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꽃다발 든’ 김재중 “이젠 한 송이 꽃에 담긴 소중한 마음을 알아요” [인터뷰]
넓은 공간에 김재중이 들어서자,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올 블랙 스타일의 착장을 한 김재중은 약속 시간보다 5분 정도 일찍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안녕하세요, 김재중입니다”라고 인사했다. 검정 천이 깔린 테이블을 보며 “캐릭터가 그려진 테이블보를 깔아주면 좋겠어. 귀엽게”라고 농담을 이어갔다. 꽃을 좋아하는 김재중과의 인터뷰가 웃음으로 시작됐다.
김재중을 만나게 된 것은 지난 26일 오후 6시 공개된 ‘플라워 가든(flower garden)’ 발매를 앞두고서였다. ‘플라워가든’은 김재중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정규 앨범이다. 김재중은 지난 2004년 그룹 동방신기 싱글앨범 ‘Hug’로 데뷔했다. 그리고 동방신기에서 탈퇴해 멤버였던 김준수, 박유천과 JYJ를 결성, 2010년 1집 앨범 ‘The Beginning’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3년에는 솔로 정규 1집 앨범 ‘WWW: Who, When, Why’을 발매하며 국내를 비롯해 일본 등 글로벌한 사랑을 받았다.
겉핥기처럼 훑어본 외피에서도 평탄한 20년만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김재중 역시 한 마디로 20년을 정리하지는 못했다. 그는 “지금까지 스스로 ‘운이 정말 좋은 건가’라고 생각했는데요.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큰 파도도 몇 번 겪었지만 잘 버티고 노력해 왔다고. 스스로 어깨를 토닥거리는 때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남다른 감회를 요약했다.
‘데뷔 20주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있지만, 사실 그 내피에는 화려함보다 김재중의 속내가 깊이 담겼다. 김재중은 지난해 6월 소속사 인코드 엔터테인먼트를 정식 오픈하며 오랜 시간 네 번째 정규 앨범을 준비해 왔다. 타이틀곡인 ‘Glorious Day’를 비롯해 수록곡 10곡에 작사로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이 많은 말보다 이를 대변한다. 김재중은 과거 자신의 솔로 1집 당시 ‘록(rock)’ 장르를 소화한 것을 떠올리며 “그때는 제 모습을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바라봐주시는 분들도 계셨는데요. 아마 제 음악을 오래 들어온 분들은 이번 앨범이 이질감이 덜할 거예요. 사실 록 앨범을 낼 때, 저도 어색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앨범은 수록곡 모두가 어색하지 않아요. 하나의 통일된 느낌으로 소화된 앨범 같아요”라고 ‘플러워 가든’에 대한 만족감을 전했다.
앨범 타이틀이 ‘플라워 가든’인 것처럼 ‘꽃’은 이번 앨범의 중요한 키워드다. 김재중은 “제가 원래 꽃을 참 좋아해요. 실제로 꽃꽂이도 취미 삼아 오래 배웠었고”라고 웃으며 답변을 이어갔다. “제가 데뷔했을 때,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장미 꽃다발을 들고 데뷔했습니다. (웃음) 꽃과 연관성이 많아요. 제가 좋아하기 때문에 ‘꽃’을 모티브로 가져왔고요. 꽃은 한 송이, 한 송이가 모여 꽃다발이 되고, 넘치면 큰 정원, 가든이 될 수 있잖아요. ‘플라워 가든’은 거창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이지만, 사실 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꽃 한 송이의 감동, 꽃 한 송이를 준비해서 누군가에게 줄 때의 소중한 마음을 알아요.”
“아이돌로 데뷔해 활동을 이어오며, 무조건 하락세 그래프를 탈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최근 활동하면서 아주 작게나마 상승을 느끼는 중이거든요. 팬 분들도 현실에 치여서 결혼하고, 육아하느라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신 분도 계시고요. 얼마 전 중학생이 된 제 조카가 ‘내 친구가 삼촌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조카의 친구가 제 팬이라니. 그때 느꼈어요. 상승하고 있구나. (웃음) 그런 시간으로 인해 저는 한 송이 꽃의 소중함도 잘 알고 있고요, 제가 전성기에 느꼈던 가든 같은 꽃들의 팬 분들에 대한 감사함도 알아요. ‘꽃’이라는 이미지로 풀 수 있는 사랑의 표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또 지난해 유튜브 방송 ‘재친구’를 시작하면서 성격도 한층 밝아졌거든요. 예전에 어두운 음악 할 때는 제 얼굴빛도 좀 그레이톤이었는데, 요즘에는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제 마음이 그렇다 보니, 주변에도 그런 영향을 전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지금 이 기분이 딱 지금 앨범이에요. 물론 그레이한 곡도 있긴 하지만, 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타이틀곡을 ‘Glorious Day’로 선정한 이유에도 팬들이 있었다. “단순하게 음악성으로 따지면, 타이틀곡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곡이 가진 성격과 의미가 딱 맞았어요. 이 곡의 데모가 왔을 때,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무교이거든요. 하지만, 저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물었을 때, 제가 믿는 신이 존재하지 않으니,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 준 사람들과 같이 있는 날이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겠구나 싶더라고요. 지금도 함께하고 있고, 제가 데뷔하고 20년 동안 함께 해준 분들께 바치는 곡이에요.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 영광이었습니다.”
김재중은 20년의 세월에 담긴 진심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출연한 유튜브 채널 ‘조현아의 목요일 밤’에서도 팬들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보였다. 김재중은 이와 관련 인터뷰에서 “사람이 너무 힘들 때, 눈물이 나잖아요. 그런데 너무 고통스러우면 눈물이 안 나더라고요. 정작 힘들 때는 눈물이 별로 없었어요. 그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올 것 같은 시기에 생각난 겨울을 향한 눈물이었어요. 그리고 그 시기를 저는 혼자 겪은 게 아니고, 팬들과 함께 겪었거든요. 집 앞에 풀밭이 있으면, 겨울에는 풀이 몇 잎 없어요. 그런데 여름이면 무성해지죠. 제가 그랬어요. 많은 팬도 떠나가고, 풀 몇 잎처럼 남아계신 분들 덕분에 저도 지금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때를 생각하며 너무 감사한 거죠”라고 진심을 전했다.
김재중은 그의 표현처럼 봄을 맞았다. ‘맞았다’는 표현보다 어떻게 생각하면 ‘찾았다’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김재중은 지난해쯤 행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저는 지금의 제가 너무 좋아요.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전에는 슬퍼도 웃어야 했거든요. 물론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겠지만요. 제가 웃고 싶을 때 실컷 웃을 수 있고, 또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고요. 예전에는 주변을 너무 의식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아는 게 정말 소중한 건데요. 저는 그걸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거죠. 이게 회사 설립하고 행복한 이유 중 하나인데요. 저는 막연한 휴식에서 불안감을 느껴요. 열심히 일하며, 하루나 이틀 주어지는 휴식에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과거의 저는 희망, 꿈, 용기 같은 추상적인 단어로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다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숫자를 보게 돼요. 물론 아티스트의 역할과 경영인의 역할 모두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하지만 그게 행복해요. 단것만 먹는 것도 싫어하고, 쓴 것만 먹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균형이 중요한 사람인데요. 인코드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것이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전환점 같아요. 첫 번째는 데뷔고요.”
이수만, 박진영, 그리고 민희진 등 수많은 아티스트를 배출한 제작자를 존경한다고 밝힌 김재중은 올해 자신이 발탁한 아이돌 그룹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는 경영인과 아티스트의 균형 속에서 다양한 지점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자신이 서는 무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있는 아티스트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한 공연에서 매출이 일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지출과 비용이 들어가는지도 아마 잘 모를 거예요. 회사가 일일이 공개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저희 소속 아티스트들이 3~4년 차 정도 연차가 생기면 이런 것들도 공부시켜 줄 생각이에요.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는지가 중요하거든요. 경제적인 개념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아티스트에게 숫자로 압박감을 주려고 하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본인의 꿈을 펼치는 무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면 좋겠어요. 저는 운 좋게 빨리 알게 됐거든요. 저는 회사를 차리고 나서, 해외 공연 기획사와 나누는 조건들을 다 바꿨어요. 호텔 안에 뭐가 있어야 하고, 이동 차량은 고급 차량이어야 하고 등의 조항은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보다 공연의 질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해서 음향 장비 등에 쏟을 수 있으면 더 좋은 선택인 것 같아요.”
7년 만에 드라마 복귀 소식도 전해졌다. 김재중은 오는 8월 방송되는 MBN 새 금·토요일 미니시리즈 ‘나쁜 기억 지우개’를 통해 대중과 만나게 될 예정이다. 극 중 김재중은 기억 지우개로 인생이 뒤바뀐 ‘이군’ 역을 맡았다. 테니스 유망주였지만 부상 후 자존감을 모두 잃고, 인생의 조연이 됐지만, 기억 지우개로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자존감 높은 인물로 재탄생하는 인물이다. 김재중은 “작가님의 요구가 강력했어요. 또 제가 ‘지우개’ 시리즈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인생 영화 베스트 3안에 들어요. 나쁜 기억을 잃고,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연기를 할 때 너무 행복할 것 같았어요. 물론 기억 잃기 전 연기를 할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소속사 인코드 엔터테인먼트 설립부터 솔로 앨범, 배우 복귀 등 여전히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김재중은 여전히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이 앨범은 우리 회사에서 처음으로 나온 앨범입니다. 굉장히 기념비적인 앨범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신인 아이돌 그룹이 나올 때, 제가 그 친구들에게 크고 좋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제 현역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제작의 길에만 몰두한다는 건,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요. 사실 제가 아이돌을 제작하게 된 이유가 제 몸과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그걸 누군가는 이뤄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주고,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생각에서 회사를 차린 거니까요. 아이들이 잘 되게 하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플라워 가든’의 첫 번째 곡은 ‘굿 뉴스(good news)’다. 지금 김재중에게 가장 ‘굿 뉴스’로 다가온 것은 뭘까.
“얼마 전 회사가 1주년이 됐어요. 1주년이 된 기념으로 재무제표를 확인했는데 선방했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얼마 전 제 앨범 가사집에서 오타를 발견했거든요. 요즘 회사들은 오타는 스티커로 대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20주년 기념’ 앨범이잖아요. 무려 8만 장을 폐기 시키고 새로 찍었습니다. 그걸 발견한 것이 굿 뉴스입니다. 그걸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 실수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갈 뻔했잖아요. 그게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워요.”
여전히 작은 오타 하나에도 마음을 쓴다. 예전에는 커다란 꽃다발 속에서 꽃 한 송이에 담긴 마음을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됐다. 김재중이 인터뷰에서 20년 동안 함께 해준 팬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모두 자신의 ‘Glorious Day’라고 한 말이 오래오래 남는다. 그렇기에 김재중의 ‘Glorious Day’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