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과 AI 반도체에만 함몰돼선 안 돼”… AI 현장에서의 직언
실제 AI 활용케 하는 애플리케이션 중요, 韓 AI 기업엔 기회

한국이 AI 경쟁력을 높이려면 원천 기술에만 집중하지 말고 실제 AI 활용 기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AI 산업계에서 나왔다. /김동원 기자

한국 인공지능(AI)은 기반 다지기에만 집중돼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AI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AI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나오고 있는 가운데 대형언어모델(LLM), AI 반도체 등 AI 원천 기술 확보에만 관심이 쏠려선 한국의 AI 경쟁력을 가져갈 수 없단 우려다. 현장에선 “인터넷과 스마트폰 발달로 구글과 애플 등 고가치 기업이 많이 등장했는데, 우리는 인터넷 프로토콜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LLM과 AI 반도체의 투자와 지원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미 이 분야는 미국에선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영역이에요. 오픈AI는 개발자 초봉이 13억 원이라고 합니다. 사실 규모 면에선 게임이 안 됩니다. 네이버 정도 되는 기업이면 경쟁해 볼 수 있겠지만, 승산이 있는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혹은 글로벌과 경쟁할 수 있는 분야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내 AI 스타트업 대표의 직언이다. 정부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LLM과 AI 반도체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얘기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더 강하게 말했다. 그는 “어쩌면 한국의 특징 같다”며 “현재 이슈되는 부분에만 지원하고, 그 분야가 사그라지면 조용히 지원을 끊는다”고 했다. 이어 “한국도 우직하게 지원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며 “패스트팔로워 자세를 버리고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퍼스트무버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I 반도체에 비관적인 시선도 있었다. 국내 시스템 전문가는 “AI 전용 칩이라고 불리는 신경망처리장치(NPU)는 쉽게 말해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AI에만 특화된 부분만 집중해 만든 것”이라면서 “그런데 다른 GPU 기능이 AI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지금처럼 AI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데, 일부 AI 기능에 초점을 맞춘 NPU가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래프코어의 추락이 NPU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덧붙였다.

정부 지원이 반도체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를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나오는 얘기가 반도체 인력 양성인데, 실상은 시스템 인력이 부족한 것”이라면서 “NPU는 메모리 반도체처럼 제품을 만들어놓고 ‘여러분 쓰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칩을 설계해서 전체 프로세스에 혁신을 가져와야 하는데, 이를 설계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AI 반도체의 경우 네이버와 삼성전자의 협력이 눈여겨 볼만 하지만, 사실 네이버도 세계 1위 AI 회사가 아니고, 삼성전자도 시스템 반도체에선 1위가 아니다”라며 “미국에선 인텔에 있는 시스템 인력이 마이크로소프트(MS)에 가는 등 1위끼리 경쟁이 되는 상황에서 네이버-삼성전자도 힘든데, 다른 AI 반도체 기업에 경쟁이 되기는 어렵고 NPU에서도 특화 시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AI 분야에서 경쟁력을 찾을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 AI 기업들은 서비스 분야를 꼽았다. 실제 AI를 사람들이 활용케 하는 분야다. LLM이나 AI 반도체가 AI 성능을 높여주는 뒷단의 영역이라면 서비스는 앞단의 영역이다.

이용근 모아이스 대표는 “AI는 뒷단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실제 AI를 서비스하는 앞단의 역할도 중요하다”면서 “뒷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AI를 실제로 서비스하는 애플리케이션 등에도 관심을 가져 한국이 AI 경쟁력을 강화해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구글, 애플과 같은 기업이 등장했고, 듀오링고와 같은 기업 가치가 큰 애플리케이션 기업도 등장하게 됐다”며 “아직 AI 업계엔 구글, 애플과 같은 기업이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도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AI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실제 사용자가 성공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성호 마키나락스 대표는 “지금 AI는 성공사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LLM 등이 발전했다고 해도 실제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AI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실제 소비자는 AI 기술을 신뢰하지 않아 산업 성장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간거래(B2B)든, 기업과소비간거래(B2C)든 우선 소비자가 믿고 쓸 수 있도록 AI를 서비스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AI 기업들은 지속 성공사례를 만들며 신뢰감을 키우고 정부에서도 이를 독려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하영 써로마인드 대표는 결국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이라고 했다. 그는 “앞단이든 뒷단이든 결국 한국 AI가 성장하기 위해선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면서 “단기간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미국이 AI 원천 기술에서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AI 빙하기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를 해왔기 때문”이라며 “한국도 일시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산업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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