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금의 '유아인'이 과거의 '유아인'을 보며
"부디 부끄러워하기를. 고꾸라진 젊음이야 어쩌겠느냐마는.
주저앉아 늘어놓은 세월 타령. 부디 거기에 선 발목 잡고 부끄러워해 주기를."
지난 2008년 1월 18일 유아인이 온라인 플랫폼 싸이월드에 쓴 글이다. 유아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당 글을 캡처한 이미지와 함께 "엄홍식 님의 싸이월드가 복구되었습니다"라고 글을 적었다. 또한 "제 침대에는 이불이 없습니다. 킥할 것이 없지요"라는 댓글을 덧붙였다. 유아인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소통은 때로는 불통이 되기도 했고,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유아인의 말에 의하면 삭제되지도 않았다. 물론 이유가 있다.
유아인은 지난달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에서 동욱 역을 맡았다. 동욱은 남다른 운전 실력으로 최강의 드리프터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상계동 빵꾸팸 ‘우삼’(고경표), '복남'(이규형), ‘윤희’(박주현), ‘준기’(옹성우)와 함께 VIP 비자금 수사 작전에 투입된다. 유아인은 영화 '베테랑'에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악역으로 선에 맞섰고, 영화 '사도'에서는 사도세자가 되어 아버지(송강호)에게 맞섰다. 여러모로 1:1이 어울리는 유아인이 한 패밀리의 리더가 됐다.
"가끔 팀플레이를 펼치는 작품도 했었어요. '육룡이 나르샤'라는 작품도 '육룡'이 함께한 작품이잖아요. (웃음) 제 대표작으로 불리는 작품들이 그런 성향의 대결 구도인 작품이 많죠. 그러다 보니 우당탕탕 장난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지 못하고, 어울리는 작품보다는 절 떨어뜨려놓는 작품이 몸에 익숙해서 맡기도 하는데요. 저 스스로 그런 게 질릴 때, 대중들도 저의 그런 모습에 질리지 않을까 싶을 때, 다른 선택을 하죠. 팀 작업을 하면서, 저에게도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고경표, 이규형, 박주현, 옹성우은 말 그대로 유아인과 한 팀이었다. 제작발표회에서 유아인은 마지막 인사를 앞두고 "옹또춤(옹성우 또 춤춘다의 줄임말)"이라는 애칭을 폭로하며 옹성우의 즉흥 댄스를 성사시켰다. 춤을 절로 출 정도로 '함께'하는 현장은 즐거웠다.
"'옹성우 또 춤춘다'라고 할 정도로 매일 춤추면서 '이게 라스베이거스 댄스예요'라고 얘기해주던 (옹)성우 씨에게 특별히 감사함이 있고요. (웃음) 제가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의무감도 있었어요. 함께하는 케미가 중요한 작품이다 보니, 평소의 습성대로 나를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게 아니라, 어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쉬는 시간에 함께 게임을 정말 많이 했어요. 내기, 벌칙 등을 걸고 했는데 정말 단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고요. 매 순간 꼴등을 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적당히 많이 져주기도 했습니다. (웃음) 커피 사기, 스쿼트 20회 실시, 엉덩이로 이름 쓰기 등 정말 다양한 벌칙을 소화한 기억이 납니다."
'서울대작전'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청춘"이다. 자동차로 질주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오랜 시간 '청춘의 아이콘'이라고 불려온 유아인과 맞물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서울대작전'의 제작진 역시 "동욱 역에 유아인이 아니면 생각하지도 않았다"라고 밝혔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작 유아인은 "이렇게 고민한 작품이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를 회상한다.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편이고, 그걸 통해서 인간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도전 그 자체만을 즐기기에는 체력이 떨어진 것도 있어요. 또 유아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서 주저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어마어마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작품에 고민이 좀 길었던 것 같아요. 오랜 고민으로 제작진을 힘들게 한 부분 사과하고 싶고요. 한국에서 새로운 특성을 가진 오락영화라는 특성 안에 1988년이라는 요소들이 장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임한 것 같아요. 제 대사는 아니지만 우삼(고경표) 대사 중에 '껍데기가 다야'라는 말들. 장난스럽고 가벼운 말일 수도 있지만, 의미하는 바가 묵직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 당시 부정한 세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리드미컬하게 흘러가는 작품을 한 겹 까보면, 사회 비판 의식도 내재하고 있고요. 너무 비판적이고 날이 서있는 작품보다 효과적으로 많은 분께 그런 느낌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임한 것 같아요."
"어떤 아이콘이 된다는 것이 굉장히 기분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많은 분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마음도 존재하고요. 이제는 그런 무게를 같이 나누어 짊어지는 동료 배우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좀 징그러워, 더 이상은. (웃음)"
앞선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절친으로 알려진 동료 배우 송혜교, 정유미에게 '서울대작전'의 반응을 들었냐는 질문에 "아직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않았는데, 꼭 듣고 싶다"라고 답했다. 해당 질문에 이어 기대하는 반응이 있냐고 묻자 "없어요. 솔직하게 얘기해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저는 무엇이 됐건, 솔직하게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제일 좋아요. 그런 것들과 신나게 어울리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인간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언제나 크고 시끄러운 목소리가 먼저 들리고, 그런 것들이 힘을 얻고, 비평보다 비난이 유행하는 시대잖아요. 그것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기도 하니, 무조건 안 좋다고만 할 수는 없어요. 온라인을 통해 우리가 만나고 있지만, 이 안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감각도 존재하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경각심도 가져가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리뷰도 다양하더라고요. 기분 좋게 감상하신 분도, 가슴 찢어지게 하는 타이틀도, 그 다양한 생각 자체를 느끼며 작품에 임하고 있습니다."
유아인은 영화, TV, 광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힙'의 중심에 있었다. 이 말에 그는 "'힙하다'라는 말을 좋게도 쓰지만, 부정적으로도 많이 써요. 조금 징그러운 말로 쓰죠"라고 웃으며 자기 생각을 덧붙여 밝혔다.
"저는 유행이나 힙스러운 것을 쫓는 게 아니라요. 자신만의 리듬을 갖는 것, 움직임을 갖는 것, 멋을 추구해보는 것 등 시도할 때는 조금 촌스럽고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끊임없이 찾고 시도하며 나를 완성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영향력이 있지 않나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해주면 좋겠어요. '나처럼 해봐'가 아니라 '너 다운 걸 해봐, 너처럼 해봐'라고요."
자연스레 질문이 이어진다. 유아인이 생각하는 '유아인다움'은 뭘까.
"유아인이라고 하면 일단 이상하잖아요. '왜 저렇게 얘기해? 여기에선 이랬는데, 저기에선 왜 이래?, 목소리가 왜 이래?, 이제는 좀 편하게 가도 될 것 같은데 왜 자꾸 이상한 짓을 하지?'라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이런 시도, 실험, 그래서 완성되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중첩되는 상황 속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의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느끼는 것이 저인 것 같아요. 나라고 주장하기보다, 다양하게 해석되고 평하는 것이 '유아인'이라는 전체를 이루고 있지 않나 싶어요. 고정되어있지 않고, 성장해 나가고, 또 다른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유아인은 복구된 싸이월드를 통해 2000년대 자신을 마주했다. 그때도 유아인의 싸이월드는 화제가 되었고, 유아인의 말들은 논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왔다. 과거의 자신을 보며, 유아인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는 그런거 공유하는 것 잘하잖아요. (웃음) 저는 어떤 식의 표현도 제가 스스로 지워본 적이 없어요. 논란을 만들었든, 돌이켜볼 때 부끄러운 것이든, 삭제한 적이 없어요. 그런 성장의 과정, 변화의 과정을 보여드리는 것이 제 일이기도 했고요. 저는 책상에만 갇혀서, 어떤 틀 안에 갇혀서, 제 성장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주고받을 수 있는 성장을 가져가고 싶어요.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저의 태도라서요. 그래서 이불킥 할 수 있지만, 이불도 없어서 킥할 여지가 없다고 말씀드리기도 한 거고요."
"최근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어떤 기자님께서 청춘에 대한 질문,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징그러운 타이틀을 주셔서 올린 거였어요. 사실 그런 질문을 주시지 않았어도, 올리고 싶었어요. 스물 한 살, 스물 두 살, 그 시절의 아이가 지금의 유아인에게 엄홍식에게 주는 경각심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너 똑바로 살아, 징그러워 지지마, 더 솔직해 져야 해'라고요. 그렇게 썼더라고요. 그 시절의 저를 느끼며 여러분들에게 공유한 것 같아요. 같이 웃자고! 같이 즐기자고! (웃음) 삭제만 하지 말고, 이불킥만 하지 말고, 더 재미있게 즐기며 삶을 가져가 보자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