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고등학생 남녀를 주인공로 한 청춘 드라마다. 2014년 소설 투고 웹사이트에 연재를 시작하며 알려진 소설은 2015년 6월 출간되어 2016년 연간 베스트셀러 1위, 일본 서점 대상 2위를 기록했고, 이후 일본 전역에 ‘너의 췌장’ 신드롬을 일으켰다. 파격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끈 소설은 제목과는 정반대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고, 예상치 못한 반전 결말로 깊은 감동까지 선사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2017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 행진을 이어갔으며, 2018년에는 동명의 애니메이션도 개봉할 예정이다.
사실 줄거리만 보면 소설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불치병에 걸렸지만 한없이 해맑은 여주인공 ‘사쿠라’와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던 남주인공 ‘나’가 우연한 계기로 얽혀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설정 등 많은 부분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러브레터’같은 전형적인 일본 로맨스를 답습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많은 이들이 ‘오글오글’이라 평한 10대 감성의 낯간지러운 대사와 장면들은 초반 몰입을 방해해 자칫 이 소설을 평가절하하는 누를 범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이 읽을 만한 것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무심히 툭 하고 튀어나오는 메시지에 있다. 사쿠라와 나가 나누는 평범하고 현실적인 대사 속에는 담긴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관이 담겨 있다.
죽을 날이 얼만 안 남았기 때문에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 ‘나’에게 ‘사쿠라'는 “하루의 가치는 전부 똑같은 거라서 무엇을 했느냐의 차이 같은 거로 나의 오늘의 가치는 바뀌지 않는다”라고 답한다. 또, “중요한 것은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실제 내용”이라던가, “우연과 운명도 모두 내가 한 선택” 등의 대사들 역시 쿵 하니 가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외에 갑작스러운 사쿠라의 죽음에 얽힌 반전, 사쿠라가 죽은 후 드러나는 이들의 속마음 등은 눈물샘을 자극하며 소설의 감동과 여운을 한층 높여준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소설의 스핀오프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알 수 없는 12년 후의 이야기와 고등학교 시절의 이들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 방식으로 보여주며, 소설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소설이 주는 깊은 감동을 느끼기 힘들다. 스크린을 꽉 채우는 사쿠라의 아름다운 미소와 사쿠라를 보낸 후 흘린 ‘나’의 눈물이 억지스러워 보이는 것은 이들의 진심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작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고 전형적인 예쁘고 슬픈 로맨스로 마무리된 영화는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
제목이 주는 의외성만큼 많은 놀라움을 안겨주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단연 영화보다 소설이 낫다. 일본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영화도 나쁘지 않지만, 일본에서 ‘너의 췌장’ 신드롬이 일어난 이유는 소설을 봐야만 알 수 있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영화를 먼저 본 후 소설을 읽는 것이 좋겠지만, 소설을 읽은 후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삶이 무료한 이들이게 이 소설은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