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윤정, 수려한 미모 뒤 숨겨둔 강철 멘탈 "나는 못 할 수밖에…마음 비웠죠"
"'얼굴이 초능력'이라는 말요? 유쾌하고 정말 감사한 말이죠. 사실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어요. 아무래도 '무빙'이 초능력 물이다 보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요."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비주얼이다.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미모로 이름을 알린 고윤정은, 이젠 미모 뒤에 가려졌던 연기력을 한껏 펼치고 있다. '사이코메트리 그녀석'으로 시작해 '보건교사 안은영', '스위트홈', 그리고 '환혼'까지, 아직 다작 배우라 부르긴 어려워도 쉼 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고윤정. 그런 그가 '무빙'을 만나 대세 중의 대세가 됐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액션 시리즈로, 극 중 고윤정은 뛰어난 재생 능력을 가진 소녀 '장희수'를 맡았다.
'무빙' 공개 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고윤정을 만났다. 긴장을 많이 했다며 안정되는 약도 먹고 왔다고 말한 고윤정은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유려하게 현장을 이끌었다.
고윤정은 오디션을 통해 '무빙'에 합류했다. 당시 오디션에서 대본을 받고 바로 희수를 표현해야 했다. 아직 현장에서 즉석으로 리딩 하는 게 어렵다던 고윤정은 희수를 만났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희수와 닮은 성격과 말투 덕에 편안하게 리딩 할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이 강풀 작가에게 닿았다.
"희수랑 닮은 점은 감정 표현에 조금은 더디다는 것, 그리고 씩씩한 점인 것 같아요. 저도 낯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거든요. '무빙'을 보면서 발견한 차이점도 좀 있는데, 희수는 저에 비해 다정하고 따뜻하고 정의로워요."
"작가님도 '네 말투와 목소리가 희수와 잘 어울린다'고 해주셨어요. 원작과 똑같이 해주길 바라기보다는 편하게 희수를 표현해달라고 하셨죠. 작가님이 현장 놀러 오셔서 모니터를 꼼꼼히 해주신 덕에 작가님 말씀에 확신을 얻고 촬영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무빙'은 조인성, 한효주, 류승룡, 류승범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선택한 대작이었다. 이런 작품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고윤정은 배울 수 있는 현장이라는 사실 자체에 설렜다.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설렜어요. 다만 아쉬웠던 건 모든 선배님을 다 만나 뵙진 못했다는 거예요. 함께 촬영했던 선배님들은 직접 조언해 주시지 않더라도 현장의 모든 게 제겐 도움이 됐어요. 선배님이 연기를 준비하는 자세, 연기하는 것만 봐도 저로서는 많이 배울 수 있었거든요. 선배님들을 보면 정말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으시더라고요."
"제 아빠로 나온 류승룡 선배님은 워낙 평소에 존경하던 선배님이셨어요. 뵙기 전에는 막연하게 어려운 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첫 만남 때 (저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해 주셔서 '엄청 스위트하시구나'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선배님과 얘기도 많이 나누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선배님께서 장난기도 진짜 많으신데, 분위기를 잘 띄워주셔서 촬영하는 내내 즐거웠죠."
'무빙'의 매력 포인트 중에는 풋풋한 정원고 3인방의 서사도 한몫했다. 고윤정은 또래인 이정하(봉석 역), 김도훈(강훈 역)과 누나 동생처럼 지내며 합을 맞춰갔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고민도 나눴다. 고민의 주된 내용은 역시나 연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원고즈 케미는 정말 좋았어요. 제가 두 배우와 동갑인 동생이 있어서 편하기도 했고요. 두 분도 워낙 성격이 좋아요. 셋이 자주 함께 있다 보니 개그 코드도 잘 맞았어요. 지방 촬영이 많아서 저희끼리 쉬는 날이면 '뭐 할까?'하면서 바닷가도 다녀오고, 구경도 다녔고요."
"촬영 당시에는 제가 스물여섯이고, 그 친구들은 스물넷이었어요. 어디 가서 애기라 불릴 나이는 아닌데, 저희를 '아역'이라고 표현해주시고 현장에서도 모두 예뻐해 주셨어요.(웃음) 저희끼리는 '대단한 선배님들께 민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연기했어요."
'무빙' 속 은근한 삼각 러브라인을 펼치고 있는 세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 고윤정이라면 봉석과 강훈 중 어떤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그는 잠깐의 고민 끝에 봉석이를 골랐다.
"저는 봉석이 스타일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강아지 같은 다정한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강훈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희수를 구해주긴 했죠. 결정타는 강훈이가 날렸지만 너무 표현을 못 하니까, 희수 입장에서는 강훈이의 마음을 몰랐을 것 같아요. 강훈이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제 생각에는 강훈이가 희수를 짝사랑하기보다는 공통점을 가진 친구이고 비밀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이 갔던 게 아닐까 싶어요."
미술학도였던 고윤정이 진로를 바꿔 배우가 된 지도 4년째다. 대학을 다니며 연기를 시작했다. 최근 많은 신인들이 배우 꿈을 가지고 학창 시절부터 준비하는 것에 비하면 다소 늦은 출발이다. 하지만 고윤정은 그런 부담감을 강점으로 승화했다. '전공자가 아니니까 못할 수밖에'라는 마음으로 부딪히는 일부터 시작했다.
"연기를 늦게 시작한 게 부담되기도 하지만 마음가짐으로 보면 강점이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전공자가 아니니까 오디션을 가도 내가 제일 못하겠지'하는 생각이 있는데, 마음을 비우기 시작하니까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또 장점이 있다면, 가르침을 받을 때 흡수가 빠르다는 거예요. 아예 아는 게 없으니까요.(웃음)"
고윤정은 배우로서의 욕심과 목표를 두기보다, 차근차근 성장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데뷔 후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온 그는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다'며 바람을 전했다. 큰 상을 받거나 대작에 출연하거나, 톱스타가 되는 일보다도 오래도록 배우의 길을 걷길 바랐다.
"저는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저를 궁금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선배님들을 뵙고 싶어 했듯이, 나중에는 후배들이 제가 연기하고 있는 촬영장에 놀러 와서 구경하고 싶을 만큼, 그런 멋진 선배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