책임감과 동시에 인간적 두려움이 교차한다. 숨 막히는 긴장을 이어가다가도 그의 생활감 넘치는 욕설과 능청스러운 연기로 한숨을 돌리게 만든다. 긴장을 조였다가 웃음으로 풀고, 다시 공포를 밀어 넣는 호흡은 황정민이기에 가능한 리듬이다. 정호연 역시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상대에 맞선다. 욕설, 총기 사용, 카체리싱 등 자신이 해내야 할 몫을 정확하게 해내며 ‘배우 정호연’을 더욱 각인시킨다. 여기에 선지자 같은 '해솔이 아저씨' 역으로 등장한 임현식을 비롯해 모든 배역 남다른 에너지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다만 '호프'는 나홍진 감독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품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에도 가장 먼저 상처 입은 생명을 화면 한가운데 놓는다. 그리고 동물, 인간 등 살아있는 것이 파괴되는 순간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 잔혹한 이미지들은 영화의 긴장감을 극대화하지만, 폭력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려는 연출은 때로는 폭력 자체를 감상하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선다.
'호프'는 인간과 외계인 모두에게 분명한 목적을 부여한다. 그런 면에서 '호프'는 나홍진의 작품 중에서도 비교적 선명하게 의미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어느 한쪽의 정의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호프'는 이해하지 못한 채 충돌하는 존재들을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호프'는 끝내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말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한 구절을 계속 곱씹게 한다. '호프'가 끝난 뒤 오래도록 남는 것은 끝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분노, 혐오, 폭력, 그리고 끝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를 향해 겨눈 시선이다.
나홍진 감독은 '호프'의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비극은 퍼스펙티브(perspective, 관점)에 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호프'는 서로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충돌하는 존재들을 바라보며, 관객에게도 자신의 시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과연 인간에게 '호프'는 있는가. 7월 15일 개봉. 상영시간 156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