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세계화 주역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AI, 소수 언어 문자 개발에 기여할 수 있어”
생성형 AI로 한국어·콘텐츠 세계화 기회 열려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구아현 기자

컴퓨터가 언어를 배우자 언어 장벽이 깨지고 있다. 챗GPT를 비롯한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언어 생성부터 실시간 번역이 가능해졌다. 생성형 AI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언어 장벽이 낮아지고 있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국내 좋은 콘텐츠·서비스들을 쉽게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 세계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몇몇 언어 사용으로 소수 언어 소멸을 더욱 가속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LLM 학습이 인터넷 데이터를 활용하는 학습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소수 민족 언어에는 문자가 없다. 그렇다면 컴퓨터가 학습할 문자가 없어 소수 언어는 LLM 서비스에서도 소외된다. 이러한 사실도 소멸을 가속하는 요인이 된다. 사멸위기언어연구소와 전미지리학회 등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전 세계 언어 7000여 개 가운데 소수 민족 언어가 2주에 한 개꼴로 없어지고 있다.

본지는 생성형 AI 시대 변화와 교육에서 나아갈 방향을 조명하기 위해 국내 언어학자 대가라고 꼽히는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오는 6월 28일 열리는 THE AI 창간 행사에서 ‘AI시대의 교육, K-교육 콘텐츠’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이호영 교수는 발음을 연구하는 음성학자로 한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 교수는 2009년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族)에게 한글로 된 자기 말 교과서를 만들어주는 등 소수 민족 언어 보존과 한국어 세계화에 기여해왔다. 지난해에는 한글 세계화를 위해 한글 ‘풀어쓰기’ 체계를 개발했다. 한글은 원래 ‘모아쓰기’를 한다. 한국어 음질 구조와는 잘 맞지만 다른 외국어 같은 경우 음질 구조를 표기하기는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 교수는 이 부분이 한글의 세계화를 막는 걸림돌로 보고 세계 어느 언어든 풀어쓰기 할 수 있는 한글재민체 5.0’를 개발했다. 이는 이 교수가 개발한 풀어쓰기 기반 디지털 글꼴이다.

이호영 교수는 서울대 언어인지AI연구센터에 참여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는 AI는 한국어의 세계화뿐만 아니라 소멸하고 있는 소수 언어를 보존하고 개발하는 데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어 장벽 때문에 일상적·문화적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이 많다”며 “AI가 소수 언어를 보존하고 개발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AI를 소수 언어 보존과 발전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아현 기자

◇ “소수 언어 보존을 위한 AI관련 정책 필요”

이 교수가 언어학자로 느끼는 사명은 소수 언어의 보존이다. 그는 AI 기술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열쇠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20세기를 언어 말살 시대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패권주의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소수 언어 말살 정책과 국가 공용어 정책으로 소수 언어가 점차 사라졌다”며 “미디어 확산으로 소수 언어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언어는 다 소멸할 것이라는 학자들은 예측해 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AI 시대인 21세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이 부분에 주목하면서 AI가 소수 언어를 발전시키고 보존하는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용어 정책은 동의하지만, 소수 언어를 말살시키는 게 문제였다”며 “AI도 언어의 장벽을 낮추는 장점이 있지만 소수 언어를 말살시키는 가속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수의 데이터만으로도 학습할 수 있는 AI를 장점을 살려 소수 언어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AI로 소수 언어 복원 시대가 열리기를 기원한다”면서 “정부, AI 개발자, 학자들이 소수 언어 보존과 한글 세계화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어 기반 교육이 학습 효과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소수 언어에 담겨 있는 전통적인 지혜와 문화의 보존이라는 문화적 가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련 정책에 대한 필요성도 제언했다. 그는 “AI가 언어 보존에 쓰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소수 언어 데이터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AI가 언어장벽을 허물었고, 국내 좋은 콘텐츠들이 세계화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보았다. /구아현 기자

◇ AI로 깨진 언어장벽…국내 교육·문화 역량 세계화 기회

이호영 서울대 교수는 AI가 언어장벽을 낮추면서 국내 훌륭한 콘텐츠들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열이 높은 환경과 사교육에 대한 열풍으로 교육에 노하우가 다른 나라보다 잘 축적이 돼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AI 기술 발달이 콘텐츠 보급에 대한 장벽을 허물었다”며 “국내 우수한 교육 콘텐츠를 쉽게 다른 언어로 변환해 보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류가 깨트린 언어 장벽을 AI가 허물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미래에는 AI 기술 발달로 인간의 일을 어느 정도 AI가 대체하면서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부흥할 것이라고 봤다. 이에 한류 콘텐츠 세계화를 이룬 한국이 이를 잘 활용해 한글의 세계화와 K 콘텐츠의 세계화를 리딩해 가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K팝, K드라마, 웹툰 등 한류 콘텐츠로 전 세계인들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며 “AI가 언어 장벽을 깨뜨리면서 국내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K 콘텐츠 세계화를 위한 스토리텔링 작가 양성에도 힘쓸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 서울대 언어정보연구소 안에 스토리텔링 아카데미를 설립해 단장으로 활동한다. 그는 “AI로 모든 콘텐츠가 쉽게 번역되고 세계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좋은 작가를 양성에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토양을 대학 차원에서 기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립 목적을 설명했다.

◇ AI 기술 잘 활용해 ‘유토피아’ 만들어야

그는 언어 관점에서 생성형 AI가 문제는 ‘데이터’라고 꼬집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데이터를 모아 학습한 것이기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 그는 “언어 관련 데이터를 잘 구축해 정제된 데이터를 활용해 툴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람들은 정확한 정보를 알기 원한다”고 했다.

그는 AI가 사람에게 봉사하도록 개발할 때 ‘유토피아’ 세상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인간을 대체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아닌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개발해야 한다”면서 “언어도 마찬가지로 AI가 언어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언어를 더욱 보존하고 개발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AI를 이로운 데 잘 사용해야 ‘유토피아’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이 교수는 최근에 국립국제교육원과 공인어학시험인 한국어능력인증시험(TOPIK) 말하기·쓰기 AI 자동 평가 시스템 개발에 사업 책임자로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시험 응시자가 35만을 돌파하면서 말하기·쓰기 평가를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며 “AI를 잘 활용하면 교육 과정을 쉽게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가도 훨씬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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