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만으로 좌심실 비대 감별하는 AI 개발… 진단 성능 최대 96%
분당서울대병원 윤연이 교수(순환기내과) 연구팀이 심장초음파 영상만으로 좌심실 비대를 감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했다고 2일 밝혔다. MRI 같은 정밀검사 없이도 대표적 원인 질환을 높은 정확도로 구분할 수 있어, 진단 속도와 효율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이다.
좌심실은 폐에서 산소를 받은 혈액을 온몸으로 내보내는 심장의 핵심 부위다. 이 부위의 심근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면 심장 기능이 저하되는 ‘좌심실비대’ 상태가 발생하며, 고혈압성 심장병, 비후성 심근병증, 심장 아밀로이드증 등 다양한 원인 질환이 관여한다. 원인에 따라 치료법과 예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감별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임상에서는 심장초음파가 1차 검사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검사자의 육안만으로는 미세한 구조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워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이로 인해 진단이 지연되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장초음파 영상 기반의 AI 진단 모델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심근의 패턴과 형태 변화 등 1만9천여 개의 영상 특징을 수치화해 AI가 학습하도록 했고, 이를 통해 ▲고혈압성 심장병 ▲비후성 심근병증 ▲심장 아밀로이드증의 감별 진단이 가능하도록 모델을 설계했다.
외부 의료기관의 독립된 검증 데이터를 활용해 AI 모델의 성능을 평가한 결과, 비후성 심근병증(AUC 0.96), 심장 아밀로이드증(AUC 0.89), 고혈압성 심장병(AUC 0.83) 등 주요 질환에서 높은 진단 성능을 보였다. AUC(곡선하면적, Area Under the Curve)는 AI가 질환을 정확히 감별해낼 확률을 수치화한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진단 성능이 높음을 나타낸다.
또한 고혈압성 심장병의 진단 민감도는 기존 심장초음파 방식에서 33% 수준에 머물렀지만, AI 모델은 75%까지 향상됐으며, 비후성 심근병증의 F1 점수도 0.57에서 0.87로 크게 증가했다. F1 점수는 진단 정확도와 일관성을 함께 평가하는 종합 지표다.
해당 AI 기술은 진단 과정에서 주목한 영상 부위를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어, 의료진이 AI의 판단 근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뢰성과 임상 활용도 또한 높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심장협회(AHA) 학술지 ‘Circulation: Cardiovascular Imaging’에 최근 게재됐다.
연구팀은 향후 이 기술을 파브리병, 다논병 같은 희귀 질환이나, 운동선수에게서 나타나는 생리적 좌심실비대 감별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윤연이 교수는 “임상 현장에서 좌심실비대의 원인을 신속하게 구분하지 못하면 치료 기회를 놓치거나 나쁜 예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을 통해 기존 초음파 진단의 한계를 보완하고, 보다 빠르고 객관적인 감별 진단 가능성을 제시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