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파초와 괴석
파초(芭蕉)는 키가 크고 잎은 넓다. 파초를 처음 본 건 식물원에서였지만, 파초의 이미지가 머리에 이식된 건 김동명의 시 <파초> 읽고 나서였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 / 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시 <파초>의 1연과 2연에서 슬프고도 비장한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파초는 잎의 색깔이 짙을수록 왠지 더 슬퍼 보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많은 화가와 사대부들이 그린 <파초>를 보고는 그 의미가 궁금했다.
두 그림 모두 파초와 괴석을 그린 그림이다. 파초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너무 겸손해 보인다. 그리고 파초 아래 괴석 역시 궁궐이나 귀족 집 정원에 관상용으로 놓은 실물보다 초라해 보인다.
먼저 파초의 의미를 살펴보자. 조선의 사대부들이 파초를 즐겨 그린 이유는 북송(北宋)의 장재(張載)가 지은 시 <파초>에서 비롯되었다. (장재는 북송 시기 철학자, 사상가, 교육자이며 성리학의 거두이다.)
芭蕉心尽展新枝(파초심진전신지),新卷新心暗已随(신권신심암이수)。
파초의 심이 다하면 새 가지가 펼쳐지고 / 새로 말린 새심이 앞의 심을 뒤따른다.
愿学新心养新德(원학신심양신덕),旋随新叶起新知(선수신엽기신지)。
새심이 나듯 새로운 덕을 양성하고 / 새잎을 따라 새로운 지식을 쌓는다.
이 시의 의미가 단순히 파초의 생장 과정을 나타낸 것 같지만 실은 숨은 뜻이 있다. 파초의 새순은 말려있다. 순이 자라 잎으로 펼쳐지면 평평해진다. 이것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다. 새로 말린 순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하나를 깨우쳐도 또 모르는 것이 새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초 잎처럼 사람도 지(知)와 덕(德)을 계속 갈고 닦고 쌓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재는 시 <파초>에서 사람은 마땅히 일일신(日日新)우일신(又日新), 즉 계속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파초에 이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조선의 선비들은 학업정진과 인격 수양의 자세를 파초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대부는 물론 정조 임금까지도 파초가 주인공인 작품을 남겼을 것이다.
그런데 파초의 잎은 엄청 크다. 그래서 ‘선선(扇仙)’이라고도 한다. 커다란 잎을 한자로 쓰면 대엽(大葉)이다. 대엽은 대업(大業)과 중국어 발음이 ‘dàyè’로 같고, 우리말 발음도 비슷하다. 따라서 파초의 큰 잎은 “큰 뜻을 세우고 야망을 가져라”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그림 속의 파초는 “학문에 정진하고 끊임없이 수양하여 큰 뜻을 이루기 바란다”는 의미인 것이다.
파초와 함께 그린 괴석은 보통 바위나 돌덩어리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돌의 모양이 기묘하여 괴석(怪石)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태호석(太湖石)이라고 한다. 주로 중국의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에 걸쳐 있는 태호(太湖)에서 채집한 것이기 때문이다. 태호석은 오랜 세월 침식작용에 의해 구멍이 뚫렸거나 기묘한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장식용으로 애용되었다. 중국의 자금성, 이화원 등의 유명 유적지는 물론 대학교나 공원에만 가도 태호석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태호석을 파초와 함께 그린 것은 장식용일 수도 있지만, 원래 바위는 십장생 중의 하나다. 그래서 태호석도 장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파초와 태호석을 그린 그림은 부단한 노력으로 수양한 후 큰 뜻을 펼치고 장수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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