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세계는 비정하다. 왕권과 같은 강력한 권력 다툼의 중심에 있다면 부자(父子) 간에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비밀의 문'이 방영되면서 다시 한번 조선왕조의 비정한 정치 세계가 주목 받고 있다. 부자 간의 권력 다툼은 조선왕조만 해도 여러 사례가 있다. 태조와 태종,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 그리고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비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드라마틱한 전개가 가능한 이들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
 
◇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형제들을 죽여 왕권을 차지한 태종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왕이 된 태종
태종에 대한 노여움으로 함흥차사를 다 죽인 태조
 
조선 왕실에서 일어난 대표적 부자간 권력 싸움은 '왕자의 난'으로 잘 알려져 있는 태조와 태종간의 다툼이다.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대하드라마로는 공전의 히트를 쳤던 '정도전'과 '용의 눈물'이 있다. 조선 건국 후 태조는 자식들이 벌이는 골육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이방원(태종)이 세자 책봉에서 자신이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으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둘째 부인은 강씨(신덕왕후)는 불같이 강한 성격을 가진 이방원이 왕이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동의한 태조는 강씨의 막내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이에 이방원은 즉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이복동생 방석과 방번을 모두 살해하였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태조(유동근 분)와 이방원(안재모 분)이 세자 책봉 문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출처: KBS 화면 캡처

1차 왕자의 난 후 태조는 둘째 아들 방과(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아버지를 위협해 왕위를 물려받는 모양새가 되는 것을 염려한 이방원은 우선 왕위는 물려 받지 않는다. 하지만 2년 후 이방간이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이방원은 이를 제압하고 마침내 정종에게 왕위를 넘겨받게 된다. 2번의 걸친 자식들의 목숨을 건 싸움을 지켜본 태조는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경도 함흥으로 돌아간다. 이 후 태조는 태상왕, 정종은 상왕으로 모셔지지만 태종에 대한 태조에 노여움은 가시지 않았다. 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내 한양으로 모셔오려고 했지만 태조는 오히려 차사들을 모조리 죽였다. 이 때 나온 말이 바로 '함흥차사'이다.
 
◇ 선조로부터 가까스로 왕위를 물려받은 광해군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던 선조
왕이 된 후 인조반정으로 결국 폐위된 광해군
 
선조와 광해군의 시대를 그린 것으로는 최근에 크게 히트를 친 영화 '광해', '명량' 등이 있지만 선조와 광해군 사이의 긴장감을 그린 영화는 아니다. 다만 다음달 방영된 예정인 '왕의 얼굴'에서 광해군이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릴 것으로 알려져 한껏 기대를 받고 있다.

선조와 광해군의 이야기를 담은 '왕의 얼굴' 출연진들이 대본 리딩 모습. 출처: KBS 미디어 제공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도망가기 바빴던 선조를 대신해 평안도와 강원도 등을 돌며 민심을 수습하고 전쟁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큰 몫을 한 이가 바로 급하게 세자에 책봉된 광해군이었다. 그의 활동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공로를 세운 광해군의 세자 자리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선조는 백성들의 인기를 받고 있는 광해군이 썩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후에 선조와 인목대비 사이에 영창대군이 출생하면서 서자였던 광해군의 자리는 더욱 위협받았다.
 
하지만 광해군을 폐하고 어린 영창대군에게 보위를 물려주려 했던 선조가 갑자기 죽음을 맞는 바람에 결국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광해군은 9살의 영창대군을 서인으로 강등해 유배시키고 사람을 써서 살해한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후 혼란스러운 조선을 잘 추스리고 실리 외교를 펼치는 등 나름의 훌륭한 정책을 폈으나,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한 그를 탐탁지 못하게 여긴 서인(西人) 세력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결국 축출당하고 말았다. 실리 외교도 당시에는 명을 배신한 패륜으로 여겨졌다. 
 
◇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
 
조선왕조 사상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사도세자
 
영조와 사도세자는 아버지가 직접 아들을 죽였다는 점에 있어서 여타 부자간의 권력 다툼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다. 첫 아들이 9세의 어린 나이에 죽어 후사가 없던 영조는 나이 41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태어난 사도세자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다. 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영특했기에 더더욱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무인적 기질이 강했던 사도세자는 커가면서 점차 학문을 멀리하게 되었고 영조는 그런 아들을 꾸짖었다. 꾸짖음이 잦아지자 세자는 아버지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둘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사도세자(이제훈 분)가 영조(한석규 분)에게 선위를 거두어 달라고 석고대죄하는 장면. 출처: SBS 화면 캡처

영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선위 파동을 자주 사용했다. 선위 파동은 신하들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한 일환으로 왕들이 주로 사용한 방법이다. 실제로 왕의 자리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것을 뻔히 아는 신하들과 사도세자에게는 굉장히 소모적이고 힘든 일이었다. 4세 때부터 선위파동을 겪은 사도세자는 왕의 그런 모습을 굉장히 두려워했고 왕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대하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영조(한석규 분)와 사도세자(이제훈 분)의 이러한 선위 파동이 잘 드러나고 있다.
 
임오년(영조 38), 나경언은 세자의 실덕과 비행을 영조에게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영조는 나경언을 무고로 참형에 처했지만, 세자의 비리를 더욱 상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세자에게 더욱 실망한 영조는 결국 사도세자를 서인으로 폐한 뒤 뒤주에 가두었고 세자는 9일만에 죽고 말았다. 이 사건이 바로 조선왕실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임오화변'이다.
 
◇ 부자 간의 인륜도 저버리게 하는 권력의 세계
 
이 외에도 왕권을 중심에 둔 부자 간의 갈등으로는 아버지의 미움을 받아 독살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설이 있는 소현세자와 인조 간의 갈등, 섭정을 했던 흥선대원군과 장성하여 왕권을 되찾으려 한 고종과의 암투를 들 수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N 드라마 '삼총사'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픽션이 가미된 드라마다.
 
이 같은 비극적인 이야기가 사극 드라마 소재로 자주 쓰이는 것은 지금은 볼 수 없는 절대 권력을 지닌 왕족의 세계를 보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고, 그 속에 보여지는 암투와 정치 세계가 그 어떤 작가가 쓰는 소설보다 극적이기에 그럴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기에 부자(父子) 간의 인륜도 저버리게 하는 것일까? 이 시대에도 여전히 부와 권력을 가운데 두고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를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답을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런 비극적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사로 잡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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