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토지·덕이' 등으로 쌓은 신뢰감…'지옥'으로 재발견한 김현주
깨끗했고, 단아했다. 드라마 '토지', '덕이' 등의 작품에서 김현주는 선하고 강단 있는 인물을 그려내며 '신뢰감'을 쌓아 올렸다. 그런 그가 연상호 감독의 '지옥'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의아했다. 데뷔 26년 차, 김현주는 틀을 깨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그에게 느낀 것은 성실함, 진실함, 도전, 그리고 용기였다.
김현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에서 민혜진 변호사 역을 맡았다. '지옥'은 '며칠 후,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알려진 시간에 죽음의 사자에게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되며 야기된 혼란스러운 상황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작품은 그 속에 각기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웠다. 그 속에서 민혜진 변호사는 1화부터 6화까지를 관통하는 유일한 인물로, 극을 이끌어간다.
김현주는 "민혜진 변호사 역시 나약한 인간 군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라며 캐릭터에 중점을 둔 부분을 전했다. 그는 "흔들려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여지를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하고 균형을 맞춰간 것 같아요"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김현주 배우가 오랜 시간 보여준 신뢰가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신뢰감 있는 역할을 오래 해주셔서 민헤진 역할과 닮아있다고도 생각했고요"라고 캐스팅에 만족감을 전했다. 또한, 김현주가 쑥쓰러워서 이야 하려고 하지 않지만, 액션 장면을 위해 석 달 넘게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했다.
김현주는 "기간은 석 달이었지만, 다른 작품을 병행하는 중이라서, 시간을 많이 할애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더 기간보다 일찍부터 연습을 시작했고요"라고 겸손한 태도로 액션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촬영 들어가기 3~4개월 전부터 시작했어요. 액션 스쿨에 가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연습했어요. 제가 생각보다 몸을 쓸 줄 알더라고요. 그것에 대해 저 자신도 놀랐고요. 제가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었구나'라고 스스로 발견했죠.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긴 하는데, 보는 걸 좋아하지 직접 하는 건 딱 몇 가지만 좋아해서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는데, '내가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커리큘럼에 따라 하나씩 단계별로 배웠고, 정해진 합을 맞춰가며 연기했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배우 김현주와 '지옥'은 다른 행보다. 딱히 액션 도전을 꼽지 않아도, '지옥'에서 민혜진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흔들리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김현주는 묵직하게 그를 담아냈다. 다양한 전작에서 완벽한 인간의 한 이상향을 만들어 준 김현주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1997년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로 데뷔한 그에게 '김현주의 재발견'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제가 데뷔했을 때 장시간 유지한 어떤 모습이 있었고, 그건 제가 의도했다기보다 그런 부분을 시청자분들이 좋아해 주셨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의 제안이 많이 들어왔고 그 속에서 선택을 하며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이 있었고, 스스로 도전을 두려워하긴 하지만, 도전하지 않아 발전이 없고 퇴보하고 멈추는 것에 강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어떤 사건이나 그런 것들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포용력이 생긴 시기에 다른 걸 선택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계기는 있었던 것 같아요."
"재발견이라는 말씀에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것들을 보여드리기 위해 저도 스스로도 제가 가진 틀 같은 걸 좀 더 깰 필요가 있을 것 같고요. 노력하고 용기를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김현주가 '지옥' 속 상황처럼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게 되면 어떨까. 그는 "남은 기간의 차이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라며 조심스레 답변을 시작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죽는 시점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 적이 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경험을 하면서,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알았다면'이라는 후회, 아쉬움, 그리고 미련 같이 붙잡고 싶은 마음을 경험한 적이 있죠. 그런데 '지옥'을 하면서 죽는 시각을 안다고 생각하니, 안다고 잘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더 혼란스러운 사회를 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제가 고지를 받는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 같아요. 물질적인 것보다 인간관계에 대한 정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옥'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났다. 그리고 공개된 지 3일 만에 넷플릭스 주간 월드차트 1위에 올랐다. 해외 리뷰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특히 배우의 연기에 대한 호평은 예외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김현주는 '배우 김현주'의 자리에 서 있을 생각이다.
"아직 월드 스타는 아닌 것 같고요.(웃음) '지옥'이 좋은 결과를 낳고 있지만, 직접 체감하긴 이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껏 가져온 생활 패턴이나 배우로서 일하는 행보, 작품 선택 등에 영향을 받은 거란 생각은 없어요. 제가 임하는 작품을 소중히 하고, 앞으로도 같은 마음으로 임할 거고요. 만약 '지옥'으로 선택의 폭이 좀 더 넓어질 수 있다면, 그건 저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현주는 '지옥'에서 함께한 연상호 감독과 넷플릭스 영화 '정이'(가제)에서 함께한다. "'지옥' 촬영 현장이 좋지 않았다면, 아마 '정이'를 택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고요"라고 말하는 김현주는 '지옥'으로 한 번 경험해 본 연상호 감독과의 호흡으로 더 편하고 친숙하게 촬영 중이다.
"사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많고요. '정이' 현장에서 촬영 방식, 연기 톤 같은 지금까지 해온 틀을 깬 것 같아요. 유치원생처럼 정말 하나하나 배우면서 촬영하고 있거든요. 이건 '정이'를 다 찍고 말씀드릴게요. 그래도 될까요?"
조심스레 답변을 마무리 짓는 김현주에게 '내공'이라는 단어가 감히 떠올랐다. 김현주는 '지옥' 이후에도 소중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할 거고, 대중은 감사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될 거다.
"제가 데뷔작을 윤여정, 나문희 선생님과 같이했었는데요. 특별히 구구절절 말씀하시진 않으셨지만, 존재 자체로 큰 힘이 되었고요. 밑바탕에 그런 존경심이 있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크게 욕심을 낸다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선배, 배우, 그런 사람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