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담아낸 영화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앨런 튜링에 대한 영미권에서의 평가는 상당하다.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해독 불가 암호인 ‘에니그마’를 풀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한 영웅이며, 현대 컴퓨터의 기본 이론을 완성하고 컴퓨터의 전신인 ‘튜링기계’를 만들어 낸 ‘컴퓨터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런 튜링의 위대한 업적은 전후 30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바로 국가보안과 동성애자였다는 이유에서다.
영화는 앨런 튜링의 삶에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세 가지 사건을 유기적으로 엮어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에니그마 해독에 대한 이야기와 유년시절, 그리고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세상에서 소외되게 만든 말년의 사건이다. 영화는 앨런 튜링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던 비운의 영웅 ‘앨런 튜링’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높였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키이라 나이틀리 등 배우들의 호연으로 완성도를 높여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영화는 앨런 튜링의 삶을 담백하게 그려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앨런 튜링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허구가 첨가되어 있고 앨런과 주변 인물들의 성격도 다소 왜곡되어 있다.
영화의 원작은 앤드루 호지스의 책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87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은 앨런 튜링에 대한 최고의 전기라 평가받고 있다.
앨런 튜링의 가계도부터 시작하는 책은 그의 출생, 유년시절,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던 청소년기와 청년기,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의 모든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세세하게 늘어놓는다. 앨런의 소소한 버릇들,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증언, 시기별 완성한 수학적 이론과 고찰, 논문, 경력 등 저자가 앨런과 관련되어 수집할 수 있었던 모든 자료를 총망라한 덕분에 책은 편중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앨런 튜링의 실제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며, 흔히 전기에서 보이는 무조건적인 찬양 등의 오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2시간 남짓한 시간에 앨런 튜링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영화에 비해 책은 분명 부담스럽다. 또한, 앨런 튜링이 해결한 수많은 수학적 개념들과 엄청난 분량을 평범한 독자들이 소화해내기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책이 생각보다 지루하진 않다는 것이지만, 섣불리 읽어보라 권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영화와 책 모두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지만, 앨런 튜링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해 미칠 듯 궁금한 게 아니라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