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유은호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준혁 / 사진 : 에이스팩토리 제공

"되게 쉬운 거.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걸 가르쳐 준다는 게 (좋았어요). 사람에게 신발을 가져다준다는 것, 말 한마디 곱게 해주는 것, 그냥 정말 반창고 하나 붙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 가만히 같이 걸어주는 것. 다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만약에 어릴 때 이 작품을 봤다면, '내가 저 정도 하면 멋있는 남자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감이 생겼을 것 같아요."

SBS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속에서 '유은호'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준혁이 말했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말 그대로 일과 성과밖에 모르는 CEO 강지윤(한지민)이 자신의 비서로 유은호(이준혁)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은호는 홀로 딸 별이(기소유)를 키우는 싱글 대디다. 딸의 우울한 마음을 헤아리며 갑작스럽게 육아휴직을 쓰게 됐고, 복직했을 때는 상사의 미움을 사 억울하게 회사에서 내쳐지는 인물이다. 재벌가도, 초능력자도 아니지만, 그에게는 온기가 있다. 사람의 한 발 뒤에서 마음을 비롯해 모든 것을 착착 제자리에 둘 수 있도록 헤아리는 인물, 그런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이준혁이었기에 '완벽하게' 그려졌다.

Q. '나의 완벽한 비서' 열풍이다. 인기를 실감하는지 궁금하다.

"제가 오늘 가장 실감하는 건, 지금까지 인터뷰 때 오지 않았던 대표님이 왔다는 점에서 가장 실감하고 있습니다. (웃음) 정말 (인기를) 조금도 예상 못 했어요. 드라마를 임하면서 시청률이 이렇게 잘 나온 건 주말 드라마를 제외하고 '적도의 남자'(2012년, 최고 시청률 15.2%) 이후 처음인 것 같아요."

Q. '유은호'는 흔히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돈이나 힘 등을 자랑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캔디 남주'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제가 은호를 생각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지점은 2회가 되면 주인공으로서 목적성을 잃어버리는 캐릭터라는 점이었어요. 사실 아이가 우울해해서, 이를 치유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사용했고, 다시 생계를 위해 회사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러고 우여곡절 끝에 비서로 채용되고요. 그때부터 사실 은호의 삶의 목적이 없어요. '여기에서 잘해야 한다'라는 정도예요. 그런 지점에서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은호가 대부분 장면에서 모든 캐릭터에게 조연처럼 쿠션을 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은호가 엄청나게 튀거나 그러지 않고, 음악으로 치면 기타 베이스처럼 은은하게 깔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메인 보컬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은호가 너무 정답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이 시청자들에게까지 가닿기 자칫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장면의 사이에 묘한 클리셰(cliche , 상투적인 표현)을 깨는 행동들, 유머들, 아니면 좀 이상한 움직임들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Q. 클리셰를 깨는 묘한 움직임들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줄 수 있을까.

"사실 되게 많아요. 예를 들면, 처음 은호가 혼나고 카페에서 동기랑 대화할 때 동선들이요. 은호가 밖으로 뛰어나갈 것 같은 움직임을 한다거나. 그런 동작들이 후반작업을 마치고 음악과 함께 보여지면 리듬감이 살아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대사보다 은호의 동선을 극대화한 측면이 있어요. 또 딸 별이(기소유)를 안아서 돌리거나, 그런 모습도 리듬감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휴지를 말아올린다거나, 사탕을 입에 많이 문다거나, 갑자기 대표님께 농구를 제안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기에 그 사이 위트를 넣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Q. 굉장히 크게 와닿은 것이 딸 별이를 바라볼 때 눈빛이었다. 항상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어떤 과정을 통해 가능했던 건지 궁금하다.

"별이랑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제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일단 무섭더라고요. '이 나이대 아이가 현장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했어요. 제가 정말 수년간의 현장 경험이 있어서 웬만한 리스크에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아이는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놀라웠던 건 수많은 문제적 이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소유가 완벽한 배우였던 거죠. 대화를 나눌 때, 물론 아이니까 귀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대화 전반에서 배우로서의 공력이나 깊이가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고요. 아이가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고, 스스로 잘 이겨냈고, 성장했고, 배우라는 직업에서 단단하구나라고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멋있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도 (기)소유가 딱 그 현장을 휘어잡더라고요. 제 딸이지만, 굉장히 유능하고, 똑똑하고, 너무 예쁘고, 그렇습니다."

Q. 머리를 땋는 모습은 오랜 연습의 결과였나.

"연습했죠. (기)소유를 데리고 연습할 수는 없어서, 스태프들의 도움도 받고, 마네킹 머리도 만져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머리는 더 얇아서 잘 안 따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에 조금 자부심이 있습니다. 사실 현장에 머리를 묶어주는 대역분이 오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더 잘해서 다행히 제가 해냈습니다. (웃음)"

Q. 한지민과의 멜로 호흡도 궁금하다.

"(한)지민 씨는 이미 모든 검증을 끝낸 프로페셔널한 분이시잖아요. 무협지로 보면 거의 어마어마한 내공의 소유자 같은 분이시죠. 너무 든든했어요. 제가 멜로라는 장르는 아직 경험하고, 검증된 적이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한)지민씨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안고 가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일단 짊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왜 저랑 했을까?' 싶으면서도 감사합니다. 현장에서 의지할 수 있는 너무 멋있는 동료를 또 한 번 만난 것 같아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Q. '캔디 남주'라는 말도 있었지만, 작품 속에서 비서나 주부의 역할은 여자들의 몫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역할이 뒤바뀐 느낌이다. 이번 작품에 임하며 느꼈던 지점이 있을 거 같다.

"제가 기존에 했던 작품들이 너무 독특하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져 있어서인지, 은호라는 인물이 제 안에서는 독특했어요. 따뜻하고, 정답 같은 드라마가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건 아니지만, 은호라는 인물을 통해 사소한 것부터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네가 재벌이 아니어도 되고, 네가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자가 아니어도 되지만, 그냥 문손잡이 하나 고쳐주는 것만으로도, 고개 숙인 사람이 테이블에 부딪히지 않도록 손을 대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일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런 포인트들이 감동받았던 지점이었어요. 사실 집안에서의 일들이 너무나 등한시됐던 것 같아요. 이렇게 멋있는 일인데요. 저는 (집안일과 바깥일 중) 뭐가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정말 멋있는 일이라는 게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은호가 하는 일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아이를 위해 건강하게 밥을 하고, 그 일이 지윤(한지민)이 하는 일보다 더 안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더 멋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Q. 이번 작품을 통해 비주얼도 큰 화제였다. 특히 이준혁 3대 등장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싶을 정도로 '60일, 지정 생존자', '좋거나 나쁜 동재' 속 남다른 등장 장면까지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자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사실 은호의 등장 장면을 봤을 때 좀 그런 게 있었죠. 제작비가 상당한 장면이거든요. '이건 살려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은호가 예술의 전당에서 지윤을 만날 때, 보조 출연자가 거의 100명 가까이 등장하거든요. 저는 SBS에게 되게 감동받았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위해 그 태양 아래에서 고생하는데 잘해야죠.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은호를 보면 저도 놀라요. 왜냐하면, 저보다 나으니까요. 그러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어요. 장르물에서는 저의 특이한 부분을 더 강조하잖아요. 그런데 은호를 찍을 때는 더 좋은 조명, 더 예쁘게 담기는 앵글 등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현실에 없는 가상 비주얼을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저를 보시더라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이번 작품에서 자신이 만든 곡 '나무늘보'가 등장하기도 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아기 보'라는 노래는 작곡은 저랑 함께 참여하는 황브라더스라가 함께 했고요. 제가 기획 및 제작을 했죠. 자비가 들어간 작품입니다. 아직까지 수익은 없고요. 현장에서 감독님께 들려드렸어요. 재미로 들려드린 건데 '좋다'라고 하시며 '드라마에 써도 되냐?'라고 말씀하시기에 '너무 좋다'라고 했죠. 그래서 더 본격적으로 제작했죠. 가이드만 있던 것을 함께 완성해 갔죠. (서)혜원이도 쓰고, 이러면서요. 제가 돈이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이 없어요. 그래서 다음 곡도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 곡은 성인들이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음악적 조예가 깊어서는 아니고요, '이준혁이 이런 취미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이번 작품 공개를 앞두고, TV 예능과 웹 예능 등 홍보에도 활발하게 참여하셨다. 그래서 '밀키 바닐라 엔젤'이라는 애칭도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예능은 어려워요. 제가 이 업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저만의 판타지가 있었거든요. 제가 20대 때 '캐릭터를 100% 완벽하게 수행하면, 사람들도 나를 그 캐릭터로만 생각하고 모르겠지. 이 세상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거야. 영원히 캐릭터로 기억될 거야'라는 판타지가 있었어요. 저도 크리스천 베일이나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같은 분들을 보면서 그게 쉽지 않았거든요. '아임 낫 데어(2008, 토드 헤인즈 감독)'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밥 딜런의 전기 영화예요. 그런데 거기에서 각기 다른 배우들이 밥 딜런을 연기해요. 결국 '밥 딜런은 누구였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그런 판타지에 빠져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만약 미래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아마 접근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두렵고 하지만, 영상으로 남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제가 장도연 씨와 '살롱드립2'를 찍고, 그다음 날 박나래 씨와 '나래식'을 촬영했거든요. '살롱드립2' 찍고 난 후 굉장히 고열이 나고 아팠어요. '나래식' 보면 위염에 걸렸다고 했거든요. '나는 이런 걸 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Q.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 이준혁이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가장 좋은 건 역시나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었을 때, 보시는 분들이 좋아해 주시면 거기에서 저는 좀 대화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 반응이죠. 어쨌든 저희는 요리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제가 얻는 것보다는 보시는 분들이 얻는 것이 더 많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얻는 건 다음 일거리겠죠. 저희 작품을 보신 분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그것이 삶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도 이제 열심히 다음 일거리하고, 돈 벌어서 남이 해주는 연기를 보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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