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재는 '비숲'을 바라봤다…이준혁에서 비롯된 "동·재즈"의 매력 [인터뷰]
* 해당 인터뷰에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좋거나 나쁜 동재'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사실 '비밀의 숲' 시즌1 때 동재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모티브로 했어요. 그래서 일단 싫어요. 혐오 관계가 맞아요. 하지만 동재는 저를 혐오할 수가 없죠. 이거 되게 좋다. (웃음)"
한때 '서동재'였던 '이준혁'이 말했다. 그가 열연한 '좋거나 나쁜 동재'를 줄여서 '좋나동재'라고도 부른다. 어딘가 욕설까지 연상되는 제목이다. 사실 동재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비밀의 숲'에서 악역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검사인 그는 자신이 동아줄이라 믿는 그 줄을 꽉 움켜쥐고 위'만'을 향하던 인물이었다. 그 길에는 손에 쥔 줄 외에 다른 건 보려 하지 않았다. 같은 검사이지만 동재에겐 황시목(조승우)와 달리, 정의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동재가 "이런 기분이구나, 주인공이 된다는 건"이라고 말하면서 돌아왔다. 여전히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을 찾아가는 동재는 살짝 튼 길 위에서 확 달라진 각도를 보여준다.
동재의 모든 개연성이 이준혁이었다. 그리고 이준혁은 이를 감독과 작가와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의 힘이라 말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있다. 이준혁은 서동재로 좋거나 나쁜 그 어떤 즉흥에도 리듬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재즈처럼 어딘가 깊숙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 믿음 덕분에 시청자들은 마음껏 '느그 동재'와 '우리 동재'를 오가며 주인공과 놀아볼 수 있었다. 이를 말하는 이준혁의 센스있는 입담이 글 속에도 잘 담겨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와의 대화를 적어 내려가 본다.
Q. 한국에서 작품 속 캐릭터가 다시 새로운 극을 이끌어 가는 '스핀오프' 장르가 활발한 편은 아닌데, 이를 호평 속에 마무리 지었다. 소감이 궁금하다.
"제가 너무 많은 것에 참여 되어있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정말 회의도 많이 했고요. 사실 '동재'라는 캐릭터의 답습이나 반복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자'라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저는 기존의 동재로써 사실 보여줄 게 딱히 없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판을 만드는 것에 작품 내내 열중하고 있었고요. 다들 되게 고된 환경이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동재'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현장에서 모두가 엄청나게 좋아해 주셔서, 되게 의미 있게 임했던 것 같아요. 부담은 많이 됐죠. 그래도 '좋거나 나쁜 동재'를 보고 '비밀의 숲'을 다시 보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런 말씀이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 말씀에 부담감이 좀 해소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비밀의 숲'을 망치지는 않았다."
Q. 회의에 많이 참여했다면, '좋거나 나쁜 동재'의 출발선부터였나. 어떤 의견을 냈는지 궁금하다.
"계속 만나서 회의하고, 전화로도 회의하고, 명절에도 만나서 회의하고 그랬어요. 굉장히 열려있는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의견을 내기도 하면서 진행된 작업이라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지만, 엄청 힘들고, 엄청 힘들고. (웃음) 사실 대본도 여러 버전이 나왔거든요. 심지어 동재와 유안(최희서)의 멜로로만 가는 대본도 있었어요. 2화까지 나왔는데, 완전히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였어요. 두 사람이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 에필로그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는데, 많은 분의 반대로 무산됐어요. 저도 사실 반대 편이었는데요. 그러면 '비밀의 숲'의 색깔조차 없어져버릴까봐 걱정됐어요. 지금의 '동재'가 훨씬 좋아요. 다행이에요. (웃음)"
Q. 결국 동재의 바람(대검)과는 다른 결말이 났다. 회의 단계부터 수많이 참여한 본인은 스스로 동재의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재는 아쉬울 수 있지만, 저는 웃기고 좋던데요. (웃음) 저는 7부도 되게 웃겼어요. 키득키득하면서 본 것 같아요. 저희가 사실 누군가의 삶을 비웃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드라마를 통해 응원할 수도, 비방할 수도 있는 자유를 조금은 얻게 되고요. 동재의 최대 빌런은 '동재'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대사도 제 애드리브였거든요. 저는 동재가 이렇게 되어야 황시목('비밀의 숲' 조승우 역)이 완성되는 것 같아요. 이후에 다시 '비밀의 숲'을 보면, 황시목은 모든 걸 다 청소하는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동재를 통해서 재활용이라는 걸 하게 되고요. 우리나라 사법 제도도 사실 재활용을 의도하고 있는 거잖아요. 한때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많은 작품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요즘은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사적제재(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개인에 의해 결정된 폭력, 유형적 제재)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등장하게 됐고요. 저도 '비질란테'라는 작품을 했지만요. 하지만, 저는 서동재를 통해 황시목이 더 완성된 캐릭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황시목을 바라보면서 했지만, 결국 서동재를 완성한 것은 '이준혁'이었다. 동재를 사랑하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준혁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미남론도 등장했다.
"저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오래 있었잖아요. 정말 이 직업에 유행이 엄청나게 빨리, 많이 돌아요. 다만, 타인의 외모를 좋게 봐주는 건 정말 좋은 시선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고맙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고요. 이러다 또 다른 아름다운 외모가 발굴될 수도 있고, 그것이 예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왜 센강이 막상 가서 보면, 여러 의견이 갈리는데, 어떤 예술가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아름답다'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Q. 그 개연성이 딱 떨어지는 장면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설 때였던 것 같다. 그날의 분위기는 어땠나.
"모든 장면이 사실 의도가 있잖아요. 동재가 거기에 등장할 때는 그런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모두가 약속하고 가는 거죠. 이게 팀 작업의 매력인 것 같아요. 팀 작업이 한 사람을 더 멋있게 만들 수도 있고, 웃기게 만들 수도 있고요. 이게 영화와 드라마 작업의 묘미가 아닐까 싶어요. 촬영 감독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실 거예요. 장나라 선배님 남편인데요. 정하철 촬영감독이 정말 잘해요. 꼭 써주세요. 정하철 촬영감독이 잘한 거라고요."
Q. 주인공이 된 동재의 대사량도 어마어마했다. 이수연 작가님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바 있을까.
"사실 이 캐릭터에 필살기처럼 그런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그런 생각을 했음에도 대본을 보고 '작가님 진짜 너무하시네, 이거 가능해요?'라고 했어요. 동재 대사만 12페이지였거든요. 편집이 좀 됐어요. 그래도 12페이지 내내 전문 용어도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동재가 싫죠. (웃음) 그 장면이 처음에 납치되었을 때였거든요. 정말 지옥 같은 추위도 있었죠.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되었던 건 '이걸 코미디로 봐줄까'였어요. 굉장히 묘한 코미디잖아요. 그래서 걱정됐던 장면이기도 했어요."
Q. 그래서 예고편 속 동재의 말처럼 "주인공이 된 기분"은 어땠나. '비밀의 숲' 주인공이었던 조승우 배우에게 어떤 조언을 들은 바는 없을까.
"저희끼리 그런 말은 잘 안 하죠. 그래도 (조)승우 형이 그냥 '축하한다' 이런 말씀은 하셨어요. 그렇게 자주 연락하지도 않아요. 최근에 연락한 것도 '햄릿' 공연 때문이었어요. 제가 '연기 어떻게 하면 잘해요?'라고 여쭤봐도 '엄살 피우지 마!'라고만 말씀하시죠. 사실 저는 엄밀히 말해서, 주인공을 해본 거라고 하기 애매해요. 업무량이 올라가고, 압박감이 있었죠. 저는 사실 주인공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요. 제가 무언가를 볼 때 잘 질리는 편이라, 주인공보다는 가끔 임팩트 있게 나오는 사람들을 더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그런 걸 느꼈어요. 다른 배우들이 너무 소중해요. 너무 고맙고요. 앞에서 연기를 잘해주면 너무 예쁘더라고요. 이번에 (현)봉식이에게 저만큼 긴 대사가 있었어요. 제가 한 2주 전부터 부담을 줬단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잘하는 거예요. 봉식이 덕분에 퇴근도 빨리했어요. 원래 2~3시간은 찍어야 할 줄 알았는데, 1시간 만에 끝났어요. 모든 스태프가 다 좋아했어요. (웃음) 함께하면서 '배우가, 동료들이 참 소중하구나, 고맙구나' 이런 것을 정말 많이 느낀 작품이었어요."
Q. 후반부에는 검사끼리 모여서 쌓아 올리는 서사도 굉장히 귀엽고 재미있었기에 더 공감된다.
"배우들이 다 너무 잘해줬어요. 아까 말한 (정)하철 촬영감독이 앵글을 잡아놓으면, 그 위에 배우들이 통통 튀는 거예요. 거기에서 좋았던 건, 무게감 있는 역할이면 가만히 멋지게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동재는 다 받아줄 수 있는 거예요. 재즈처럼요. 얘가 이렇게 하면, 동재는 저렇게 하고. 동재는 어찌 보면 정말 많이 나오는 조연이거든요. 사실 따지고 보면, 사건의 마무리를 하는 것도 동재가 아니에요. 진짜 많이 나오는 조연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서 정말 고마웠어요."
Q. 오는 1월 SBS 새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의 방송도 앞두고 있다. 무려 CEO가 된 작품이다.
"제 작품 중 가장 독특한 작품 같아요. 왜냐하면 제 작품에는 정상인이 없으니까요. 너무 밝고, 막 꽃도 있고, 공사장에도 안 가고, 피도 없고, 때리는 것도 없고, 맞는 것도 없고, 찌르는 것도 없고요. 참 이상해. 촬영 현장에서 제가 매번 코가 새까맣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게 없어요. 신선하더라고요. (한)지민 선배는 이미 너무 프로시니까, 현장을 장악하시죠. 저만 잘하면 되는데, 뭐랄까. 신기해요. 제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정말 극장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보던 그 정확한 연기를 바로 앞에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 이렇게 하시는구나'라는 감탄을 하게 되더라고요."
Q. 과거 동화책 '안녕 팝콘'을 집필하기도 했다. 딸이 좋아해서 지나가는 흰색 강아지를 보고 '팝콘'이라고 부르더라. 작가로서의 계획은 없을까.
"너무 좋다. 제 지인 딸도 유치원에서 아이들끼리 팝콘이로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아요. 되게 묘한 기분이라서 한 권 더 만들어볼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제 친한 친구도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정말 상심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시리즈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들의 이름을 담은 책을 만들어볼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느낌으로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느낌을 계속 그려가다 보면 그걸 보는 이들에게도 위로가 될까 싶고요. 저는 치료가 많이 됐거든요."
Q. 요즘 관심을 두게 된 분야도 있을까.
"재활이요. 제가 무리하게 액션도 하고, 운동도 하고, 살도 찌웠다 뺐다를 반복하고 하니, 재활을 하고 있는데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내 몸을 온전하게 찾아주는 운동이잖아요. 그리고 일을 하면, 굉장히 높은 스트레스와 기준치를 두고 살게 되는데요. 제가 물론 돈을 지불하고 임하는 거지만, 재활을 할 때는 팔을 들어 올려도 손뼉을 쳐줘요. 벽에 어깨가 닿았다고 모두가 기뻐해 줘요. 그런 게 재미있더라고요. (웃음)"
Q. 쉴 새 없이 일을 해오고 있다.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결국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영화든, 드라마든, 이야기를 정말 사랑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그랬고요. 저는 정말 장르도 안 가려요. 다 좋아해요. 그래서 다 궁금해요. 제가 '똑같다'라고 느껴지지 않는 한, 일단 계속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맡은 캐릭터도 다 다르고요.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