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굴'에서 강동구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저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가 하는 작품 속 '이제훈'이 보여주는 캐릭터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영화 '박열', '아이 캔 스피크', '사냥의 시간', '도굴'. 이렇게 나열해놓으면 작품 사이에 아무런 관련성이 없이 느껴진다. 이 작품의 연결 고리는 배우 이제훈이다. 이제훈을 변화시켰고, 그다음 작품으로 나아가게 했다. 영화 '도굴' 역시 그랬다. 이제훈을 변화시켰고,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만들었다. 앞서 말한 이제훈의 말 속에 담긴 의미다.

이제훈은 영화 '도굴'에서 강동구 역을 맡았다. 천재 도굴꾼이다. 흙 맛을 보면, 보물의 위치를 안다. 그렇게 황영사 석탑 속 금동불상을 도굴하고, 윤실장(신혜선)을 만나게 된다. 윤실장은 도굴을 제안하고, 그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강동구는 존스 박스(조우진), 삽다리(임원희)와 '도굴' 팀을 이뤄, 작전을 펼친다.

영화 '도굴' 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에너지로 가득한 능글능글한 캐릭터다. 이제훈에게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강동구는 팀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유머러스하게 농담을 하고, 능청스러움과 천연덕스러움을 기본 장착한 인물이다. 이제훈은 그렇지 않았다.

"'도굴'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즐긴 것 같아요. 오히려 이후에 하는 제 모습들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고요.  예전에는 주어진 대사와 행동 안에서 저를 딱 세팅한 후에 프레임 안에서 하는걸 선호했고, 그런걸 맞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프레임에 갇혀서 연기한다기보다, 주어진 대사가 다 끝나고 난 후에도 계속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액션과 컷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주어진 대사를 다 하면, '다했으니까 컷하시지 않을까?'라는 의식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도굴'에서는 감독님께서 '컷'을 안 하셔도 의식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연기를 하다 보면, 캐릭터에 푹 빠져서 일상 속에서 지인과 친구들을 만날 때도 그렇게 행동할 때가 있거든요. '도굴'을 할 때, 저를 오랫동안 봐온 친구들이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모습 보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때는 개구쟁이었나봐요. 고등학교 가면서 차분해지고 얌전해졌달까요? 아마 '도굴'을 직접 보면, 그동안 저의 모습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영화 '도굴' 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통쾌하게 볼 수 있는 범죄오락영화를 지향하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재가 '도굴'인 만큼, 우리 문화재를 다루는데 조심스러웠다.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유물이 부서지거나 훼손되도록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강동구가 선릉을 '도굴' 할 때도 그런 이유로 포크레인으로 무덤을 파지 않고, 무덤의 앞 부분을 파 내려갔다.

"단순히 오락 영화로 저지르고 마는 것이 아닌, 보시는 분들에게 디테일하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이것을 또 디테일하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제작진의 세심한 배려가 좋았고요. 강동구도 단순한 도굴꾼이 아닌 것 같아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강동구가 '도굴을 해서 내 집 마련한다'는 농담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복잡한 생각을 하는 거죠. 한없이 가벼운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달까요."

영화 '도굴'에서 강동구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색다른 도전은 '도굴'을 하며 흙먼지와 함께 뒹굴었던 것만은 아니다. 이제훈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형사 때문에, 지하 노래방에서 남자들끼리 노래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게 됐다. 노래는 그룹 시크릿의 '별빛달빛'. 이제훈은 무려 상의탈의를 하며 노출신을 선보인다.

"조금 더 끈적했어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솔리드의 '이밤의 끝을 잡고'였거든요. '더 밝고 유쾌하게 가보자'고 해서, 다 같이 노래방에 갔었어요. 누가 갑자기 '별빛달빛'을 부르더라고요. 서로 율동하면서 부르고는 이 노래로 결정됐죠. 상반신 노출은 감독님께서 조심스럽게 '벗고 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제가 벗는 것은 괜찮았지만, 영화의 흐름에서 부담스러울까봐 걱정했어요. 팔굽혀펴기를 열심히 하고 촬영에 임했는데, 다행히 즐겁게 봐주신 것 같아요."

영화 '도굴'에서 강동구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제훈은 '도굴'에서 수염도 길러봤다. 수염이 멋있게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망설여졌다. 하지만 분장을 맡은 이진영 대표님께서 '수염을 기르자'고 '태닝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 덕분에 현재의 '강동구'가 나올 수 있었다.

"변화를 주고 싶었지만, '괜찮을까'에 대한 걱정과 의문이 있었어요. 이렇게 보여드리니,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됐고, 좋았어요. 그 영향으로 인해서 다음 작품에도 수염을 기르고 나오거든요. 만약에 '도굴'에서 해보지 못했다면, 다음 작품에서도 해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변화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이끌어주고, 이야기해주는 부분에서 자극을 받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배우 이제훈에게 가장 많은 자극을 주는 것은 작품 속 '이제훈'이다. '도굴'의 강동구로 인해 이제훈 역시 밝아지고, 현장에서 더 주도적인 모습을 찾게 됐다. 그런 면에서 '박열'로 인해 '아이 캔 스피크'를 만나게 됐고, '사냥의 시간'으로 인해 '도굴'을 만나게 됐다.

영화 '도굴'에서 강동구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준익 감독님과 작업하고 싶었고, 제안 주셔서 감사하고 기뻤던 작품이 영화 '박열'이었어요. 사실 박열이라는 인물을 잘 몰랐거든요. 독립투사 중 한 분의 일생을 재조명하며 감사함을 느꼈던 시간이었어요. 그다음 작품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아이 캔 스피크'. 역사관이나 태도적인 측면에서 깊어지고 심화된 측면이 있었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에서 참여하게 됐었던 작품이었거든요."

"영화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을 함께했던, 저에게는 영화적 동지이자, 많은 영향을 미친 감독님, 윤성현 감독님과 다시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고요. 그런데 영화적인 쾌감을 주는 장르적인 부분에서 지치고, 힘들고, 도망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요. 얼마나 나를 바닥으로 내쳐야 할까. 다음 작품에는 그런 경험을 하기 싫더라고요. 이런 건 더 못할 것 같아 생각할 때 '도굴'이 다가온 것 같아요. 진짜 영화적으로 즐길 수 있고, 극장에서 재미있게 웃고 떠드는 영화잖아요. 전에는 작품을 선택할 때 장르적인 쾌감이나 작품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작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도굴'을 선택하면서,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영화 '도굴'에서 강동구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생각의 전환이 온 이제훈이 기다리는 작품은 뭘까.

"멜로, 사랑 이야기를 제가 많이 보여드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전에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기다리고 있고요. 찾고 있습니다."

데뷔 하고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부지런히 변화했고, 그 변화를 또 부지런히 대중과 나눴다. 쉼 없이 활동한 이제훈의 원동력은 뭘까.

"어릴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영화 속 인물이 친숙했던 것 같아요. 거기 들어가서 연기해도 좋을 것 같은데?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런 막연함으로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아직도 저에게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는 건 영화를 보는 순간 같아요. 끊임없이 극장에 가고, 큰 사운드로 영화를 마주할 때, 두근거려요. 귀가 빨개질 정도로 상기돼요. 특히,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참을 수 없어요. 이런 영화 보고 싶다, 연기하고 싶다, 이 마음이 연기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달라진 게 없어요. 솔직히 지치고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 마음이 싹 사라져요."

영화 '도굴'에서 강동구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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