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홍위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 / 사진 : 쇼박스 제공

배우 유해진은 배우 박지훈에 대해 "그 친구가 연기도 연기지만, 사람으로서도 괜찮은 애인 것 같아서 제가 이렇게 떠드는 것 같다. 눈빛이 진솔하기도 하고, 무언가 '척'하지 않아서 되게 좋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박지훈이 있었다.

인터뷰에 임하는 박지훈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앞에 놓여있는 종이였다. 그리고 펜에는 그가 출연한 시리즈 '약한 영웅'이 쓰여있었다. 질문을 받으면, 종이에 간단히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토대로 천천히 답을 이어갔다. 박지훈의 답에는 그 어떤 '척'도 없었다. 굳이 꾸며내기보다, '이홍위'였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 모습에 나약하지 않았던 왕이었던 남자, 이홍위가 있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제공

Q. 이홍위는 왕이었고, 폐위되어 노산군이 되었고, 한참 후에야 '단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비운의 왕이었다. 박지훈이 생각한 '이홍위'가 궁금하다.

"나약하지만은 않은 단종을 그리고 싶었다. 목소리의 디테일을 잡아가려고 했다. 초반 호흡이 섞여 있는 듯한 목소리에서, 점차 범의 눈으로 성장해 나가며 조금 더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최우선의 목표는 체중감량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를 제안받았을 때, '약한 영웅 2' 촬영을 마쳤을 때였다. 저에게 휴가 기간이었기에 탈색도 한 상태였고,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상 생활할 때였다. 그래서 살도 좀 쪄있었다. 장항준 감독님께서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많이 놀라셨다고 하시더라."

Q. 장항준 감독님도 배우 유해진도 첫 촬영 때 완벽하게 체중을 감량해 온 '박지훈'을 보고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어떤 노력을 했을까.

"'살을 좀 빼야겠다'라고는 말씀하셨지만, 구체적으로 몇 킬로를 빼 오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건 제 욕심이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빼보자. 말랐다기보다, 정말 뼈밖에 없다는 표현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준비하는 두 달 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사과 한 조각 먹으면서 잠도 잘 못 자고, 방 안에 틀어박혀서 대본만 주야장천 보며 좀 피폐해진 삶을 살았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닌데, 그냥 그렇게 변해갔던 것 같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제공

Q. 촬영 현장에서도 거의 곡기를 끊었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있을까.

"현장에서 선배님들께서 저를 바라봐주시며 '안됐다, 왕이었는데, 저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유배를 와'라는 생각을 하시길 바랐다. 그래서 첫 촬영 때까지 빠르게 체중감량 하기를 원했다. 그런 에너지를 드리고 싶었다."

Q. 이홍위에 외모도 있지만, 내면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한 바가 있을까.

"단종은 어린 나이이지만, 분명 궁 안에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을 거다. 작품에 임하며 '그 어린 나이에 많은 걸 겪었겠다'라고 생각했다. 촬영 현장에서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의 단종은 얼마나 무기력하고 공허했을지 상상도 안 가더라. 저 혼자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전날 촬영한 장면과 이어지는 감정에 다다르며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고민을 많이 하고 현장에 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저는 현장에서 주변 인물들을 보고 흡수해 가는 스타일인 것 같다. 선배님들과 감정을 쌓고, 맞춰나가다 보니, 결국 마지막에 그런 시너지가 터지지 않았나 싶다.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과정의 끝에 마지막 장면이 있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홍위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 / 사진 : 쇼박스 제공

Q. 이홍위의 첫 장면이 한명회(유지태)와 대면하는 장면이다. 옆 모습에 바르르 떨리는 입술이 그의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첫 장면이 저의 첫 촬영 날이었다. 리허설할 때, 유지태 선배님이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시는데, 못 보겠더라. 너무 무서웠다. 장항준 감독님께 '너무 두렵습니다, 못 보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감독님께서 '너 편한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해'라고 답해주셨다. 그때부터 촬영에 대한 긴장감을 좀 내려놓았다. 목소리와 근육의 떨림은 정말 무서워서 나온 것 같다. 의도하려고 한 건 아닌 것 같다. 체중감량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는데, 스크린에서 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잘 보여지는 느낌이더라. 그런 걸 바라보며 또 하나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Q. 제목 '왕과 사는 남자'처럼, 이홍위 옆에 마을 촌장 엄흥도가 있었다. 마음을 내어주는 사이가 되어가는 두 사람이 유해진, 박지훈 그 자체의 모습으로도 보였다. 

"칭찬에 차오른 눈물은 아니었다. 이홍위와 엄흥도가 마지막으로 마주보는 장면을 촬영할 때, 리허설을 하면서도 너무 많이 울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오랜만에 보는 심정이었다. 촬영 날, 선배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선배님께서 저를 안 쳐다보시더라. 그때 딱 알았다. '선배님이 저를 보면 터지시겠구나, 감정을 절제하고 계시는구나'라고. 빠르게 인사하고 나왔다. 리허설을 할 때, 유해진 선배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데, 그때 에너지는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제가 출연작이 많은 것도, 연기 생활이 오래된 것도 아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그 감정이 기억난다. '살면서 이런 감정을 또 느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제공

Q. 도대체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두 사람의 눈에 가득 눈물이 차올랐을까.

"제가 딱히 선배님께 계획적으로 다가가거나, 잘 보이려고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또 그렇게 다가가지 않은 것이 선배님께 더 예뻐 보였던 것 같다. 제가 빈말을 잘 못한다. 이런 것도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선배님과 강가를 걸으며 산책도 하고, 촬영장에 같이 걸어 올라오며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점점 쌓여간 것 같다. 마지막에 그 시간들이 에너지가 되어 터진 것 같다."

Q. 실제로 배우 유해진은 인터뷰 현장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이 작품과 인물들 그리고 박지훈에게 애정을 보여주셨다. 웹 예능 '살롱 드립'에서 유해진의 핸드폰 속 저장명이 '박지훈'이 아닌 '지훈이'가 되고 싶은 욕심도 그런 베이스로 비롯된 것 같다.

"선배님께는 갈망이 컸다. 유해진 선배님에게 '지훈이'로 저장되어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제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제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봐도 되지 않을까 해서 바꿔 달라고 했는데 바꿔주셨다. (웃음) 선배님은 선배님이시지만, 어떨 때는 되게 형 같고, 어떨 때는 되게 아버지 같다. 제가 살갑게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닌데, 알게 모르게 다가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제일 큰 건 개그 코드가 너무 잘 맞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홍위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 / 사진 : 쇼박스 제공

Q. 왕이 된 것도, 폐위가 된 것도, 어느 것 하나 자기 뜻대로 선택하지 못했던 이홍위가 선택한 마지막이 있었다. 그 장면을 촬영하는 순간이 스스로에게도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도 너무 아팠다. 몸이 아팠다기보다, 몸 안에 있는 무언가가 굉장히 많이 아팠다. 만약 이 역사가 사실이라면,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일지 제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힘들어지는 경험이었다."

Q.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서도 성장을 발견했을까.

"저는 이미 얻었습니다. 유해진, 유지태, 전미도 선배님, 그리고 장항준 감독님. 이분들을 얻었기에 저는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 워낙 거장 감독님이시고, 대선배님들이셔서 노심초사했었다.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연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많이 배워가는 것 같다. 선배님들을 보면서 '연기는 저런 거구나',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를 느끼며 다시 한번 존경의 마음을 가졌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홍위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 / 사진 : 쇼박스 제공

Q. "내 마음속에 저장"을 외치다가 배우로 임했을 때, 그리고 '약한 영웅'이라는 시리즈에서 마주했을 때, 그런 변신의 순간마다 굉장히 놀랐다. 그 놀라움은 '왕과 사는 남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 성장의 동력이 있을까.

"저는 현장에 많은 준비를 해서 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흡수력이 조금 빠른 것 같다. '저렇게 하시는구나'라고 늘 바라보고, 제 안에서 계속 배움을 얻는 것 같다. '저런 걸 배워야지'라고 배우기 위함이 아닌, 알게 모르게 습득하며 성장해 온 것 같다. 선배님들의 대사, 호흡, 발성 등을 보고 들으며 기억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내공이 아주 조금씩 쌓여가는 것 같다. 혼자서 하는 루틴이나 과정은 없다."

박지훈은 인터뷰 중 그 어떤 노력도 강조해서 말한 적이 없다. 노력에 늘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그런 모습 속에도 여전히 '단종'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척'하지 않는 진심은 통한다. 현장에서 밥차의 맛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현장에서 사람들과의 마음을 그 이상으로 쌓아 올리며, 그는 그렇게 '왕과 사는 남자'에 임했다. 여전히 성장형인 박지훈의 앞으로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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