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우리말] 달라진 '귀찮다'의 의미! 시대 따라 변하는 말의 뜻
과거 '귀찮음'은 게으름뱅이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언젠가부터 '귀찮음'을 자신을 대표하는 성질로 규정하는 이가 늘고 있다. '귀차니즘', '귀차니스트'와 같은 신조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몇 년 전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한 카드회사의 광고 문구가 크게 유행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귀찮음'을 피로함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일탈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말이라도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다. 과거와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말을 종종 찾을 수 있는 이유다.
‘귀찮다’의 어원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이 말을 지금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찮다’는 ‘귀 + 하- + -지 + 아니 + 하-’가 줄어든 말로, 원래의 뜻은 ‘귀하지 않다’였다. ‘귀하지 않다’는 ‘평범하다’, ‘중요하지 않다’, ‘하찮다’ 등으로 바꿔 쓸 수 있지만, ‘괴롭고 성가시다’라는 뜻은 없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귀찮다’를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괴롭거나 성가시다’라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언젠가부터 ‘귀찮다’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평범한 것을 넘어 마음에 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괴롭고 성가시다는 뜻까지 더해져 지금과 같은 뜻을 나타내기에 이른 탓이다.
한편, ‘귀찮다’의 본말인 ‘귀치않다’는 1960년대까지 사용했다. 당시 신문에 실린 ‘세상이 귀치않다’(『세상이귀치않다』 , 1953년 3월 25일, 동아일보), ‘나이가 많아지니 잔치도 귀치않다’(閔妃(민비), 1966년 1월 18일, 경향신문) 등의 문장은 ‘귀치않다’가 ‘귀하지 않다’의 뜻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준말이 널리 쓰이고 본말이 잘 쓰이지 않는 경우에는 준말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정의한 표준어 규정 제14항에 따라 ‘귀치않다’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시대에 따라 뜻이 변하는 말의 사례는 ‘귀찮다’의 유의어인 ‘성가시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가시다’는 ‘자꾸 들볶거나 번거롭게 굴어 괴롭고 귀찮다’라는 뜻의 형용사지만, ≪월인석보(1459)≫에 실린 ‘성가시다’의 원형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이 말이 ’파리하다, 수척하다, 초췌하다‘라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몸이 마르고 낯빛이나 살 색에 핏기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 사용했으니 과거에는 ‘얼굴이 성가시다’라는 말도 가능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성가시다’ 역시 ‘자꾸 들볶거나 번거롭게 굴어 괴롭고 귀찮다’라는 뜻으로 변했고, ‘얼굴이 성가시다’와 같은 표현도 이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