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있으면 나비가 날아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일반적으로 ‘꽃과 나비’는 남녀 사이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상징한다.

그런데 유교적 이념이 지배하던 옛날, 공개적인 남녀의 연애는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하여 금기시되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꽃과 나비를 그려 남녀의 만남을 공공연하게 표현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꽃과 나비를 그린 그림은 일반적인 상징성과는 다르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왼쪽)<훤접도> 죽향(竹香),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훤접도> 장대천(張大千), 출처=바이두

그림의 주인공은 원추리다. 원래 훤초(萱草)였는데, 훤초가 원초, 원초가 다시 원추가 되었다가 원추리로 굳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꽃으로 봄이면 새순을 데쳐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훤초(萱草)는 망우초(忘憂草), 의남화(宜男花) 또는 모친화(母亲花)라고 한다. 각각의 유래는 이러하다.

첫째, 훤초를 근심을 잊게 하는 망우초라 하는 것은 《시경·위풍·백혜(時經·衛風·伯兮)》에서 유래한다. “어디에서 훤초(諼草)를 구할까? 망우초를 집안 북쪽에 심어야지. 낭군을 그리워하다 내 마음 병들겠네”라는 시에서 훤초에 해당하는 諼(훤)이 ‘잊다’라는 뜻이 있어 훤초가 망우초로 불리게 되었다. 원래 꽃 이름인 諼(훤)은 후에 발음이 같은 萱(훤)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萱草(훤초)로 불린다. 조선의 김시습(金時習)도 그의 시 <萱草(훤초)>에서 “원추리를 마주 대하면 근심을 잊기에 집의 뒤꼍에 심는다 하네”라고 하였다.

둘째, 훤초를 마땅히 아들을 낳는다는 의남화(宜男花)라고 한 것은 소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조조(曹操) 아들인 조식(曹植)이 <의남화송(宜男花颂)>에서 원추리를 의남화라고 노래한 데에서 유래한다. 그 후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해 부녀자가 이 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셋째, 훤초를 어머니를 의미하는 모친화(母亲花)라고 한 것은 당나라 시기부터라고 한다. 자식이 먼 길을 떠날 때, 어머니가 기거하는 집안의 북쪽 안채에 훤초를 심었다. 이는 어머니가 근심을 잊고,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마음을 쓴다는 의미다. 또한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가 쓴 <유자(游子)>라는 시에 “원추리가 북당 계단에 피었건만, 떠난 자식은 아득히 먼 곳을 떠도네”라고 하여 멀리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래서 원추리는 어머니와 자식을 이어주는 꽃이 되었다. 훤초가 심겨 있는 안채를 훤당(萱堂)이라 하고, 다른 이의 어머니를 지칭할 때 ‘훤당’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에서는 현재도 어머니날에 훤초를 선물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원추리와 공동 주연인 나비는 장수를 의미한다. 이는 나비 접(蝶, dié)과 80세 노인을 뜻하는 질(耋, dié)의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훤초와 나비가 만나는 그림 <훤접도(萱蝶圖)>는 “근심을 잊고 오래 사세요” 좀 더 욕심을 부리면 “자식 많이 낳고 근심 없이 오래 사세요!”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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