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수 "사랑이 남아있지 않을 때 '너와 나'를 만나 오히려 더 꺼낼 수 있게 됐다" [인터뷰]
조현철 감독의 장편영화 연출작 '너와 나'는 표면적으로는 두 여학생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마음이 담긴 하루를 담았다.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같이 가지 못하는 하은에게 세미는 자신의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지난 2014년 4월 16일 벌어진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많은 이들에 대한 애도가 담겨있다. 세미가 자신의 새 '조이'에게 하염없이 "사랑해"라고 되뇌는 말은 하은에게, 친구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리고 떠나간 이들을 향해있다.
하지만 '너와 나'는 다른 이름으로 화제가 되기도 다. 지난 2021년 학교 폭력 논란이 불거진 이후, 배우 박혜수의 복귀작이라고 말이다. 박혜수는 해당 논란이 불거지기 전 '너와 나'를 제안받았고, 합류를 결정했다. 그리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조현철 감독은 박혜수의 말을 믿기로 했다. 박혜수는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함께 하기로 결정 내려주신 것 또한 죄송했고요. 감사했고요. 그랬던 것 같아요. 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게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너와 나'를 통해 가장 사랑을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시간, 박혜수는 가장 많이 사랑을 이야기하게 됐다.
Q. '너와 나' 속 세미는 정말 사랑이 많은 인물이다. 어떻게 다가갔나.
"표현하는 방식은 서툴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런 점에서 용기가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질투 등으로 하은(김시은)과 엇갈리는 지점도 있지만, 스스로도 잘못된 지점을 알고 자신이 미워지기도 하는 등 고등학생 시절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제 모습을 꺼내기도 했어요. 저도 더 어릴 때는 세미처럼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좀 성장해서 상대방에게 좋을 만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나, 더 큰 의미의 사랑에 대해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생각해 본 것 같아요. 그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세미의 헤어스타일이나 말투가 모두 여고생 그 자체였다. 어떻게 준비했나.
"이른바 머리를 하나로 올린 머리를 하고 있는데, 위치가 높지도 않고 밑도 아닌 애매한 위치거든요. 그것도 저희끼리 이야기한 세미의 디테일이었어요. 제가 곱슬이 심한 편인데 그것도 그대로 살려서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살렸던 것 같아요. 메이크업도 립밤 정도만 발랐고요. 교복 핏도 세미다운 핏을 고민했어요. 촬영 전,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서 리허설했거든요. 앉아서 대본을 읽는 방식이 아닌, 동선을 자유롭게 쓰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그 속에서 좋은 대사나 동작을 감독님이 골라서 그걸로 장면을 재구성하고. 이런 방식의 반복이었어요. 덕분에 자유롭고 통통 튀는 대사가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세미가 반려새인 '조이'에게 반복해서 "사랑해"라고 말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사실 '사랑해'라는 말이 너무 짧은 한마디잖아요. 그런데 그 속삭임에 저희가 '너와 나'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담기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궁극적으로 영화가 담고 있는 말을 세 음절로 이야기하는 순간이잖아요. 그래서 정말 제 안에 있는 모든 사랑을 끌어와서 뱉어봤는데요. 어떻게 관객에게 다가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랑이 조이나 한 사람에게 국한된 사랑이 아니라 널리 흩뿌려지는 사랑을 생각하며 이야기한 것 같아요. 제가 '너와 나'를 정말 많이 봤는데요. 가장 최근에 보았을 땐, 저 자신에게 해주는 말처럼 들려서 뭉클했어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을까요. 저도 관객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Q. '너와 나'는 그 속에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를 알고 출연을 결정했나.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그 메시지를 알고 시나리오를 보기 시작했어요. 조현철 감독님께서 죽음을 작품 속에 직접 표현하지 않고, 굉장히 세심하고 섬세한 위로의 방식을 고르고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섬세한 위로에 저도 참여를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저 자신에게도 치유의 과정이 될 것 같았어요.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면서도, 저도 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Q. 위로를 받았나.
"많이 받았죠.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제 주변에 있는 사랑들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그런 지점을 깨달으면서 저도 뭔가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스스로 단단해지기도 한 것 같아요."
Q.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실천한 경험이 있나.
"동물을 키워 본 경험이 없었거든요. 제주도에서 '너와 나'의 마지막 촬영을 했는데요. 그 촬영 끝나고 제주도에 머물면서 한두 달 정도 여행을 했어요. 그때 처음 유기견 봉사활동을 갔어요. 저에게 '동물과의 사랑'은 막연한 상상이었거든요. 그런데 유기견 봉사를 하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 임시 보호를 하게 됐고, 지금은 가족이 된 친구가 있어요. 2년 정도 같이 살고 있는데요. 그 친구를 통해 경험한 적 없던 사랑을 경험하게 된 것 같아요."
Q.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너와 나'를 본 반응은 어땠나?
"시사회에 와 준 친구들이 세미와 하은이 같은 사랑이 아니더라도, 저에게 사랑이 뭔지 알려준 친구들이거든요. 그 친구들이랑 있으면 고등학교 때 모습으로 많이 돌아가요. 친구들은 '너와 나'를 보고 '소름 돋는다, 옛날 생각난다'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그 친구들이 있기에 세미를 표현할 때도 그때 기억으로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학교 폭력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와 나'의 개봉이 정해졌다. 현재 어떤 상황인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고 결론이 나기 전이라 조금 그 과정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에 '너와 나' 팀에 뭔가 많이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 게 되게 죄송하기도 하고요. 그때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계속 수사는 진행 중이었고요. 최선을 다해서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빨리 뭔가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Q. 논란 후,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가고 있나. 학폭 논란이 어느 쪽으로 결말이 지어지기 전까지 계속 주홍 글씨처럼 따라다닐 텐데, '배우'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게 되게 필요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생각하면 제가 이렇게 일상을 살아내려고 하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결론이 나올 것이고 끝나잖아요. 저는 예전과 지금, 아무 변화 없이 연기를 제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저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고민해야 할 것들, 알아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성장하기도 하고요. 그게 연기의 매력인 것 같아요."
Q. '너와 나'를 통해서 성장했다고 느낀 지점은 뭘까. 더불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 마음 속에 사랑이라는 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 작품을 만나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더 꺼낼 수 있게 됐어요. 더 여기저기에 사랑을 이야기하고 전할 수 있게 됐고요. 내가 느끼지 못한 순간에도 어디에나 사랑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서 그런 지점에서 되게 기적 같은 순간인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이 마음 속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품고 살아 가잖아요. 그런 분들께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세미의 말이 따뜻한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