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지테크 Part 1-2
정서적 고립 해소를 위한 실증 연구의 가능성과 과제

1인 가구 1,000만 시대를 맞아 정서 돌봄이 복지정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국내 1인 가구 수는 처음으로 1,002만 가구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 1인 가구는 약 200만 명으로, 전체의 약 20%를 차지한다. 특히 70세 이상 고령 1인 가구도 전체 1인 가구의 19%에 달해, 고립과 단절 위험이 큰 고위험 계층으로 지목되고 있다.

혼자 지내는 노인은 외로움과 우울감, 인지 저하 등 다양한 정서적 위기에 노출되기 쉽다. 외로움은 고령자의 우울증, 심혈관 질환, 심지어 사망률 증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어, 정서 돌봄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는 정서 돌봄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공학 등을 활용해 고령자, 1인 가구 등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계층의 심리적 안정감과 사회적 연결감을 지원하는 ‘정서 돌봄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한 정서 돌봄 기술

음성·표정·터치 등의 정서 인식 인터페이스를 갖춘 정서 중심의 반려로봇은 사용자와의 몰입도와 정서적 교감 형성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의 정서 인식(감정 인식)과 자연어 처리 기술이 접목되면서 그 효과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AI는 사용자의 말투와 표정,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해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생활 리듬과 정서 변화를 학습하면서 더욱 정교한 정서 돌봄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기능은 고립된 노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우울감과 외로움 완화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AI 반려 로봇을 활용해 “다시 말 걸 대상이 생겼다”, “로봇에게라도 매일 인사를 하니 기분이 달라졌다”는 반응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고령자 정서 돌봄에 특화된 반려로봇은 비교적 단순한 기능 중심으로 구성돼,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고 사용자가 적응하기 쉬운 것이 장점으로 평가된다. 이에 AI 반려로봇의 현장 보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정서 돌봄 기술이 심화하는 사회적 돌봄 공백 문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증 연구도 본격화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서 돌봄 기술을 활용해 고독사 및 자살 위험군 노인의 심리적 안정 도모를 목표로 실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복지용구 예비급여 시범사업 등을 통해 제도적 수용성을 점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국내만의 일은 아니다. 고령화 대응이 앞선 일본과 북유럽에서 정서 돌봄 로봇은 기술 실험 단계를 넘어 복지 실무 현장에 활용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3년부터 ‘5개년 케어 로봇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2018년 이후 5,000여 개 요양시설에 정서 돌봄 로봇(PARO 등)을 보급했다. PARO는 치매 환자의 불안 완화 효과가 임상 연구로 입증된 사례이며, 2009년 미국 FDA로부터 ‘신경학적 치료 의료기기’로 승인받기도 했다.

스웨덴은 2024년 기준 전체 지자체의 52%가 고양이·개 형태의 반려로봇을 치매 요양시설에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링셰핑대학교(Linköping University)와 노르셰핑시(Norrköping Municipality)가 공동 수행한 연구 결과로, 반려로봇이 고령자의 불안 감소와 정서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됐다. 핀란드 역시 일부 지자체에서 AI 음성 비서 기반의 정서 돌봄 실증을 진행 중이다.

고령자 대상 AI 반려 로봇 연구 중간 결과

용인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재섭 교수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자립이 가능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반려 로봇의 정서 돌봄 효과를 분석하는 실증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지역사회 기반 다기관 협업 형태로 진행 중인 이 연구는 정서 반응 유도, 생활 리듬 유지, 복약 알림 등 다양한 기능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 목표다.

박 교수는 “AI 돌봄 로봇은 단순한 정서 표현이나 알림 기능을 넘어서, 실제로 고령자의 일상에 실질적인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약 50명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어휘 선택, 말의 속도·톤 변화, 정서 반응, 일상 패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재는 예비 분석 단계로 통계적 유의성을 단정하긴 이르지만, 우울감 감소나 생활 리듬 유지 등에서 긍정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참여자는 대화 빈도 증가, 정서 표현력 향상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박 교수는 “AI 돌봄 로봇은 인간 돌봄자와 상호 보완적 관계를 전제로 해야 한다”며, “정서적 교감은 물론 위기 대응과 건강 관리 기능까지 통합된 복합 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기술이 정서 돌봄이라는 추상적 영역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언어, 표정, 정서 반응 등 멀티 모달 인터페이스를 결합해 정밀한 정서 평가를 시도하고 있으며, 병원·기술기업·복지기관과 협업해 데이터 표준화도 병행하고 있다.

해당 이미지는 AI 이미지 생성 도구(DALL·E)를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AI 돌봄 기술의 한계와 개선 과제

AI 돌봄 로봇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중증 치매 환자에게는 로봇의 정서 표현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으며, 음성 인식 오류나 소음 환경의 영향 등 기술적 한계도 존재한다. 특히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 저하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로봇의 반응이 오히려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맞춤 설계, 사용성 개선, 정서 인식 정확도 향상 등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보완돼야 할 기술 과제다.

윤리적 문제도 제기된다. 과도한 기술 의존은 인간관계 단절을 고착화할 수 있으며, 로봇을 의인화했을 때 발생하는 오작동이나 반응 오류는 오히려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윤리학자들은 AI 돌봄 기술이 정서적 의존을 유도하거나 인간관계를 대체하려는 방식으로 사용될 경우, 기대와 달리 고립감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가 관계의 빈틈을 메울 수는 있지만, 진정한 관계 자체가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와 데이터 보안 역시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과제다. 특히 노인의 생활 데이터가 민감한 정보로 분류되는 만큼, 수집 및 활용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AI 돌봄 로봇이 복지 인프라로 안착할 수 있을지 평가 중이며, 실증 확대, 기술 표준화, 복지용구 예비급여 시범사업 등을 통해 제도적 수용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AI 돌봄 로봇은 향후 정서 분석, 건강 모니터링, 의료 연계 기능이 통합된 ‘지능형 돌봄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현재까지 실증 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실제 의료·복지 시스템에 통합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기술은 ‘돌봄’을 대체할 수 있을까?

AI 돌봄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고령자의 일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디지털 동반자’로 점차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발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과 제도적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AI 돌봄 로봇의 빠른 확산과 달리 ‘돌봄’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단순한 대화나 정서 인식이 가능하다고 해서 인간관계, 따뜻한 손길, 공동체적 연결감까지 대체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돌봄의 책임을 모두 떠넘길 수는 없다. 많은 전문가가 기술의 역할은 돌봄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AI 돌봄 로봇’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로봇에게만 맡기기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로봇은 인간의 손길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존재다. 결국 돌봄의 중심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AI 돌봄 로봇이 실제 일상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기업 현장 사례를 통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 본 기사는 디지틀조선일보 창립 30주년 특집 ‘에이지테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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