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기주'라는 자신감=피·땀·연골
배우 진기주에게 갖는 인상은 어떤 것일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유퀴즈 온더 블럭'을 통해 봤던 이직의 왕 느낌이 강했다. 대기업과 기자 생활을 거쳐 배우가 되기까지 진기주는 어떤 면에서 능력자였다. 그런데, 그 비결이 인터뷰하면서 느껴졌다. 진기주라는 사람의 자신감은 노력에서 왔다는 것을 말이다.
진기주는 영화 '미드나이트'에서 경미 역을 맡았다. 경미는 청각 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선천적으로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소리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엄마와 살며 말을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씩씩하다. 엄마와 여행 갈 꿈을 꾸며, 자신과 같은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객센터에서 상담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쇄살인마 도식(위하준)이 소정(김혜윤)을 살해하려는 것을 목격했다. 살기 위해 뛰어야 하는 사람은 이제 경미가 됐다.
촬영을 결정짓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 많은 것들을 다 소화해야 하는구나'를 그때서야 본격적으로 깨달았다. 그 속에서도 진기주는 꼭 하나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영화 장르가 스릴러라고 해서 청각 장애를 과장되게, 덧대서 표현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걸 꼭 지키고 싶었어요. 촬영을 앞두고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했는데, 그러면서 합의가 된 것 같았어요. 저를 많이 믿고 맡겨주셨어요."
"경미가 영화 중·후반부에 도식에게 목소리를 이용해 말을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부분이 정말 많이 고민됐는데요. 촬영 전 등록한 수어학원에서 농인 선생님께 대사를 읽어달라고, 녹음하고 싶다고 부탁드렸어요. 흔쾌히 해준 선생님도 계셨지만, 많이 망설이다 용기 내 주신 선생님도 계세요. 경미를 표현함에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자료였어요."
"열심히 듣고, 제가 경미 버전으로 녹음을 해서 감독님께 들려드렸어요. 감독님께서 만족해주셨어요. 그리고 촬영 때까지 그 부분은 연습하지 않겠다고 양해를 구했어요. 경미는 평소 절대 구어를 쓸 일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현장에서 경미는 이렇겠다는 것은 합의가 됐으니, 현장에서 액션할 때 바로 나오는 날 것으로 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이해해주셔서 그렇게 했습니다."
줄여서 썼다. 실제로 진기주는 경미를 맡았을 때, 맡고 나서, 촬영 전 고민을 A4 한 장 분량으로 연이어 말했다. 그만큼의 진심이 있었다. 장애를 전시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수어가 말처럼 감정과 성격이 묻어나요. 감정대로 한다면, 영화 속에서 수어를 막힘없이 구사해야 했거든요. 촬영 전까지 손이 익숙해지려고 집에서 소파에 앉아 쉬면서도 손으로는 계속 수어를 하고 있었어요. 말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수어가 안 나오면 안 되잖아요. 시나리오 속 수어는 모두 외웠어요."
"수어를 학원에서 배웠는데, 시나리오 외에도 배우고 싶어서 기초반 청강도 했어요. 제가 '미드나이트'의 홍보 영상을 촬영했는데, 문구를 주시면서 이 중에서 수어로 할 수 있는 말은 해달라고하셨어요. '엄청 재미있으니까요'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단어면 할 수 있는데, 사실 모르는 단어가 훨씬 많기는 해요. 영어랑 똑같습니다."
노력했다. 자신은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었기에, 그 청각을 지우려고 했다. 덕분에 후유증도 있었다. "자꾸만 말하는 사람의 입술을 보는 것"이 그것이었다.
"엄마랑 대화하고 있는데, 제 시선이 엄마 입만 보고 있어요.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한동안 혼잣말로 '아냐 아냐' 하기는 했는데, 막상 오늘 아침에도 엄마 입을 보게 돼서 '나 또 왜이러지' 생각했거든요. 엄마랑 눈을 보고 대화를 하다가도 딴생각을 잠깐 하면 또 입술을 보고 있어요. 내일부터는 안 그러고 싶어요."
연쇄살인마 도식 역의 위하준은 100m를 한때 12초에 달렸다고 했었다. 그런 압도적인 체력과 스피드의 연쇄살인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경미는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원래 백미터가 되게 느려요"라며 고민했던 지점을 전했다.
"감독님께서 사전미팅 때 '달리기 잘하냐'고 물어보셨는데 솔직하지 못하고 '하하하' 하고 넘겼거든요. 저 사실 달리기 잘 못 해요. 체력장 하면 앞보다 뒤에 있었어요. 그래서 '아육대'(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 영상도 찾아 보면서 잘 달리는 사람들의 호흡, 속도감있는 달리기의 자세 등을 연구했거든요. 그런데 부질없었어요. 현장에서 감정대로 뛴 게 답이더라고요.(웃음)"
말 그대로 현장에서 연골을 갈았고, 몸을 던졌다. 경미가 2층에서 떨어지며 머리채 잡히는 장면도 대역 없이 스스로 소화했다. 진기주는 당시를 생각하며 "무술 감독님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와이어 잘한다고요"라고 웃음 지었다. 갈비뼈에는 온통 멍이 들었지만, 칭찬받은 일로 웃음을 짓는 진기주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부터 '미드나이트'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 원동력에 대해 진기주는 "제가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해왔는데,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제가 마음이 가는 기준이, 캐릭터에 정이 갈 때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작품 할래요'보다 '이 캐릭터 하고 싶어요'라는 답을 했던 적이 많은 것 같거든요. 제가 좋아하고, 정이 붙어버린 캐릭터를 진심을 다해 하고 싶은 마음이 원동력인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이 아이를 잘 만들어내고 싶다. 그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진기주가 최근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꼽는 것은 "'미드나이트' 시사회" 때였다. 진기주의 꿈을 응원했던 엄마가 펑펑 울면서 "마음이 아팠다, 고생했다"고 말해줬던 그 시간이었다.
"사실 마냥 행복한 건 아니었는데요. 이게 무슨 느낌이지. 두근두근 인지 벌렁벌렁 인지 콩닥콩닥 인지 모를 느낌이 다 섞여있어요. 영화가 세상을 나왔고, 첫 관객과 마주하는 순간이 두근 콩닥 벌렁 했지만 기분이 많이 좋았어요. 많이 설레고, 겁나고, 기대도 되고요. 그렇습니다."
영화 '미드나이트' 이후, 또 욕심나는 캐릭터가 있을까.
"제가 안 해본 게 훨씬 많아서요. 욕심은 모든 장르에 다 있는 것 같아요. 액션에 생각이 없었는데, '미드나이트' 하면서 액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와이어도 더 멋있게 타보고 싶고요. 왜 그럴까요. 그렇게 고생해놓고.(웃음) 소소한 가족 이야기 같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