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잔혹과 코믹 그 사이…갭을 채운 '폭군' 차승원의 몫
"누군가는 유머러스한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걸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누구냐 했을 때 '임상' 밖에 없었다. 국정원 요원이었다가 은퇴한 사람이고, 이렇게 (코믹한 부분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캐릭터라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다고 생각했다."
디즈니+ '폭군' 속에서 유머러스한 매력을 담당하고 있는 '임상'. 평소에는 어리바리한 캐릭터 같지만, 일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무자비한 인물이 된다. 그런 갭을 채우는 건 오롯이 배우의 몫. 차승원은 특유의 너스레를 더한 매력으로 '임상'을 탄생시켰다.
'폭군'은 '폭군 프로그램'을 지키려는 설계자 최국장(김선호), 탈취를 의뢰받은 기술자 자경(조윤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청소부 임상(차승원), 그리고 추격자 폴(김강우)의 이야기를 담은 추격 액션 스릴러다. 작품 공개 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차승원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차승원이 맡은 '임상'은 겉모습만 보면 마치 과거에서 온 사람 같다. 시동도 잘 걸리지 않는 올드카를 타고, 늘 2 대 8 가르마에 클래식한 외형으로 시대를 헷갈리게 만든다. 겉모습처럼 주거지도 독특하다. 기찻길 옆 세워진 폐열차 한량을 (고문도구가 가득한) 자신만의 아늑한 공간으로 꾸몄다. 요구르트를 마실 때는 5개입을 통째로 들고 마시고, 땅바닥에 구른 핫바 정도는 먼지를 훌훌 털어 먹는다. 어딘가 엉성하지만 총을 들어야할 때는 가차없다. 순간의 멈칫도 없이 눈앞의 존재를 청소할 뿐이다.
"저는 임상의 무자비함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주인집 아저씨를 느닷없이 쏘지 않나. 어떻게 보면 평소엔 무기력한 사람인데, 꼭 (살인을) 하려고 하면 민첩하게 되는 사람. 머리가 아닌 몸에 익은 사람. 그걸 표현하려면 잔인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차 신에서도 한 친구를 두고 조리돌림 하지 않나. 소위 말해 잔혹하게 고문을 한다. 저는 이 장면이 되게 좋았다. 임상이 자기가 의뢰받은 일에 반하는 인물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저 사람에 걸리면 끝장이야'라고 입소문이 퍼지는 것처럼 구성을 하고 싶었다. 유들유들한 평소 모습과 확 대비되는 부분이지 않나. 그런 대비를 계속적으로 주려고 했다."
차승원은 지천명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액션을 직접 소화한다. 차승원은 "아무래도 대역은 티가 나지 않나. 될 수 있으면 제가 직접 (액션을) 하려고 한다. 특별히 잘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걸음걸이나 선 같은 건 티가 나다 보니 그렇다. 너무 위험하지 않다면 저는 (액션을) 배우가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20대부터 꾸준히 액션을 해온 그에게도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엘보가 지금도 좋지 않다"라고 운을 뗀 그는 "총이 엄청 무거워서 한 번 들고 쏘면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간다. (총 무게가) 15kg은 되는 것 같다. 소음기 무게만 해도 엄청나다. 그런데 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며 덤덤히 말했다.
이어 "액션이 부담되긴 하지만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첨언한 그다. "그렇게 기사 내지 말아달라"며 너스레까지 덧붙였다. 그러면서 2024 파리 올림픽 폐막식에 등장한 톰 크루즈를 언급했다. "톰 크루즈 배우님 보면 그런 거(나이) 당치 않다. 관리하면 할 수 있는 거다. 배우는 주어지면 하는 직업이지 않나. 내가 액션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니까. 제안이 오면 할 수 있을만한 신체적인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동도 그렇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극 중 '임상'은 국정원 은퇴 후 킬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거친 삶을 사는 이유는 딱 하나. 기차를 사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까마득한 후배 '최국장'의 의뢰를 받아 움직이기도 한다. 극 후반에야 마주한 '최국장' 김선호와의 현장은 어땠을까.
"제가 김선호라는 배우를 처음 안 게 광고를 통해서다. 선호가 '갯마을 차차차'하고 찍은 광고를 우연히 봤었다. 광고 속 모습이 분명 애드리브였을 것 같은데 되게 유연하게 연기하더라. '폭군' 마지막 신에서 단상 위에서 선호를 바라봤는데 최국장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내가 했으면 그렇게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뭔가를 놔버린 듯한 최국장의 모습이 느껴져서 '이 친구가 되게 여러 얼굴을 가진 친구구나' 싶었다. 연극 쪽에서 많이 활동을 한 친구라 기본기가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한다."
'폭군'을 통해 처음으로 주연에 도전한 조윤수와의 액션도 화제였다. 체격 차이가 큰 두 인물이 선보이는 전투신은 박진감을 담당했다. 차승원은 "나는 조윤수 그 친구가 좀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라며 현장을 떠올렸다.
"나와 부딪히는 신도 그렇고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배우로서 물론 감내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문득 '내가 저 나이였으면 이런 걸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노력해도 중간중간 안 되는 것도 있지 않나. 그래서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어찌 됐건 큰 사고 없이 잘 해낸 것 같아서 다행이다. 첫 촬영에서는 영하 10도인데 물에 젖어 있어야 하고 얼마나 힘들었겠나. 우리 감독님이 또 녹록한 사람이 아니라 무조건 자기 목표치대로 나와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것들이 그 친구에게 어떤 자양분이 될지 모르겠지만, 큰 회오리 같은 게 지나가면 더 단단해질 거라 생각한다."
차승원은 '폭군'을 통해 박훈정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에서 '마이사'로 독보적 캐릭터를 연기했던 차승원은 박훈정 감독이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지만 자신과는 아주 잘 맞는 사람"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감독님과 '낙원의 밤' 할 때 좋았다. 감독님이 안 맞는 배우들하고는 진짜 안 맞는데 잘 맞는 배우들하고는 진짜 잘 맞는다. 제게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샘솟게 해주는 감독님이다. 때로는 샘솟는 아이디어를 갑자기 마르게 하는 감독님들도 계신다.(웃음) 하지만 박훈정 감독님과 작업할 때는 캐릭터를 빌드업 하는 과정에서 재밌는 게 많이 나온다."
'폭군' 역시 추후 전개를 예감케 하는 엔딩을 맞은 바, 시즌2에 대한 가능성을 물었다. 차승원은 "아마 있을 것 같다"라면서 만약 시즌2가 나온다면 "임상이 초인적인 능력이 생기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지금은 생 인간이라 (싸우는 게) 힘들지 않나. 그런 능력이 생기면 (연기도) 좀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라며 웃어 보였다.
'폭군'을 선보인 차승원은 장르를 오가는 활약을 펼칠 예정이다. 영화 '전,란',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6' 공개를 앞두고 있고, 최근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 촬영에 돌입한 데 이어 웹툰 원작 드라마 '돼지우리' 캐스팅 소식을 전했다. 장르를 오가며 팔색조 매력을 보여줄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