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공지능 겨울부터 인공지능 플랫폼 정부까지
필자는 대학에서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필자의 실험실을 거쳐 간 석박사 인력만 200명 가까이 된다. 나는 대학원 때부터 지금까지 늘공(늘상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그때부터 하면 30년 넘게 늘공을 해왔다. 1990년 초중반 인공지능 붐을 옆에서 지켜 봤고, 2000년대 초반 인공지능 겨울을 겪어 봤고, 그 후 인공지능의 폭발을 한가운데서 지나고 있다. 나는 2000년대 초반에 대학에 부임했다. 교수로 대학에 와 보니 인공지능 겨울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때는 인터넷 혹은 네트워크 분야가 지금의 인공지능만큼 뜨거운 연구 주제였다. 내가 왜 평소에 그런 핫한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가 한탄했지만, 어찌하랴 배운 것이 인공지능인지라 그냥 계속 인공지능을 했다.
그렇게 10여 년이 어찌 어찌 지나고 나니, 2016년 3월이 되었다. 알파고라고 하는 인공지능이 이세돌과 바둑을 둔단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바둑의 경우 수가 얼마나 많은데.., 컴퓨터가 감히 사람을.."라고 생각했다. 내가 인공지능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인공지능의 능력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아직도 인공지능을 모르는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사람들도 그때의 나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지금도 ChatGPT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해보니 되고, 되니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알파고 사건을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단지 인공지능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어서가 아니라, AI를 포함한 SW의 중요성을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 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은 SW가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SW 직군은 3D를 넘은 4D 직군이었다. 소위 어렵고 위험한 일을 빗대어 말하는 Dirty, Difficult, Dangerous의 3D에 Dreamless까지 더해진 직군이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SI라고 불리는 사내업무의 전산화가 SW 분야의 매우 큰 시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SW 개발자는 발주처가 있는 먼 곳에서 장기 출장 근무를 해야 했고, 개발 일정에 쫓기면서 밤을 새워서 작업을 해야 했지만, SW 개발회사는 수주를 위해서 개발단가를 저가로 입찰하다 보니 SW 개발자 처우는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SW 개발을 3D 직군이라고 해 주면 고마울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AI는 말할 것도 없고 SW 개발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사회는 외면하고 있었다.
그때 알파고가 터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깜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인지, 그동안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마 정부에서 국민을 상대로 이 정도의 교육을 한다고 하면 수조원의 교육비가 들어갔을 것이다. SW와 AI의 중요성을 교육하기 위하여 1인당 5만원의 교육비만 잡아도, 5천만 명을 교육하려면 2.5조원이니 말이다.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물론 알파고 사건이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있었어도 비슷하지 않았겠냐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냥 먼 이웃나라에서 있었던, 좀 충격적인 사건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알파고 사건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바둑 기사가 컴퓨터에게 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바로 우리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리나라 온 국민이 SW와 AI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온 나라가, 온 국민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AI를, SW를 얼마나 잘하고 있냐, 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냐"고. 갑자기 그렇게 천대받던 SW는 물론, 그동안 AI하면 조류독감으로만 알고 있던 AI가 갑자기 우리의 매우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그때 알파고가 없었다면, AI가 그냥 조용히 미국에서 발전하고 있었다면, 아마 우리나라의 AI에 대한 관심은 적어도 2~3년 늦어졌을 것이다. 하늘이 우리를 도운 것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온 나라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우왕좌왕하며 독자생존식으로 AI를 대응하고 있던 그때, 과기정통부에서 신의 한 수를 두었다. 인공지능 고급인력 양성을 위한 인공지능대학원 사업을 2019년에 시작하여 10개 대학을 선정하였고, 인공지능융합혁신대학원 사업을 통하여 9개의 대학을 선정하여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호떡집에 난 불을 끄려고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문 소방관이 투입되어 진화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방향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성균관대학교는 인공지능대학원 사업의 첫 번째 해인 2019년도에 선정되어, 지금까지 6년째 정부의 지원 하에 인공지능 고급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2019년과 2024년을 비교하면, 그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성균관대학교의 경우 AI 최상위 학술대회 논문은 2019년 대비 3~4배 이상 증가하였고, AI 분야에서 석사학위 이상의 고급 인재를 매해 50명 이상 배출하고 있다. 또한, 더 좋은 연구를 하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찬 학생들이 매년 넘치도록 지원하고 있어, 대학원의 경쟁률이 3:1을 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내재하고 있던 AI에 대한 잠재력과 인력양성 수요가 인공지능대학원을 기점으로 폭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6년간 의욕 넘치는 학생들을 데리고 우리는 어떤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하였다. 인공지능 인재는 다양한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핵심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사람부터 각 분야에 AI를 적용하는 사람까지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고르게 양성하는 것도, 미국이 주도하는 기술을 쫓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만의 분야를 개척하고 주도할 수 있는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과연 AI에 우리의 분야가 있는가, 우리의 기술을 개발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나는 성균관대학교 인공지능대학원 학생들에게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는 자기 이름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다.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 주어져도 이를 해냄으로써 자기 이름의 가치를 올리는 사람이 프로이다. 바로 이것이 연구의 본질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 하고 싶었지만 못하는 것을 해내는 것이 연구이고,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프로가 되어간다. 연구는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연구를 통하여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학교에서의 연구는 기술 개발에도 초점이 있지만, 그보다도 먼저 학생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것이 바로 학교가 학교인 이유이고, 학교가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이다. 학생들과 함께 작성한 논문이 게재 승인되지 않더라도, 그것도 연구의 한 과정일 뿐이니 포기하지 말고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키며 끝까지 노력하자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2016년에 폭발한 인공지능은 2022년쯤에 기술적 혁신의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에 ChatGPT가 나오면 다시 새로운 기술 혁신이 시작되었다. 2024년 하반기로 넘어가는 지금 인공지능은 다시 새로운 정점에 서 있는 듯하다. 충분히 사용 가능한 기술은 거의 완성된 듯하다. 이제는 이것을 비즈니스로 연결시켜야 할 때이다. 아직 인공지능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있는 회사는 없다. 미서부 개척시절 금 캐는 사람보다, 청바지 파는 사람이 돈을 벌었듯이, 인공지능 하는 회사보다는 GPU 파는 회사가 돈을 더 벌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황무지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일으켰듯이, 이제 인공지능의 비즈니스도 개척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진짜 큰돈이 들어가서 많은 회사들이 눈치만 보고 있다. 어느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보고 성공 케이스가 있다면 다시 한 번 폭발할 것이다. 6년 전에 과기정통부에서 인공지능대학원 사업으로 우리나라 인공지능의 줄기를 잡았듯이, 인공지능의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넘어 인공지능 플랫폼 정부로 앞서 투자하여, 공공 서비스의 개선은 물론 인공지능 비즈니스의 마중물을 마련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