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으로 시작해 앞모습으로 끝나는...‘대도시의 사랑법’ [리뷰]
햇빛이나 달빛이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시간을 강물에도 비교하곤 하니, 흐르는 시간 속 모두에겐 그렇게 반짝이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 그렇게 반짝이던 빛을 비춰주는 이가 있었음을 말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의 20살부터 33살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첫 장면은 계단을 오르는 흥수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옥상에 다다라, 웨딩드레스를 입고 흡연 중인 재희를 바라본다. 그리고 시간은 20살로 돌아간다. 재희는 파리에서 살다가 돌아와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다. 어떻게 입고, 어떻게 움직여도 모두의 주목을 끄는 인물.
반면 흥수는 세상 모든 것과 거리를 두려 하는 인물이다. 성소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꼭 알비노로 태어난 것만 같다. 그만큼 이를 ‘남들’에게 숨기고 자신 안에 가둬져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하필, 이태원 클럽 앞에서 가장 숨기려 했던 모습을 재희에게 보여주고 만다. 하지만, 재희는 이를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대로, 받아들인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 그렇게 재희와 흥수는 서로를 그대로 바라봐주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는 ‘식구’가 된다. 영화 속 대사처럼 "미친 X과 성소수자"의 슬기로운 동거 생활이 시작된 거다.
원작 소설은 성소수자 ‘영’의 시선으로 흐른다. 그 시선은 밖을 바라보기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향한다. 물론 영화 속 화자도 '영'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흥수'다. 하지만, 단편 소설이 장편 영화로 만들어지며 되며 필연적으로 생긴 틈을 통해 좀 더 깊이 재희와 흥수를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둘의 13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살짝 '사회'를 담아낸다. 영화 속 재희와 흥수는 스무 살에 함께 대학에 다닌다. 그리고 13년의 시간동안 남들처럼 공부했고, 사랑을 했고, 술에 절어 있었고, 클럽에서 다른 청춘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각자 군대를 갔고, 외국에 갔고, 돌아온 대도시 서울에서 재희는 면접을 보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둘의 시간 속에는 스토커, 성소수자를 향한 시각, 데이트 폭력, 낙태 등의 사회의 시선 속 재희와 흥수가 있다. 영화는 어떤 관점보다 둘의 표정과 그 시선을 향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화두를 던진다.
그럼에도 ‘대도시의 사랑법’은 반짝반짝하다. 재희는 흥수로 인해, 남자 친구의 1순위에서 찾던 자기 모습을 바로 바라보게 됐다. ‘549’, 오(5)늘만 사(4)는 구(9)재희 그대로 멋짐을, 빛남을 찾았다. 흥수는 재희로 인해, 밖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사랑 그 이후가 겁나, ‘보고 싶다’는 말 한 번 못 해봤던 그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보내줄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둘은 참 많이도 마시고, 휘청이고, 질주하고, 다치고, 울고, 무엇보다 웃는다. 두 사람의 감정은 객석까지 전염되듯 몰려온다. 최근 본 작품 중 웃음 타율도 가장 높다고 생각된다. 진짜 친해야만 가능한 말맛, 말의 리듬이 김고은, 노상현에게서 느껴진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각자만이 알고 있는, 하지만 어딘가 깊숙하게 넣어둔 '내가 나로서 가장 빛났던 순간'을 소환한다. 김고은과 노상현 역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얼굴 그대로로 빛난다.
지인의 결혼식에서 종종 그의 친한 친구가 하는 축사를 듣는다.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해 결국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며 끝나 버리곤 한다. 그런 축사가 듣는 이들까지 울려버리는 건, 정말 소중했던 사람의 모든 표정을 기억하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대도시의 사랑법’을 각자의 20대를 함께 보낸 친구와 보는 걸 추천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때를 함께한 친구들이 떠올랐다. 이 영화가 개봉하면 아마도, 그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뭐든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