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균 한양대 인공지능대학원장. /한양대 미디어전략실

학생의 성향을 알아보고자 할 때 물어보는 질문 가운데 아래와 같은 질문이 있다.

“누군가가 손에 든 동전의 앞뒤를 맞추는 게임을 하게 하고, 맞출 때마다 상금을 준다고 가정하자. 이때 동전이 80%의 확률로 앞면이, 20%의 확률로 뒷면이 나온다는 정보를 미리 안다면 당신은 어떤 방식의 전략으로 맞출 것인가? (1) 항상 앞면을 선택, (2) 80%의 확률로 앞면, 20%의 확률로 뒷면을 선택, 혹은 (3) 기타.” 독자의 선택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기댓값 관점에서 (1)은 이성적으로 최적의 선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2)를 선택한다. 나 역시 (2)의 선택을 선호하는데, 한동안 왜 내가 최적화된 선택을 하지 않는지 이유를 알아내려 애썼다.

심리학에서는 (2)와 같은 전략을 “확률 매칭”이라 부르며, 이는 최적화된 선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물 실험에서 자주 관찰된다. 여러 이유로 확률 매칭을 하는 동물들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 남기에 유리하다는 설명을 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답은 (2)를 선택한 사람들은 기댓값이 최적이지 않더라도 모든 답을 맞히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다. (1)의 선택은 한 번이라도 뒷면이 나왔으면 누구도 모든 답을 맞힐 가능성은 사라진다. 즉 (2)의 선택은 확률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나는 특별할 수 있어서 내가 모든 답을 다 맞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도박사의 기질이 포함된 선택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2)번 선택을 하는 성향은 연구자로서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연구에는 트렌드가 존재한다. 특히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좋은 학회에 논문을 출판하여 연구 실적을 내기 위해 대다수 연구자가 관심을 두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공지능 최상위 학회의 논문 발표 빈도는 전체적인 양과 발표하는 연구자의 수 모두에 있어서 많이 증가하였으며 NeurIPS 등에 출판되는 논문이 거의 전무했던 20년 전에 비하면 10년 전에는 한국에서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고, 또 1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수적인 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을 엄청나게 큰 발전이 있었다. 모두가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부분이다.

쓴소리를 하자면, 트렌드를 잘 따라 비교적 쉽게 논문을 출판하고, 이를 통해 최대한 실적을 쌓는 것은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연구를 시작하는 유능한 학생들이 첫 실적을 만들기 위한 좋은 선택이기도 하다. 실적 없이 펀딩을 받기 어려운 학계에서 살아 남는 유용한 수완이기도 하다. 좋은 학회에 실적을 내는 것이 보상이라면 트렌드를 따르는 것은 최적화된 선택이며, 힘을 합쳐 관련 연구자들이 관심 있는 문제를 함께 푼다는 데에서도 당연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트렌드를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연구는 트렌드를 따르도록 훈련된 연구자들이 해내기 어렵다. 트렌드를 새로 만드는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몇 개 나열해 보겠다.

첫째, 연구자들은 자신이 논리에 기반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는지 고민해야 한다. 최상위 학회에 발표된 논문은 완벽하지 않으며 많은 경우 논리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허점에도 불구하고 출판이 될 만한 의미 있는 결과가 존재하기는 할 거라는 정도로 최상위 학회에 출판된 논문을 대하면 좋을 것 같다.

둘째, 대다수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나의 훈련과 경험에 비추어 나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다면 자신감 있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이 트렌드를 따라가는 연구자가 갖추기 어려운 덕목이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의 정당성을 다른 연구자의 권위에 의존한다. 혁신적인 일을 찾아내 나의 명성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큰 확신과 자신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혁신적인 연구는 종종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이 과정을 견디는 힘이 중요하다. 특히 인공지능 분야에서 동료 연구자들이 빠르게 실적을 쌓아 명성을 얻는 것과 비교하면, 이 과정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다. 혁신적인 연구가 인정 받기까지는 외로움의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자신의 연구가 문제가 아니라, 의미 있는 기여가 인정받기까지 거치는 단계임을 이해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견디는 데는 역사적 사례를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혁신적인 연구를 하는 것은 트렌드를 따라 실적 쌓기를 쌓는 방식에 비해 최적화된 방법이 아니다. 진정한 연구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노력을 요구한다. 이런 선택은 확률 매칭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최적화된 방법을 포기하고 불확실성 속에 가장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필즈 메달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님의 인터뷰에 많이 나오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비슷하다 하겠다. 정보기하의 새로운 수학적 체계를 혼자 만든 순이치 아마리 교수님은 항상 “나는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연구가 인정받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인공지능 연구의 대가 요슈아 벤지오 교수도 도전적인 연구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훌륭한 석학이 이야기하는 단순한 진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혁신적인 연구는 즉각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음 10년 후에는 우리나라에 이러한 연구자들이 많이 나와 우리나라 인공지능 연구가 다시 크게 성장했다는 평가가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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