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코쿠(四国) 섬 한가운데, 해발 1,955m의 쓰루기산(剣山)이 솟아 있다. 서일본에서 이시즈치산(石鎚山)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일본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다. ‘시코쿠의 지붕’이라 불리는 이 산은 험준한 일본 알프스와 달리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걷는 매력이 있다. 이끼 낀 숲길을 오르고, 산악신앙의 흔적을 만나고, 정상 산장에서 따끈한 아메유(あめ湯)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것. 이런 풍경과 경험이 쓰루기산 여행의 매력으로 꼽힌다.

쓰루기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험준한 일본 알프스와 달리 걷기 좋은 초원형 산세가 펼쳐진다. /도쿠시와현 관광협회 제공

도쿠시마에서 쓰루기산까지
도쿠시마 공항에서 쓰루기산 리프트 승강장인 미노코시(見ノ越)까지는 차로 약 2시간 30분~3시간이 걸린다. 도중에 국도 438호와 439호를 따라 이어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이 1시간 이상 계속된다. 사실상 1차선에 가까운 구간도 많아 대향차와 교행이 어려운 지점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라면 렌터카보다 사전 예약형 관광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JR 사다미쓰역(貞光駅)에서 등산 버스를 이용해 미노코시까지 이동할 수 있다. 계절과 요일에 따라 운행 일정이 달라질 수 있어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현장 안내 기준 편도 요금은 약 3,000엔 수준이다.

스릴과 감성을 동시에, 등산 리프트

해발 약 1,420m의 등산 입구 미노코시에서 리프트 종점인 니시지마역(西島駅)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체력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등산 리프트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미노코시에서 니시지마역까지 운행하는 1인용 의자형 리프트. 안전벨트 없이 이끼 낀 경사면을 15분간 올라간다.

스키장에서 볼 법한 1인용 의자형 리프트인데 안전벨트도 안전망도 없다. 다만 높이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고 속도도 느려, 일부러 몸을 흔들지 않는 이상 큰 부담 없이 탑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끼 낀 초록 경사면 위를 15분간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사방으로 펼쳐지는 시코쿠 산맥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리프트 종점에서는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시코쿠 산맥 조망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등산이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리프트는 4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운행하며 성인 왕복 2,300엔, 편도 1,300엔이다.

세 갈래 코스, 각자의 속도로
리프트 종점 니시지마역에서 정상까지는 세 가지 코스로 오를 수 있다.

최단 능선 코스(尾根道)는 약 40분, 거리 900m로 경사가 있지만 정상까지 빠르게 오를 수 있다. 오쓰루기 신사(大剣神社)를 경유하는 코스는 약 60분, 거리 1,200m로 중간에 신사와 신성한 샘을 만날 수 있다. 완만한 유보도 코스(遊歩道)는 약 80분, 거리 1,980m로 능선을 따라 걸으며 쓰루기산의 탁 트인 조망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초보자도 무난히 오를 수 있는 수준이지만 등산화 착용을 권한다. 산의 날씨 변화가 빠르고 일교차가 큰 만큼 방한복과 우비도 준비하는 편이 좋다.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산악신앙의 흔적
쓰루기산은 정상만이 목적지가 아니다. 오쓰루기 신사 경유 코스로 오르면 중간에 뾰족한 암봉을 등 뒤에 둔 작은 신사를 만날 수 있다.

산악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신사 인근에는 ‘일본 명수 100선’에 선정된 고신스이(御神水) 샘이 있다. 한국어로 ‘신의 물’이라는 뜻의 이 샘은 헤이케(平家) 일족의 전설과 연결된 성스러운 물로, 오래 마시면 고질병을 고친다는 치유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산행 중간중간 이런 산악신앙과 자연 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점도 쓰루기산의 특징이다.

정상에서 맞는 산장 문화
해발 1,955m 정상부는 완만한 초원형으로 넓게 펼쳐진다. 목재 데크와 산장, 정상 혼구 신사(本宮神社)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쓰루기산 정상 산장. 우동, 카레라이스, 캔맥주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한다.

1955년 창업해 지난해 70주년을 맞은 쓰루기산 정상 산장(TSURUGISAN CHOJO HUTTE)에서는 우동과 카레라이스를 비롯해 캔맥주, 컵라면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한다. 한국 국립공원 산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산장에서 직접 개발한 아메유(あめ湯)도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생강과 엿을 베이스로 한 따뜻한 일본식 음료로, 산행 뒤 차가워진 몸을 빠르게 덥히기 좋다. 별 관측 명소로도 유명해 날씨가 좋으면 시코쿠 산맥과 운해를 함께 볼 수 있으며, 정상 산장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맑은 날에는 쪽빛 하늘 아래 탁 트인 시코쿠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인근 지로규(次郎笈)로 이어지는 능선 위를 걷는 맛이 각별하다. 반면 구름이 낀 날에는 안개가 능선을 삼키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상에서 맑은 시야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안개 속 쓰루기산도 하나의 풍경으로 즐길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쓰루기산은 봄 신록부터 가을 단풍철(10월)까지가 특히 인기 있다.

해발 1,955m 정상. 맑은 시야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운무 속 풍경도 쓰루기산만의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도쿠시와현 관광협회 제공

산행 후에도 이어지는 서부 여행
쓰루기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에는 오치아이 마을(落合集落) 전망대가 있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집과 밭이 촘촘히 들어선 산촌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초가지붕 민가와 현대식 주택이 같은 비탈에 공존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안개 낀 산과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목조 가옥은 애니메이션 속 일본 산촌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산간 지역 특유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시간을 내어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집과 밭이 들어선 오치아이 마을(落合集落). 초가지붕 민가와 현대식 주택이 같은 비탈에 공존한다. /도쿠시와현 관광협회 제공

긴 산행을 마쳤다면 인근 이야계곡 온천 지구에서 피로를 풀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곳은 호텔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노천탕으로 유명한 이야 온천(祖谷温泉)이다. 주변에 온천 호텔도 여럿 있어 숙박하며 여유롭게 쉬어가기 좋다.

오보케(大歩危)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있는 몽벨룸 오보케점(mont-bell room Oboke)도 방문객들의 눈길을 끄는 곳이다. 몽벨은 1975년 창업한 일본을 대표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중 하나로, 기능성과 내구성을 중시하는 아웃도어 이용자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오보케 방향 길목에 자리한 몽벨룸 오보케점. 도쿠시마 한정 디자인 제품을 판매해 실용적인 기념품을 찾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도쿠시와현 관광협회 제공

도쿠시마현은 올해 몽벨과 에코투어리즘·지역 활성화 등을 위한 포괄 연계 협정을 체결하며 아웃도어 관광 거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오보케점은 도쿠시마 한정 디자인 제품도 판매해 실용적인 기념품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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