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의로움와 광기 그사이, 지루할 틈 없는 뮤지컬 '데스노트'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정의'에 대한 의문. 천재들의 두뇌 싸움 속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는 작품 '데스노트'가 논레플리카 버전으로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연재 당시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작품은 이후 애니메이션, 영화화에 이어 뮤지컬로도 재탄생하며 독보적인 콘텐츠로 사랑받고 있다.
작품은 천재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가 우연히 사신의 노트를 줍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말 그대로 죽음의 노트인 데스노트.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힌 자는 40초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노트에 이름을 적는 자가 사인을 적으면 그대로 이뤄진다. 온갖 범죄자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법과 사회가 정의 실현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라이토는 이 노트를 통해 스스로 '정의의 심판자'가 되려 한다.
그렇게 '키라'라 불리며 영웅놀이에 심취해 있는 라이토에게 위협이 닥친다. 시공간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을 해결하고자 천재 탐정가 '엘(L)'이 나선 것. 이때부터 두 천재의 숨 막히는 두뇌 싸움과 팽팽한 신경전이 시작된다.
뮤지컬 '데스노트'가 국내에서 논레플리카 버전으로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바탕으로 무대, 안무, 의상 등을 자유롭게 각색할 수 있는 논레플리카 방식으로 제작된 덕에 작품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면서 한국 프로덕션만의 매력을 담을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이미 '지킬앤하이드'를 논레플리카 버전으로 성공시킨 신춘수 프로듀서, 그리고 굵직한 작품에서 활약한 김동연 연출의 세련된 감각이 총집합된 무대였다. 공연 전 째깍이는 시계 영상이 객석을 뒤덮고, 이 시계들을 뭉개버리는 사신 류크의 거대한 실루엣이 등장하며 순간적인 몰입도를 높였다. 무대 장치와 아이템을 최소화하고 바닥-벽-천장을 거대한 LED 패널로 구성한 덕에 입체적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은 원작 속 명장면까지 아낌없이 담아냈다. 두 천재의 테니스 대결 신이 담긴 넘버 '놈의 마음속으로'에서는 디스플레이와 레이저를 이용한 무대가 눈을 사로잡았다. 마치 객석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연출로 두 인물의 첨예한 대립을 속도감 있게 표현했다. 여타 작품에선 볼 수 없던 무대 연출은 스타일리시했다. 게다가 엘이 라이토의 연인 아마네 미사를 감금 취조하는 신, 극 말미 항구 신은 원작과 무대를 비교하는 재미까지 있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넘버는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를 만나 시너지를 폭발시켰다. 야가미 라이토 역을 맡은 고은성, '샤엘'이라 불리며 자신만의 '엘'을 구축해온 김준수는 이견 없이 완벽 싱크로율을 선보였다.
고은성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눈빛 연기로 객석을 매료했다. 그는 때론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가족으로, 때론 사신보다 잔혹한 인물로 극단을 오가는 '라이토'와 '키라'를 그려냈다.
김준수는 행동부터 애티튜드까지 독특한 인물 '엘'을 특유의 퇴폐미로 표현했다. '디저트에 진심인 순수한 소년이자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위법도 서슴지 않는 대담한 천재'라는 입체적 설정을 유니크한 톤으로 소화했다.
여기에 사신 '류크' 역의 서경수는 원작 캐릭터보다 더 발랄한 톤으로 개구쟁이 매력을 더했고, 아마네 미사를 사랑하는 사신 '렘' 역의 김선영은 파워풀한 가창력과 섬세한 감정선으로 절절한 워맨스를 그렸다.
특히, 톱 아이돌 '아마네 미사'를 연기한 케이는 존재감을 제대로 펼쳤다. 미사의 등장 넘버 '사랑할 각오'에선 솔로 아티스트다운 무대 장악력으로, '비밀의 메시지'에서는 처연함이 느껴지는 보컬로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극강의 몰입을 유발하는 전개와 캐릭터성이 돋보이는 넘버, 배우들의 가창력에 스타일리시한 무대 연출까지 지루할 틈이 없는 뮤지컬 '데스노트'는 오는 6월 19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며, 7월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흥행 열기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