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의 발칙한 야구이야기] '지옥에서 두산을 구해낸 구세주 니퍼트' 한국시리즈 2차전
방심의 대가는 참혹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길이었으나 어쩌다보니 그만 험난한 가시밭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끔찍한 시련이 이어졌고 참을 수 없을 만큼 힘겨운 시간이 계속됐다. 자칫 힘다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헛심만 쓰다가 그대로 벼랑으로 떨어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2015 한국 프로야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삼성에게 뼈아픈 역전패한 두산 이야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산에게 아직 여섯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1차전의 패배가 충격적이기는 해도 아직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전열을 추스르기만 하면 충분히 반격의 여지가 있었다. 주축 선수 3인방의 이탈로 인한 삼성 전력에 균열이 생긴 것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단, 1차전처럼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경기를 풀어나간다면 말이다.
27일 대구구장에서 삼성과 2차전을 치르는 두산은 플레이오프에서 NC와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에이스 니퍼트만 바라봐야 하는 신세였다. 니퍼트는 NC와 치른 플레이오프 1차전과 4차전에서 각각 9이닝과 7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주어 탈락 위기에 몰렸던 두산을 한국 시리즈로 이끌었었다. 니퍼트가 있었기에 한국 시리즈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팀을 패배의 충격에서 구해야 하는 부담을 어깨에 짊어진 채 마운드에 오른 니퍼트는 7이닝 동안 25타자를 상대하면서 피안타 3개와 사사구 2개만 내주는 쾌투로 또다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 10일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회 말 2사 후 박병호에게 허용한 솔로 홈런 이후 24.1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니퍼트는 단일 포스트시즌 연속 이닝 무실점 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종전 기록은 2013 포스트시즌에서 유희관이 기록한 20.2이닝 무실점이었다.
두산 니퍼트와 삼성 장원삼이 선발 대결을 펼쳤던 이 경기는 외야에서 내야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 때문에 장타가 나오기 힘든 날이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대구구장이 잠실야구장처럼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나바로의 홈런성 타구가 연달아 펜스 앞에서 잡히면서 삼성 측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두산 니퍼트는 경기가 끝난 뒤 "바람이 홈런 몇 개를 막아줘 고마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팽팽한 투수전으로 흐르던 경기는 5회 들어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6번 타자 홍성흔의 중견수 플라이 이후 오재원의 2루타를 시작으로 6안타를 집중시킨 두산이 대거 4점을 뽑아내면서 앞서갈 수 있었다. 특히, 2사 1-2루 상황에서 2번 타자 박건우의 타구가 장원삼 오른발에 맞았고 큰 부상은 아니었으나 민병헌과 김현수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면서 3점을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차전을 승리로 이끈 두산 김태형 감독은 "꼭 1승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니퍼트가 에이스 역할을 해줬다. 정규시즌 때 못 해준 것을 지금 해주는 것 같다. 정말 이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며 니퍼트의 활약에 고마워했고 "준플레이오프부터 11경기째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르고 있는데 체력 문제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분명히 있다. 포수와 유격수가 제일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체력을 안배하는 상황이 아니다"며 전의를 다졌다.
또한, 삼성 류중일 감독은 "니퍼트를 공략하지 못한 게 패인이다. 경기 전 선수들에게 `니퍼트의 높은 직구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오늘은 니퍼트가 낮게 깔리는 슬라이더를 잘 던졌다"며 아쉬워했고 "정인욱을 4차전 선발로 생각했는데, 4차전에서 밀리면 시리즈 전체 흐름을 내줄 수도 있어 1차전과 2차전에서 투구 수가 적었던 알프레도 피가로와 장원삼, 차우찬까지 후보로 놓고 고민해보겠다"며 투수 운용에 대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