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빈 인터뷰 / 사진: 이니셜엔터테인먼트 제공

데뷔 5년 차, 스물여덟의 이선빈이 인생작을 만났다. 데뷔 1년 차부터 다작을 시작하더니, 이듬해 주연을 꿰차며 흥행 가도를 달려온 그다. 큰 키에 시크한 이미지, 성숙한 눈빛으로 유독 장르물에서 활약해온 이선빈은 '술꾼도시여자들'로 남녀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제대로 선사했다.

'술꾼도시여자들'은 술에 살고 술에 죽는 세 여자친구들의 이야기다. 이선빈은 세 친구의 중심을 잡고 있는 '안소희'를 연기했다. 소희는 코미디언이 꿈이었으나 지금은 예능 작가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술에 취하면 불쌍한 남자가 멋져 보이는 병(?)을 가진 그는 늘 실패하는 연애를 접어두고, 일과 우정에 몰두한다. 그런 그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술. 퇴근 후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면 모든 게 만사 오케이다.

드라마 종영 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이선빈을 만났다. 이선빈은 소희와 닮아 있었다. '꾸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쩌면 자신 그대로를 보여줬겠구나 싶었다. '술꾼도시여자들'이 가진 공감 서사에 리얼한 연기가 곁들여지니 마음이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제가 서치도 못하고 반응글 찾는 걸 잘 못하는데, 그런 저한테도 다 보일 정도였어요. 주변에서 고깃집에 갔더니 적시자! 하는 사람을 봤다, PC방에서, 지하철에서 '술도녀' 보는 사람을 봤다 등등 반응을 전해주시더라고요. 드라마가 이슈가 되는 거랑 또 다른 행복과 성취감이 있었어요. 입소문으로 유입되는 거라 너무 좋았죠"

'술꾼도시여자들' 세 친구는 각자의 아픔을 가졌다. 이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묵묵히 보듬는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시청자를 매료했다. 이선빈은 작품이 사랑을 받는 이유를 공감에서 찾았다.

"저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런 친구가 있고 심지어 드라마에 나오는 신들 중에서도 공감할 만한 일도 있었어요"

"이게 사람들이 왜 공감을 하고 자신에게 대입하는지 알았어요. 이 세 사람의 부류가 사실 한 사람이 가진 모습이기도 하잖아요. 누구나 지연이처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끼도 부릴 줄 알고, 지구처럼 의리를 지키고 불의를 못 참고, 소희처럼 인내하는 모습도 있고요. 이 모든 면모들이 한 사람의 자아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누구 하나 뛰어나게 매력적인 게 아니라 세 캐릭터가 모두 빛날 수 있었어요"

세 캐릭터가 매력적일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실제 케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선빈은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을 통해 소중한 언니들을 얻었다고 했다.

"드라마를 통해서 얻게 된 진짜 언니들이에요. 촬영하면서 애티튜드를 나누면서 해보니 우리 진짜 오래갈 것 같더라고요. 선화 언니는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감정에 솔직한지라 굉장히 여리고요. 센스가 너무 좋아서 촬영하면서도 고마웠고, 언니의 언니가 늘 기대됐어요"

"은지 언니는 친구들 중에 신빙성 가는 친구 있잖아요. 그런 캐릭터에요.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얘기해 줄 수 있는 언니에요. 듬직하다고 해야 할까요? 강인한 면이 있어요. 저는 살짝 유리 멘탈인데 언니는 강한 면도 있고, 언니가 장녀라서 그런지 그런 면모가 있어요"

사람이 좋았던 이유도 있지만, 이선빈은 그동안 쭉 워맨스를 바라왔다. 바라던 작품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이선빈은 훨훨 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인터뷰에서 다음 작품은 어떤 거 하고 싶냐고 물어보실 때마다 저는 '사람 냄새 나는 작품'과 '워맨스' 보여드릴 수 있는 걸 말씀드렸어요. 그전에는 남자분들이랑 많이 호흡을 맞춰봤으니까, 여자들끼리 워맨스를 보여드리고 싶었죠"

"이렇게 저에게 작품이 왔는데, 혹시 내 의도와 다르게 표현되거나 전달이 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도 했어요. 누군가 혼자 튄다든지요. 그랬는데, 대본에서 보여진 세 명의 이야기가 정말 탄탄했고 잘 엮여져 있었어요. 또 저희끼리 사이가 좋으니까 그런 걱정을 더 내려놓을 수 있었고요"

웹툰이 원작인 '술꾼도시여자들'은 드라마화 되며 더 다채로운 서사를 입었다. 원작에 없는 '강북구'(최시원)가 등장해 안소희와의 독특한 러브라인을 그려냈다.

"보통 애정신이나, 키스신, 베드신이 있으면 편한 사이였다가도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그런데, 저희는 앉아서 '어떻게 웃길거야' 그런 식으로 로맨스를 준비했어요. 캐릭터에 맞게 티격태격하면서 뿅뿅 로맨스가 튀어 나오니까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억지스러운 로맨스가 아니라, 기대 이하로 생각했던 나자가 멋있을 때는 정말 멋진 포인트를 보여줘서 '누가 봐도 강북구가 점수를 땄네' 하는 신으로 흘러가서 몰입하기 좋았죠. 시원 오빠가 정말 잘 표현해 주셨어요"

고교시절에는 뮤지컬, 이후엔 가수 준비를 했던 이선빈은 프리랜서 모델로 활동하다 배우에 정착했다. "눈을 떠보니 지금이 됐다"고 말한 이선빈은 바쁘고 벅찬 삶 탓에 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도 술을 조금만 마시면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한 그였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정말 정말 술 기운이 필요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대선배 박영규 면전에 대고 쉴 틈 없이 살벌한 전라도 욕을 쏟아내는 신이었다.

"욕 신을 할 때는 한 테이크에 갔어요. 저는 밥을 먹다가, 설거지 통으로 가져가는 그 순간에도 욕 대사를 연습했어요. 기계처럼 나오게끔 하지 않으면 감정이나 표정 연기가 안될 것 같아서요. 자고 일어나서 몽롱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해봤죠. 그거를 몇 주 하니까 이젠 그냥 나와요. 방송을 보면서도 입으로 따라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그간 보여준 적 없던 모습을 잔뜩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선빈과 정은지, 한선화 세 사람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세 사람이 연기가 아니라 진짜 작품 속 인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배우들이 연기를 즐기는 모습이 보는 이에게도 전해졌다.

"저 지금 울컥했던 게,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까 그렇다고 느낀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내가 캐릭터에 애정이 있고, 그 안에 배우들까지도 내 사람으로 사랑을 해버리니까, 스스로에게 자신감도 있었지만 동료들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믿음이 너무 강하니까요. 서로 한 팀이 되어서 더 힘이 났던 것 같아요. 사실 쫄쫄이 입을 때는 조금 자신이 없었기도 했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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