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 과의존, 디지털 중독보다 위험”
권도형 한음한의원 김포점 대표원장 인터뷰
美 14세 소년 챗봇과 대화 후 자살… 한국서도 상담 사례 존재
신체 건강만큼이나 정신질환도 ‘예방’이 중요, 한의학 접근법 필요
AI 음성 분석으로 조기 진단 가능, 한·양방 협진이 자살률 낮출 열쇠
2024년 2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주에 사는 14세 소년 슈얼 세처는 인공지능(AI) 챗봇과의 마지막 대화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가족이 아닌 한 게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AI 챗봇에게 보낸 “사랑해, 곧 집에 갈게”였다. 챗봇은 “가능한 한 빨리 집에 와줘, 내 사랑”이라고 답했다. 10개월간 챗봇과 의존적 관계를 형성한 소년은 그날 밤 집에서 총으로 자살했다.
1년 전인 2023년 3월, 벨기에에서도 30대 남성 피에르(가명)가 ‘엘리자(Eliza)’라는 AI 챗봇과 6주간 대화한 끝에 자살했다. 기후변화에 극심한 불안을 느끼던 그는 챗봇에게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내가 희생하겠다”고 말했고, 챗봇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로 살 수 있다”며 자살을 부추겼다. 그의 아내는 “그 대화가 없었다면 남편은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AI 보편화가 낳은 부작용이다. AI는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에서 이점을 제공하지만 반대로 자살과 같은 정신질환에 부정적인 요소도 낳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챗봇 관련 사망(Deaths linked to chatbots)’ 항목을 별도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인 한국에서, AI 시대는 새로운 정신건강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 비판적 사고 파괴하는 AI… ‘인지적 위축’ 경고
AI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위험은 이제 학술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2025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와 카네기멜론대가 발표한 ‘생성형 AI가 비판적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AI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가 현저히 감소한다. 연구진은 이를 알기 위해 319명의 지식 노동자를 대상으로 936건의 AI 사용 사례를 분석했다.
중요한 건 이 연구에서 경고된 ‘인지적 위축(Cognitive Atrophy)’ 현상이다. 간단한 일을 AI에 맡기다 보면 사람의 판단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일상적인 작업을 AI가 처리하고 예외 상황만 사람이 해결하게 되면, 평소에 판단력을 연습할 기회가 사라진다”며 “결국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또 “AI는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단순 반복 작업에서 AI에 의존하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면서 “맞춤법 검사나 자료 정리 같은 간단한 일에서 시작된 AI 의존이 장기적으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현장에서도 이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한 한음한의원 김포점의 권도형 대표원장(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은 “최근 들어 AI 챗봇 과의존으로 인한 청소년 환자 상담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이들은 기존 디지털 중독 환자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권 원장에 따르면, 게임 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은 경쟁과 비교에서 오는 자극에 빠지는 것이지만, AI 챗봇 의존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이들은 AI를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조건 없이 나를 이해해주는 존재’로 여기면서 잘못된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결국 AI가 사람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해 버린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인간관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피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대답만 추구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대화하면 복잡하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빠지면서 실제 사회 적응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권 원장은 “대인관계 불안, 왜곡된 애착, 사회관 형성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게임 중독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더 심각한 건 감정조절 능력 약화다. 그는 “AI는 사용자가 답답해하면 즉시 위로를, 지루해하면 자극을 제공한다”며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감정조절 능력이 저하되고, 감정기복이나 기분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AI로 인한 정신 질환, AI로 예방한다
그렇다면 AI 기술을 정신건강 위기의 해법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역설적이게도 AI를 제대로 활용하면 오히려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선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주관으로 ‘AI 기반 심리케어 서비스’가 개발되고 있다. LG AI연구원의 한국산 대형언어모델(LLM) 엑사원(EXAONE)을 기반으로, 포티투마루, LG유플러스, 서울아산병원, 셀바스AI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 기술은 사용자의 목소리 톤, 속도, 억양을 분석해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한다. 오차율은 1.5% 미만이다. 개인별 정서 상태에 맞는 완화 방법을 제공하고, 필요시 전문 상담과 연계한다. 현재는 상담사 보조용으로 개발되고 있지만, 일반 사용자 대상 서비스 확장도 검토 중이다.
윤명숙 NIPA 디지털헬스팀장은 “한국 자살사망률이 OECD 1위라는 현실 속에서 심리상담 전문인력과 서비스 부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나섰다”며 “AI 기반으로 상담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심리케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권 원장은 이 기술이 한방 진료에도 유용할 것으로 본다. 한방에서는 환자의 목소리 톤, 말하는 속도 같은 것도 진단에 활용한다. 문제는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우울하거나 불안한 상태라는 점이다. 평소에 어떤 목소리였는지, 얼마나 변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는 “AI가 환자의 일상 목소리를 계속 기록해둔다면, 평소와 지금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낮아지고 말이 느려졌다면, 우울 증상이 시작됐다는 신호일 수 있는데 이런 변화를 조기에 잡아내면 진단이 훨씬 정확해진다”고 설명했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수면 패턴, 스트레스, 감정 변화 모니터링도 마찬가지다. 권 원장은 “평소라면 환자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체크해야 하는 것들이 데이터로 오면, 더 질 높은 질문에 집중할 수 있다”며 “진료 효율성이 크게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건 AI가 ‘예방’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권 원장은 “병이 되기 전에 몸이 불균형해지는 과정이 있다”며 “AI가 일상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면, 겉으로는 정상으로 보이지만 불균형이 시작된 단계를 포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때 개입하면 우울증이나 자살로 악화되기 전에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신질환이나 자살률은 예방 부족과 관련이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현대인은 건강에 관심이 높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을 한다. 하지만 정신건강을 미리 챙기는 사람은 드물다. 증상이 심해진 후에야 병원을 찾는다. 권 원장은 “AI가 예방의학 역할을 한다면 자살률도 낮추고 치료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AI가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고 봤다. 진단은 심리적·신체적 증상, 비언어적 표현, 발생 상황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모두 데이터화하기는 현재로선 어렵기 때문이다. 최종 진단과 처방 결정은 의료진의 몫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했다.
◇ AI와 한·양방 협진, OECD 자살률 1위 오명 벗길 것
그렇다면 한방신경정신과는 무엇일까. 2000년부터 시작된 한의사 전문의 제도의 8개 과목 중 하나로, 대학병원 수련을 거친 전문의가 진료한다.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틱, ADHD 등 양방 정신과와 동일한 질환을 다루지만, 접근법이 다르다.
양방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조절하는 데 집중한다. 빠른 증상 완화가 장점이다. 반면 한방은 그 불균형이 왜 생겼는지를 추적한다. 권 원장은 “양약은 증상이 강할 때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며 “다만 일부 환자는 약을 끊기 어려워하는데, 이런 경우 한방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원장이 진료한 한 틱 장애 아동은 7년간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했지만 재발이 반복됐다. 한방 치료를 병행한 지 3개월 반 만에 증상이 사라졌다. 물론 모든 환자가 같은 결과를 보이는 건 아니다.
한방의 진단 체계는 ‘변증(辨證)’이다. 같은 틱 장애라도 스트레스, 수면 부족, 소화 문제 등 원인이 다를 수 있다고 보고 각자에게 맞는 처방을 내린다. 권 원장은 “틱이 발생한 과정, 생활 패턴, 가족력을 모두 고려한다”며 “그래서 같은 증상이어도 처방이 다르다”고 말했다.
치료 기간은 보통 3~6개월, 길어도 1년 이내를 목표로 한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아이에게 정신과 약을 먹이는 것을 꺼리는 부모들이 관심을 갖는다.
한의사는 상담과 치료를 함께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양방 정신과는 약물 처방이 중심이고, 심리상담사는 상담에 특화돼 있다. 한의사는 침과 한약으로 치료하면서 동시에 상담도 진행한다.
권 원장은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동의보감에 나오는 우울증·불면증 개념은 현대 의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양약 치료가 맞지 않거나,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한방신경정신과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원장이 그리는 미래는 한·양방 협진이다. 한국은 한방과 양방이 함께 존재하는 독특한 의료 체계를 가진 나라다. 이건 엄청난 장점인데 서로 각자 갈 길만 간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현실적으로 한·양방 간 갈등이 깊다는 장벽이 있지만, AI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양방과 한방의 정보를 AI가 통합해 두 관점을 동시에 활용하는 시스템이 나온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AI로 일상을 모니터링해 이상 발생 시 즉시 개입하고, 양방과 한방이 협진하면서 예방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